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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홀로 남은 나의 나머지 생을 온전히 당신을 위해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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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고광자 집사 (60세, 은혜와 진리교회, 경기도 안양시 박달동)

버드나무 아래에서 싹튼 신앙

  황해도에서 태어났지만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부모님께서 남으로 내려오셨기 때문에 내 기억의 시작은 거제도부터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내 기억으론 대여섯 살쯤이었던 것 같은데, 교회당이 없는 관계로 버드나무 아래에서 드리던 주일예배를 종종 참석하곤 했다. 그때 배운 찬송이 지금까지 내가 가장 즐겨부르는 찬송이 되었다.

  성장하면서 어느 정도의 굴곡은 있었지만 신앙생활은 꾸준히 했었다. 결혼 후, 남편이 신앙생활을 심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봉사활동은 꿈도 꿀 수 없었지만, 남편을 설득하여 주일성수는 꼭 지켰다. 또한 생활하며 부딪치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내어놓고 의지하였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덤으로 치료 받은 ‘하체 무력증’

  그러다가 몇 년 전 여름, 나는 원인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는데 이른바 ‘하체 무력증’이라는 것이었다. 음식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고 온 몸에 기운이 없어지더니 급기야는 걸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다리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지만, 병원에서도 더 이상 이렇다할 치료책이 없으니 그저 요양하며 안정을 취하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병원에 있자니 ‘하체 무력증’이 아니라 ‘마음의 무력증’에 빠져 들어갔다. 늪에 빠지면 나오고 싶어도 더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나의 마음도 더 갑갑해지고 무력해져만 갔다. 그때 갑자기 기도원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남편 때문에 주일만 간신히 성수할 뿐 기도원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내가 그런 마음이 든 건 지금 생각해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분명하다.

  나는 곧 남편에게 간곡히 부탁하여 기도원으로 갔다. 그러나 그때 나의 첫 번째 기도제목은 내 질병을 고침받는 것보다는 남편의 영혼구원이 먼저였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라는 말씀은 나의 마음에 영혼 구원에 우선순위를 두게 했기 때문이다.
  기도원에 도착해 목사님과 상담을 하니 목사님은 내게 일주일 금식을 권하셨다. 그러나 나는 “삼일도 아니고, 오일도 아니고 어떻게 일주일씩 금식을 해요.”라고 하며 거부하였다. 생전 처음 하는 금식에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연약함을 미리 아시고 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의 중심을 보셨다.

  금식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 내 몸은 이미 나의 몸이 아니었다. 걸을 수조차 없는 상태로 남편 차에 실려왔던 내가 숙소였던 3층에서 성전까지 오가며 기도원 예배를 모두 참석했다. 그리고 3일째 되던 날엔 빨려 들 듯 들어간 기도굴에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평안함을 느꼈다. 마치 엄마 뱃속처럼 포근하고 따뜻했다.
  그렇게 기도굴에 앉아 기도를 시작하자 기도굴 천장은 한없이 높아지고 나는 개미처럼 작아지는 듯 했고 무언가 알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그리곤 곧 ‘전 죄인입니다’ 라는 회개기도와 함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며 이렇게 날 사랑하시는데 나는 그 분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죄된 삶을 살았구나. 이제부터라도 그분을 위해 살자.’라고 결심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이었다. 그렇게 하나님과 약속한 후에 하나님께서 여러 번의 꿈과 환상으로 내 앞길을 인도해주시는 특별한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고 덤으로 ‘하체 무력증’도 치료 받게 되었다.

나의 간절한 소망 ‘남편의 하나님 영접’

  하체 무력증에 시달리면서도, 수십 년 동안 끊임없이 기도해 왔던 나의 간절한 소망, 남편의 구원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편은 나를 무척이나 사랑해 주었지만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언제나 핍박자였기에 나의 기도는 더욱 간절했다. 그의 손에 의해 부서진 성화가 한 두개가 아니었으며 내가 주일 성수를 할 수 있는 것만도 그의 커다란 배려였다.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던 그에게 하나님께로 방향등을 고정시킬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졌다. 회사 업무차 외국에 나가기 위해 여권까지 발급 받은 상태에서 출국 3일 전에 쓰러진 것이었다.

  남편은 십 년 가까이 간경화로 정기적인 검진과 치료를 받으며 증세를 악화시키지 않고 건강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쓰러지기 얼마 전에도 검진을 통해 건강에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었기 때문에 본인이나 가족이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 더구나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암세포가 간뿐만 아니라 뇌에까지 전이된 상태여서 어떻게 손을 써 볼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었다.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원에서는 별도리가 없으니 집으로 모시고 가 임종을 준비하라고 했다. 남편을 퇴원시킨 우리 가족은 한마음으로 그의 육체가 아닌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남편을 위해 목사님을 모시고 집에 왔다. 하나님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남편의 성격을 잘 아는 나로서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하심이었을까? 남편은 순순히 목사님께 세례를 받았다. “당신은 죄인입니까?”, “당신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겠습니까?”라는 목사님의 질문에 남편은 “예”하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남편이 “아멘”으로 화답하므로 수십 년간 절실했던 기도제목이 응답을 받았다.

  그러나 남편은 곧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그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그의 눈을 바라보고,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그의 곁을 지켰다. “이제 아무 것도 두려워마.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야.”, “당신은 천국에 가는 거야. 평안을 얻어요. 우리 하나님 품안에서 만나.” 점점 몸이 굳어져 가는 남편 곁에서 그의 귀에 끊임없이 되풀이했던 말들이다. 남편은 아주 평안한 얼굴을 하고 하나님 곁으로 갔다.

  그가 죽었을 때, 나는 ‘좀 더 일찍 하나님을 만나고 함께 신앙생활을 했더라면…, 둘이 함께 성경책을 들고 교회에 갈 수 있었더라면…’ 하는 마음에 설움이 북받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라도 그를 만나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뿐이다.

나의 갈 길 온전히 주님께

  남편을 땅에 묻은 후, 나는 강남금식기도원에서 그의 영혼의 평안과 앞으로 남은 나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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