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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고통 가운데 있는 너를 들어 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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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성 집사 (여, 32세, 인애교회, 성남시 중원구 중동)

위암선고를 받은 고통의 날들...

  나는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친구와 함께 교회에 가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교회의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즐거워 예배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나는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남편은 내가 교회에 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6년의 결혼생활동안 착실하게 교회에 참석하며 주어진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랜 신앙생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에 성령체험도 없는 그저 형식적인 교인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2003년 여름의 어느 날부터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약국에서 소화제를 사다먹기 시작하였다. 몇 개월 동안 약을 복용했지만 낫지 않았고, 속은 더 불편해져만 갔다. 그래서 그해 겨울 무렵 고통을 견디다 못해 병원을 찾아 위내시경검사를 받았다. 검사결과가 나온 날 담당의사는 급히 다른 의사를 불러 그전에도 나와 같은 검사결과가 나온 환자가 있었다며 바로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말했다. 두려움에 휩싸인 채 조직검사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린 나에게 찾아온 것은 뜻밖에도 암이라는 불청객이었다. 참으로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담당의사는 종양이 양성이긴 하지만 수술하기 어려운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서 악성종양보다 더 위험하다고 했다. 차라리 단순악성종양이라면 수술을 하겠지만 내 경우는 수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조치해준 것은 스스로 노력해서 식도를 통하여 음식물을 잘 넘기라는 것 뿐이었고, 만약 음식물을 식도로 넘기지 못하고 토하게 되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며칠 동안은 음식물을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조심스레 먹은 음식물이 넘어가지 않고 그대로 넘어오는 것이었다.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의사는 양성종양이 악성으로 변한데다 암세포가 퍼져 병이 위독해졌고, 앞으로 1년 정도밖에 살 수 없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나는 온몸에 힘이 빠지며 눈앞이 캄캄했고, 남편과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절박한 심정에 교회의 담임목사님과 친한 집사님들에게 기도부탁을 드리고 싶었지만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죽을병에 걸렸나’ 하며 수군거리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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