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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위암의 수렁에서 살려주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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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신정열 성도 (여, 51세, 시흥교회, 충남 금산군 복수면)

불교를 신봉하는 집안으로

  나는 신앙심이 좋으신 부모님에게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교회에 다니며 성장했다. 그러나 혼기가 찰 때 까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나 확신이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결혼상대로 만난 사람이 불교를 신봉하는 집안의 아들이었지만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그와 결혼하고 나서는 교회를 등지고 시댁의 가풍을 따라 절에 다니며 세상살이에 바쁘게 지냈다. 친정의 6남매인 다른 형제들은 모두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었기에 나를 만나기만 하면 전도를 했다. 그러나 굳게 닫힌 내 마음은 조금도 열리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잠을 자고 있는데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타나셔서 “절에 다니지 말고 교회에 다녀야 된다”고 말씀하시고 사라지셨다. 나는 전에 한 번도 꿔 보지 않았던 꿈인지라 아버님의 말씀이 계속 마음에 남아있었지만 교회에 다니기에는 너무 머나먼 길에 와 있다고 느껴졌다.

위암선고를 받고…

  가정생활이나 자녀들을 키우는 데 어려운 일은 없었지만, 결혼하고나서부터 30여년을 두통에 시달리게 되어 심할 때는 하루에 세 번씩 진통제를 먹어야만 했다. 또 좌골신경통으로 허리부분이 항상 아파서 하루도 몸이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는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도 잘 안되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하였다. 한의원을 찾아 침을 맞으려 했으나 침이 들어가지 않았고, 목이 틀어지는 듯 한 심한 통증이 있었다.
  결국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보게 되었는데 의사는 위암이라며 2기말에서 3기초로 진행되는 중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절망감과 공포가 엄습해왔고, 바로 수술을 하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수술이 잘 됐다고 하여 퇴원을 하였으나 몸은 더 약해지기만 했다.
  그때 형제들의 성화에 못 이겨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꾸준한 교회생활을 하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도 어려웠다.

온 몸에 퍼져버린 암세포

  그러다가 수술한 지 일 년이 지난 후 병원에 가서 재검사를 받았는데 청천벽력 같은 결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암이 재발한 것이다. 위암수술을 받으며 고통스러웠던 그 과정을 또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수술날짜를 한 달 후로 잡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나를 위해 매일 눈물로 기도해주던 언니가 기도원에 가서 기도해야 살 수 있다며 나를 강남금식기도원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작은 믿음도 갖고 있지 않았고, 말 할 수 없을 만큼 슬픔에 잠겨있던 터라 기도원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힘겹기만 했다.

  게다가 언니가 3일 금식기도를 하자고 하여 함께 금식을 하느라 손끝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아프고 괴로웠다. 그때마다 언니는 더욱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며 나를 이끌어 주었고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라고 끊임없이 소망을 심어주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고자 이런 아픔을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주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며 지냈던 세월들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기에 이르렀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인도하셔서 3일 금식을 무사히 마치고 나자 30년이 넘게 고통을 주던 두통이 간데없이 사라졌고, 좌골신경통도 씻은 듯이 사라져 허리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있게 되었다. 믿음이 연약한 나로서는 정말 놀랄만한 일이었고, 내 안에 조금씩 믿음이 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술 날짜가 되어 병원으로 가려고 하는데, 언니가 수술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자고 계속해서 권면했다. 그러나 나는 수술을 하지 않고 암을 치료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기에 완강히 거절하고 돌아서서 수술실로 들어갔다.

  내가 수술실로 들어간 후 언니는 곧장 기도원으로 달려가 수술이 잘 되게 해달라는 기도 대신 “하나님께서 치료의 손으로 직접 고쳐주세요. 살아계신 하나님임을 나타내주세요.”라고 하며 울부짖었다고 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언니에게 “딸아 네 눈물의 기도를 들었노라” 하는 음성을 들려주셨는데, 그 후로는 언니의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하나님께서 고쳐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 날 정말 언니의 기도대로 수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막상 수술을 하려하니 암세포가 이미 온몸에 퍼져서 손도 댈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앞으로 2~6개월 정도 밖에 생명이 남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항암치료를 바로 들어가야 한다고 재촉했다.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이제 죽나보다’ 하고 맥이 풀려있는데, 곁에서 언니가 항암치료를 극구 반대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자고 단호히 말하였다.

5일 금식기도를 통해 위암을 치료받다

  항암치료를 받는 쪽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쪽의 두 갈림길에서 많은 고민 끝에 나는 언니의 말대로 하나님께 맡기는 쪽을 선택하고 언니와 함께 다시 강남금식기도원으로 갔다. 상담 중에 5일 금식기도를 하라고 권면을 받았으나 병원에서 나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그동안 몸도 극도로 쇠약해져있는 상태여서 5일 금식을 결단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자 언니가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실 것이라고 힘을 북돋아주며 언니도 함께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금식을 하는 동안 하루가 천년 같을 정도로 온몸에 통증이 심해 너무나 힘겨웠다. 그러나 함께 금식하며 간절히 호소하는 언니와 관심과 사랑으로 함께해주시는 기도원 교역자님들의 중보기도로 하루하루를 견뎌낼 수 있었다. 또 예배시간 마다 들려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믿음이 봄 싹 움트듯 돋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힘이 없다가도 매일 해 주시는 목사님들의 안수기도를 받고 나면 에너지를 충전 받은 듯이 몸에 새 힘이 생겨 5일 금식기도를 승리로 마칠 수 있었다.

  금식을 마치고 나서 보호식을 하는데 기분이 너무 상쾌하고 소화도 정말 잘 되었다. 그렇게도 아파서 견디기 힘들던 육신이 날아갈 듯이 가뿐하고 깨끗해진 것을 온몸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몸은 날로 더욱 생기를 더해갔고, 암 판정 이후로 자라지 않던 손톱과 발톱, 머리카락도 자라기 시작하고 윤기도 흘렀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나에게 치료의 역사를 나타내 주셨다는 강한 확신과 기쁨과 감사가 강물처럼 흘러내리면서 헌금을 드려야겠다는 감동이 왔다. 평생 죄 가운데 있던 자를 구원하시고 생명까지 살려 주셨는데, 어떻게 아무런 감사의 표현을 안 할 수가 있겠는가. 나는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늘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고 기도원에서 내려왔다.

  그 후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더욱 강건해진 영과 육을 가지고 하나님께 늘 감사드리며 최선을 다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다. 영원히 멸망 받을 인생을 흑암의 수렁에서 건져주시고, 나와 내 가정에 이르기까지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 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의 찬양을 드린다.  <정리 : 강남금식기도원 간증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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