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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함부로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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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장복 총장 (한일장신대학교) 

성군! 조국의 부름은 없고 교인들은 붙잡을 때 나는 하나님의 뜻을 듣고 싶어 참으로 몸부림쳤지요. 금식기도를 마치고 창백한 얼굴로 기도원에서 내려오던 날 나는 교회로 직행하여 거듭 기도하면서 중대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저를 이토록 사랑해 주신 여러분과 함께 이 곳에서 함께 살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그 순간 그들은 박수를 치고 부르짖으면서 몹시 반겨주었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입에서 뜻밖의 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이제 성전 건축 헌금을 합시다"

나는 정말 놀랐습니다.

"이 큰 문제는 기도하고 생각하고, 그리고 결정해야 합니다"를 몇 번이고 반복하였지만 결국 거기에 모인 자신들의 몫이라고 양보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떨 수 없이 즉석에서 기도하고 내 자신이 1만 불의 건축헌금을 약속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27만 불이라는 건축헌금이 약속되는 기적이 단시일 내에 달성되어 우리의 교포사회를 놀라게 하였답니다.

그로부터 3개월 후에 나를 사랑했던 교인들에게 혼돈과 상처를 안겨 주어야 했던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토록 가고 싶은 모교인 장신대로부터 교수로 오라를 부름이 왔었지요. 귀국을 포기하고 교회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행동했던 나에게는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나의 정신은 언제나 태평양 건너의 조국을 향하고 있었기에 반기고 있었으나 내가 직면한 여건은 훨훨 떠날 수 없었지요. 인간적인 모든 약속의 파기는 한 인간의 인격만 손상을 받으면 되려니와 '하나님의 뜻'을 들먹였던 목사의 책임은 참으로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당회를 모여 이 사실을 알렸으나 아무도 나를 보내주려는 의사가 없었습니다. 오직 누군가의 의미 깊은 말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우리와 함께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시기에 우리는 기쁨으로 환영하고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를 너무 실망시키지 마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물을 머금고 나의 처녀목회지를 떠나 조국의 신학교육의 사역지로 가겠다는 선언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사랑이 미움으로 변할 때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환송의 노래를 고사하고 쫓김을 받은 배신자의 모습으로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22년이 지난 지금도 귀에 선명하게 들이고 있는 다음의 소리는 평생동안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목사님이 말했던 '하나님의 뜻'을 그렇게 쉽게 저버릴 수 있나요?" "목사님이 말한 조국은 땅덩어리입니까? 민족입니까? 우리는 한국인이 아닙니까?"

지금도 사랑했던 그들의 울부짖음이 내 귀에 자주 들립니다. 그 때마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을 안고 고개를 숙일 뿐입니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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