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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국립중앙박물관 설계 총지휘 김정철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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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설계 총지휘 김정철 명예회장…“용산에 역사의 전당 세우고 싶었다” 


서울 예닮교회,전주 서문교회,청와대 본관과 춘추관,서울대 본관,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월드컵 상암구장,인천국제공항,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이 건물들의 공통점은 정림건축이라는 설계회사가 지었다는 것이다.

국내 굴지의 설계회사인 정림건축을 이끄는 김정철(74) 회장. 그는 40여 년간 건축가의 길을 걷고 있다. 1967년 동생 정식씨와 함께 정림건축을 창업한 김 회장은 건축계와 기독교계에서 축복받은 인물로 통한다. 자신의 후계자로 아들(김형국·나들목사랑의 교회 목사)이 아닌 조카를 지명했을 정도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실천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새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 박승홍 디자인 설계 총괄사장의 작품이에요. 국립박물관 인터뷰는 박 사장과 해야지 나하고 하면 별 의미가 없을텐데요. 난 그저 뒤에서 철지난 훈수나 두고 박수만 치는 사람이거든요.”

김 회장은 처음엔 거절했지만 인터뷰를 거듭 요청하자 빙그레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호주에는 오페라하우스가 있고 프랑스에는 루브르 박물관이 있는데,우리에게도 내놓을 만한 문화유산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어요. 김영삼 대통령 시절 새 박물관 설계를 공모한다고 하길래 기다렸다는 듯이 참가했지요. 46개국에서 143점이 출품됐는데 우리 회사 작품이 덜컥 당선되지 뭡니까.”

그날은 정림건축의 최대 경사 날이었다. 김 회장을 비롯한 정림건축 직원들은 ‘살아있는 역사의 보고’를 만들기로 다짐하고 혼연일체가 됐다. 김 회장은 새벽기도 시간을 더욱 철저히 지켰다. 세계 6대 박물관으로 만들기 위한 그의 집념은 매일 새벽 4시30분에 시작됐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용산에 민족자존을 담은 문화공간이 우뚝 섰다. 김 회장은 “박물관의 옥외 전시공간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추후 민족공원이 들어설 때를 대비해 연계성을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1931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유년시절엔 중국 다이롄(大蓮)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19세 때 한국전쟁 와중에 학도의용군에 자원,삼수갑산 전투에서 17군데 치명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김 회장은 잊을 수 없는 건축물로 서울 후암동 장로교회를 들었다. 그는 요즘 아들 김 목사가 열정적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 나들목 사랑의 교회에 출석중이다.

“건축은 창조가 아니라 창작입니다. 인류 최초의 설계자는 여호와이고 최고의 건축가는 예수님입니다. 이분들 앞에서 어떻게 제가 감히 건축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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