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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인생을 지켜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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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OO 집사 (여, 46세, 광성교회,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

계획된 하나님과의 만남

  10년 전 공직에서 근무했던 나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비교적 부유한 삶에 별 근심거리 없이 만족스런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나에게는 여섯 살 된 딸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유치원에서 듣고 온 노래를 집에 와서 그대로 피아노로 칠 수 있을 정도로 피아노에 남다른 특기를 가지고 있었고 다른 방면에도 재능이 많았다. 그런데 딸 아이는 보통 여섯 살이면 한참 말도 많이 하고 재롱도 부릴 나이인데 비해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리지도 않고 집에서도 조용히 혼자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더 어릴 때는 ‘아이가 성격이 내성적이라서 그렇겠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걱정이 앞서고 자폐증이 아닌지 초조한 맘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딸에 대한 걱정과 낯선 서울에서의 생활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웠던 참에 서울에 살고 있는 언니와 연락이 되었다. 이것저것 얘기하면서 특히 딸아이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을 했다. 교회에 다니는 언니는 교회 성도님 중에 아동심리학을 전공한 교수님이 있으니 교회에 나와 보라고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언니는 내가 부산에 살 때부터 나와 함께 교회에 다닐 수 있도록 서울로 이사 오게 해달라고 매일 한 끼를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서울로 오게 된 것은 언니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교회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그저 내 딸아이를 위해 아동심리학 교수님을 만나러 언니를 따라 교회에 갔다. 그런데 교회 앞에서 딸아이가 이유 없이 안 들어가겠다고 발버둥을 치며 우는 것이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겨우 달래서 데리고 들어가 예배를 드리고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받았다. 안수기도를 받는 중에도 딸아이는 보통 때와는 달리 막무가내로 울어댔다.

  그렇게 3주 동안 주일마다 목사님께 기도를 받았는데 조금씩 딸아이에게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항상 혼자서 조용히 앉아만 있던 아이가 말도 명랑하게 잘 하고 아주 밝게 뛰어 노는 것이었다. 딸아이의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은 우리 부부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부부에게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다는 믿음이 희미하게나마 생겼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사랑하심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한 우리에게 복에 복을 더하셨다. 딸 둘이 다 몸이 허약하여 항상 병원을 전전하며 지내야만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들이 열이 나고 아플 때면 병원을 찾지 않고 손을 얹고 “하나님, 사랑하는 딸을 치료해주세요.” 하고 기도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렇게 하자 아픈 아이들이 말끔하게 낫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특히 수술할 정도로 심한 축농증을 앓고 있던 둘째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난 뒤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본 결과 축농증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깨끗해졌다고 했을 때의 놀라움과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이런 하나님의 돌보심과 사랑하심은 우리 가정에 물질의 축복도 더해 주셨다. 물 붓듯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남편의 사업도 날로 번성케 하셨고, 내가 하는 일도 평탄한 대로를 걷게 하셨다. ‘세상에서 천국의 기쁨을 누린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항상 기쁘고 감사가 넘치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전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남편과의 사이에서 조금씩 마찰이 생기더니 점점 관계가 멀어지고 남편의 남존여비 사상으로 인한 편협한 사고방식과 자주 부딪치게 되었다. 급기야는 이혼을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그 시기에 남편의 사업 또한 많이 어려워졌다. 가을 단풍잎을 때리는 폭풍우처럼 평화로웠던 우리 가정도 내 마음도 갈기갈기 찢겨지고, 연약한 나의 신앙은 바로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지내던 중에 나를 위해 기도해 주던 선배가 강남금식기도원을 소개해주었다. 

답답한 마음에 찾은 강남금식기도원

  답답한 마음에 언니와 함께 찾은 기도원은 너무나 편안했다. 우선 상담실에 가서 상담을 하니, 상담 전도사님께서 3일 금식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뜻밖의 소리에 당황스럽고 금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순종해야겠다는 강한 이끌림에 그 즉시로 직장에 휴가를 내고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순종하는 마음을 보셨는지 금식을 하는 중에 전혀 배고픔을 느끼지 않았고, 음식 냄새를 맡아도 아무런 유혹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금식을 마치고 내 삶이 새로워지고 내가 소원하던 방언의 은사도 받게 될 것을 기대했었는데 생각과는 달리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너무나 낙담이 되어 상담 전도사님을 찾아갔더니 거두절미하고 “회개기도하세요”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잘못은 남편한테 있고, 남편만 변하면 모든 상황이 달라질 텐데 왜 나에게 회개를 하라고 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해야 한다고 하니까 억지로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입술로만 “하나님,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잘못했던 것을 용서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이런 나의 형식적인 회개기도도 하나님께서는 열납하시고 막혔던 남편의 사업에 길을 조금씩 열어주셨다. 나의 연약한 믿음을 온실의 화초와 같이 조심스럽게 다루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남편과의 관계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나의 마음만 곤고해지고 지쳐갔다.

한 시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곤고한 내 마음은 자연스럽게 나를 기도원으로 이끌었다. 몇 번을 갔었지만 내가 직접 운전을 해서 가는 것은 처음이어서 팔당대교를 건너고 나서부터는 어디로 가야할지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한참 도로를 헤매다가 핸들을 돌려 올라가려던 참에 바로 앞에 큰 글씨로 ‘강남금식기도원’이라고 써있는 대형버스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 버스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지켜보고 계시는 구나. 나의 인생길에서 혼자인 것 같고, 갈 길 몰라 헤맬 때에도 하나님은 한 시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나를 인도하시겠구나.’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감사와 감격에 복받쳐서 기도원에 도착할 때까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예배시간에도, 기도하는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많은 은혜로 곤고했던 마음을 채워주셨다. 특히 회개의 영을 부어 주셔서 나의 티끌은 보지 못하면서 남의 티끌만 보았던 내 모습을 보게 하셨다.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교만한 자였으며, 누가 봐도 부러워할만한 사회적 지위를 가졌다고 자신만만해 하며 얼마나 남편을 무시했었는지를 돌아보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낱낱이 나의 속을 들여다보게 하심에 “하나님, 나의 교만을 깨뜨려주시고, 나를 버리고 하나님만 내 안에 존재하게 해주세요!”라고 하며 신앙생활을 한 후 처음으로 나를 내려놓는 기도를 드렸다.

  비바람을 겪지 않으면 무지개를 보지 못한다고 했던가. 가정의 어려움을 통해 나를 낮추시고 나의 작은 모습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드리며, 내가 먼저 주 안에서 변화되어져야 함을 마음 속 깊이 새기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나의 마음을 변화시키신 하나님께서 남편도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관계와 가정의 평화도 회복시켜주시리라 굳게 믿는다. 할렐루야!

- <강남금식기도원, 정리·기도원 간증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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