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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재생불량성빈혈, 기도와 말씀으로 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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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조문호 안수집사,(순복음교회 마포대교구)

아픔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감사와 사랑
힘든 순간 꿈으로 살 수 있다 희망 얻어

1998년 7월 코골이 치료를 위해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수술에 앞서 바늘로 귀를 찔러 피가 나는 정도를 보고 수술여부를 판단하는 검사를 받았는데 피가 멈추지 않았다. 의사는 심상치 않다며 수술을 미뤘다. 내과병원에서 재검사를 받고 7월 27일 아들을 군대에 보낸 날 검사결과를 보러갔다. 결과표에 글씨가 다 영어여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기준치보다 내 수치가 다 적었다. 그 병원에서는 더 큰 병원에 가보라고 의뢰서를 써주었다. 대학병원에서는 입원하라고 했다. 멀쩡한 사람을 환자라고 하다니. 나는 건강했고 힘이 장사였다. 하루에 세시간만 자고 일해도 잘 견뎌 왔었다.

백혈병동으로 옮겨 1주일의 검사 끝에 ‘재생불량성빈혈’이라는 병명을 밝혔다. 쉽게 말해 피를 만드는 공장이 문을 닫아 더이상 피를 생산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골수이식을 위해 7남매가 모두 검사받았지만 나와 골수가 맞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골수은행에도 의뢰했지만 없다는 통보에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심장에 철사같은 관을 연결해 직통으로 약을 투여하는데 엄청난 고통이 따랐다. 혈소판 수치가 3000으로 떨어지니 폐렴 등 합병증이 왔다. 온몸이 마비되고 열이 올랐다.

문득 성경을 읽으면 살고 안 읽으면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 나는 아내와 싸우기 싫어서 간간히 교회 문턱만 밟는 신앙수준이었다. 그랬던 내가 눈만뜨면 성경을 읽어 3개월 만에 일독했다. 믿음에는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에 강하게 사로잡혔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 끝에 링거대를 들고 걸었다. 매우 약해진 상태여서 사람들은 무리하면 안된다고 만류했다. 나는 새벽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병실 안을 거닐었다. 오직 하나님 앞에 보이기 위한 나의 움직임은 계속됐다.

11월 어느날 의사가 퇴원하라고 했다. 병이 나아서가 아니라 포기였다. 퇴원 후 아들방을 병실처럼 만들고 소독해 생활했다. 통원치료도 한번 갈 때마다 300여 만원씩 들었다. 보험이 안돼 그때까지 치료에 소요된 돈이 1억이 넘었다. 돈 빌릴데도 없었다. 어차피 면연력이 없어서 사람들과 대화도 할 수 없었다. 성경만이 유일한 일이요, 친구였다. 교회 가는 것만 유일한 외출이었다. 비록 마스크를 세개나 쓰고 혼자서 걷지 못해 부축을 받아서 힘겹게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지만, 예배 말미 신유기도 시간에 ‘조용기 목사님께서 언제 나의 병이 치료됐다고 말씀하실까?’ 늘 기대했다. 수요예배 때 딱 한번 목사님께서 재생불량성빈혈 환자가 나았다고 하셨다. 듣자마자 아멘을 외쳤다.  그 일이 있은 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던 1999년 봄 꿈을 꿨다.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고 좆아오는데 나는 산에 막혀 더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순간 산에서 세명의 사람들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반가워서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사람이 내게 다가와 “너는 절대 죽지 않는다. 넌 산다”라고 말했다. 내가 “당신은 누구세요?” 라고 물으니 그는 “난 예수다”라고 대답하고 사라졌다. 눈을 떴는데 꿈이 아니라 현실 같았다. 이틀 뒤 좋은 소식이 들렸다. 의료보험공단에서 새 제도가 생겨 370여 만원의 돈을 받은 것이다. 병원 한번 갈 돈만 남기고 감사헌금을 했다. 이후부터는 돈이 없어도 걱정되지 않았다. 또 의료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혈소판 수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5만…3만, 만까지 뚝떨어졌다. 나는 그 전보다 더 실망했다. 다시 꿈을 꿨다. 내 모습이 꼭 수수깡으로 만든 사람 같았다. 어떤 사람이 나타나 왜 그러고 다니냐며 이걸 먹으라고 생수가 담긴 바가지를 건넸다. 마시는 즉시 살이 붙기 시작했다. 꿈을 꾸고난 뒤 생수가 무엇일까 계속 고민하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고 성경대학원에 등록했다. 그리고 교구 지역장인 장병곤 집사를 따라 유럽선교회에서 봉사하기 시작했다. 회원들은 몰골이 흉한 내모습에 개의치 않고 기도와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그때부터 변화가 일었다. 검사를 받으니 혈소판 수치가 10만이 넘어 있었다. 정말 내 몸에서 피가 생성 되어서인지 정확한 확인이 필요해 약을 끊었어도 수치가 16만…17만 5000까지 올라 5년이상 유지 되고 있다.

내 인생에 아픔이 지나간 자리에는 감사가 남았다. 그동안 마포8교구식구들과 유럽선교회 회원들의 숱한 중보기도를 받았다. 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교인들에게 헌혈증으로 도움받았다. 지면을 빌어 감사를 전한다. 또 지금도 병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 당신도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출처 : 순복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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