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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하나님께 기도하여 12년 만에 얻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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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옥 집사 (여, 44세, 옥수순복음교회, 서울 성동구 금호동 4가)

외할머니의 기도로 예수님을 믿게 되다

  가족구원을 위해 기도하시던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지 15년 만에 우리 가족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외할머니께서는 부잣집의 외동딸로 태어나셨지만, 바람둥이셨던 외할아버지와의 결혼과 동시에 불행한 삶을 살기 시작하셨다. 더구나 외할머니는 6?25 피난 시절에 겪은 가난과 굶주림으로 인해 야맹증에 걸리시더니 40대 초반부터 시력을 잃으셨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외할머니의 모습은 기독교 라디오의 방송을 들으시며 위안을 얻으시는 모습이 전부였다. 그런 외할머니와는 달리 식구들은 교회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아무도 교회에 모셔다 드리지 않았기에 앞을 못 보시는 외할머니는 집에서 꾸준히 가족 구원을 위해 기도하셨고,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던 나에게 특별한 사랑을 쏟아주셨다.
  앞을 못 보시는 외할머니께서 가족을 위해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가족들의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으셨던 모양이다.

  내가 대학 2학년 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나에게 유언을 하셨다. 할머니는 “이 땅에서는 눈이 안보여 성경책과 찬송가를 손으로 만져만 보았지만 이제 이 땅을 떠나 하늘나라에 가면 그토록 소원이던 성경책을 영원히 볼 것이다. 내 오른 손에는 성경책을, 왼손에는 찬송가를 쥐어다오. 그리고 예수님을 잘 믿으려므나”하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하나님의 은혜로 첫 딸을 얻게 되다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 적령기가 되어 조상 대대로 미신과 우상을 섬기는 집으로 시집을 갔다. 시댁에서는 손이 귀한 터라 조상 대대로 우상이라는 우상은 찾아다니면서 대가 끊어지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또한 결혼을 하고 5년이 지나도 아이가 들어서지 않자 근심에 쌓이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나는 할머니의 유언을 생각해 냈고, 1991년도 어느 날 부흥집회 현수막을 보고 스스로 교회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에 나가자마자 아기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바로 아기가 들어섰고 첫 딸을 낳게 되었다. 
  사람이 화장실 들어갈 때하고 나올 때 다르다더니 내가 바로 그랬다. 너무 쉽게 딸을 얻고 보니 감사함을 잊어버린 채 나는 교회에 발을 끊고 세상일에 열중하고 말았다.

힘들고 어려운 유학길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다

  1995년도에 세 살 난 딸아이를 시어님께 맡겨놓고 남편과 함께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에서 우리는 학비와 생활비가 만만치 않아서 늘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고 일본에 들어 간지 2년 쯤 지났을 무렵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어 도저히 공부를 하지 못 할 형편이 되었다. 

  너무 고생스러워지니 저절로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문득 마음에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26~33)”라는 말씀이었다. 평소에 기억도 못하던 성경 말씀이 떠오르자 마음에 감동이 밀려왔다.

  힘들고 지친 나를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위로하여 주시고 안아주셨다. 하나님의 인도로 신주쿠 중앙영광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매일 기도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일본에서 5년을 더 지내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나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을 해주셨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취직의 길을 열어 주셨고, 비자 문제도 해결해 주셨다. 그리고 가장 감동적인 것은 딸아이를 일본에 데려올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 밖에도 신실하신 주님께서는 나의 간구한 모든 것들을 응답해 주셨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둘째를 가지려고 노력하였지만, 12년이 되도록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그러자 어떤 권사님께서 우상을 섬겼던 집안이라 귀신의 방해가 심하다며 40일 작정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작정기도를 시작하게 되었고,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감동을 받고 3일 금식기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권사님께 강남금식기도원을 소개 받아 2003년 7월에 올라가서 난생 처음으로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하루에 5번 예배를 빠지지 않고 모두 드리면서 소원인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던 중에 지금까지 알지도 못하던 나의 실체를 깨닫게 되었다. 이제까지 하나님을 부를 때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해 “내가 여기 있노라”라고 응답해 주셨기에 내가 예수님을 가장 잘 믿는 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기에 현재 내가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내 것 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고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든 일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가족이며 세 번째가 일이다. 그런데 너는 여태껏 나에게 네 중심을 두지 않았고, 네 맘대로 순서를 정하여 살았구나! 네게 있는 모든 것들은 나의 은혜로 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깨닫게 해주셨다.

  나는 그동안 나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답답했다. 큰 불효를 저지른 자식의 애통함보다 더욱 가슴이 무너지듯 아파왔다. 나는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회개를 하였고, 그런 나를 끝까지 사랑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내가 주인이 되어 육적으로 살던 모습이 변화되었고, 주님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영적인 모습이 되었다. 내 삶의 주인이 바로 예수님이 되신 것이다. 할렐루야!

기도하며 기다렸던 둘째 아들을 출산하다

  무엇보다도 아들을 주실 것 같은 마음이 들어 기도원에서 내려와 바로 산부인과로 갔다. 초음파검사를 해보니 아기집이 안 보인다고는 했지만, 임신테스트 결과 양성 반응이 보인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성별을 안 가르쳐주었는데 아들일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동안 기도원에서 기도할 때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가 기뻐 뛰는 듯한 기쁨을 맛보기 원한다고 간절히 기도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저버리지 않으시고 그와 같은 기쁨을 맛보게 하셨다.

  며칠 후 기도원에 다시 올라가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기도굴에 가서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두고 조목조목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친정에 나들이 가는 것처럼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도원을 찾아가곤 했다.
  12년 만에 무사히 아들을 낳았는데 역시 기도했던대로 뼈마디가 길쭉길쭉하고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다. 자라면서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갈 것을 기대한다.

  나를 부르셔서 내 삶의 주인이 되어주시고, 나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도 감사하다. 오늘도 사랑이 많으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과 감사를 올려 드린다.

<정리 : 강남금식기도원 간증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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