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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선교 현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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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현장 이야기

- Sergei Lee(모스크바 선교사)


필자가 한국교회에서 섬길 때에 성찬식은 봄 가을 연중행사로 진행하였다. 그런데 선교지에서 여러 교회들을 접하고 신학적인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예전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한국교회는 종교 개혁자들의 가르침으로 성례식이 매우 축소된 신학적인 영향도 있을 것이지만, 더 많은 경우 습관적으로 모든 교회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연중행사로 진행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예전에 관한 것은 더욱 깊이 연구가 되어 속히 재고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모 로고스 선교교회에서는 매월 첫 주에 성찬식을 진행한다.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매우 경건하고 거룩하게, 그리고 엄숙하게 진행되는 의식적인 분위기이지만 이곳은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 엄숙함보다는 실제적이라고 할까, 한국처럼 엄숙하거나 거룩함의 분위기는 덜하다고 본다. 예배도 마치기 전에 자작성시를 낭독하고, 한 주간 삶의 신앙고백을 하고, 무반주 자작 찬송을 하고, 80세 된 할머니가 성경암송을 하여 젊은이들을 부끄럽게 하는 등 코이노니아가 많이 포함된다. 

어느 주일날 성찬식을 거행하였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성찬기기, 번쩍번쩍 빛나는 금잔으로 순서에 따라 잔을 돌렸다. 한 바퀴를 돌고 왔는데, 이상하게도 잔이 한 개 비는 것이다. 광고를 하고 잔을 돌려달라고 하였지만, 결국은 분실하는 사고가 생긴 것이다. “이야, 성찬식 하고 나서 잔을 분실하다니, 이거 원 참…….”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필자는 인간의 본성을 잠시 망각하고, 잃어버렸다는 데 초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다음에 성찬식을 진행하는데, 성도를 시험에 들게 하고 죄를 짓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그리고 거룩한 성찬예식에 참여하면서 도둑질을 하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인도자로서 상당히 불쾌할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닌가? 수 년간을 가르쳐도 변하지 않는 모습이 실망스럽기도 하고, 무엇을 위하여 교회에 나오는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니…….

그래서 방법을 좀 바꾸었다. 이제는 성찬상 위에 떡과 잔을 함께 두고서 모두가 앞으로 나와서 떡과 잔을 함께 받도록 하였다. 제자리에서 받아 먹고 마시는 것보다 강단 앞으로 나와서 받는 것이 훨씬 더 의미가 있고 정성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내심 도둑을 막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실행해보니 성도 수가 많지 않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현지 교회에서 성찬식을 진행하는 것을 보면, 커다란 빵을 돌리면서 조금씩 뜯어서 먹게 한다. 그리고 잔을 돌리면서는 대접에다 “까고르”, 러시아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성찬용 술을 담아서 그것을 돌려가면서 조금씩 마시게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에게 잔이 오면 반가움에 벌컥 벌컥 들이키는 일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트림을 하면서 맛있다고 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것을 보면서 다른 것은 각설하고 위생적으로 지저분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돌려가면서 입을 대고 마시는 것이 내심 내키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어느 주일에 모스크바 로고스 교회에서 성찬식을 거행하는데, 어떤 할머니가 떡과 잔을 받아 먹고 마시고 제자리고 돌아가면서 나를 보더니 감사하다고 한다. 그리고 삼위일체 성호를 긋고 합장을 하여 나에게 인사를 한다. 갑작스러운 행동과 인사에 나는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어~ 어!” 그게 아닌데, 손을 젓자니 그것도 이상하고, 가만히 인사를 받자니 내가 무슨 스님이라도 된 것처럼 잠시 착각이 되고, 아무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을 보냈던 기억이 성찬식을 거행할 때마다 생각이 난다.

또 다른 나이 드신 분이 떡을 먹고 잔을 받아 들더니, 이번에는 코 앞에서 잔을 빙빙 돌리며 흠향을 하더니 단숨에 털어 넣는다. 맛을 음미하더니, “오친, 구스나(아주 맛있다)” 라고 하더니, “이쇼 아진 모즈나?(한 잔 더 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는 것이다. “파스토르(목사님), 한 잔 더 주세요! 아주 맛있습니다.” 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끼면서 가슴 앞에 손을 올려 얼른 가라고 경건하게 작은 손짓을 하였다.

한국에서 배운대로 경건하고 엄숙하고 거룩하게 진행하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일을 만나게 된 것이다. 웃지도 못하고 그러면서도 표정을 바꿀 수도 없이, 속으로 “안 돼”라고 하면서 옆으로 몰아내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처음 당한 일이라서 대책이 서지를 않았던 것이다. 지금은 이러한 일은 없지만, 일부러 성찬식에 참여하려고 첫 주일만 오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교회에서는 자주 하지 않으니 우리 교회에 성찬식을 참여하러 온 것이다.

“세례 받은 사람만 참석하십시오. 범죄한 일이 있어 회개치 못하여 마음에 거리낌이 있으면 참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참석한다. 성찬식에 참석하는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석자를 못하게 막을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막을 경우에 말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나도 어릴 때 유아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왜 안되느냐?” 하면서 따지는 것이다. 여러 번 교육을 하고 신앙고백을 다시 하여 세례를 받도록 하지만 안되니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주께서도 이해하실 것이라 믿는다. 

한국에서는 매우 경건하고 거룩한 일들이 선교지에서는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일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것을 문화적인 괴리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적인 문화와 예배상황을 가지고, 내가 배우고 익힌 습관으로 이 사람들을 상대하면 매우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선교는 그 나라 문화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결론이 생기게 된다. 선교사 자신이 먼저 그 문화를 이해하고 배우지 못하면 아주 어려운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그 문화가 수십 년, 수백 년을 걸쳐서 형성된 것인데, 십수 년 살면서 습득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작은 말에도 배꼽을 잡고 웃는데, 나는 멍하게 바라보면서 이해하는 척 어정쩡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나서 왜 저 말에 웃어야 하는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2010 신년 첫 주일에 성찬식을 거행하였다. 이제는 현지 목회자가 모두 인도하면서 나는 거기에 참여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거룩한 예식을 진행하면서 십자가의 은혜를 다시 생각하고, 한 해 동안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도하며, 그 분의 능력을 체험하는 성찬식, 병든 심령이 고침을 받고, 병든 몸이 치료받는 능력의 시간, 나의 언어가 고침을 받고, 생각이 고침을 받고 변화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하면서 성찬식에 참여하였다. 2010년 한 해 동안 십자가의 능력과 하나님의 섭리,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가정과 한국교회 위에 충만하시기를 기도한다.

한국 교회를 축복하며…….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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