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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물질 없어도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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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황용활 집사 (순복음교회 양천대교구)

  5차례 수술로 못 고친 질병, 기도로 정복
  대를 이은 ‘새벽기도’…집안 행복 촉매제

다섯 차례의 수술과 서른 여섯 번의 방사선 치료에도 고칠 수 없었던 후두암을 고쳐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1999년 11월 어느 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나마 가족들은 항상 내 목소리를 들으니 변화된 것을 더디게 알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대번에 ‘목소리가 변한 것 같다’며 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했다. 그래도 통증이 없으니 병원에 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솔직히 건강에 자신이 있었고, 사업도 바빠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원래 목소리로 돌아오지 않자 차츰 걱정이 됐다. 일과 시간을 쪼개 가까운 이비인후과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는 ‘좀 더 큰 병원에 가 진찰해 볼 것’을 권했다. 감기 정도로 생각하고 병원에 간 내게 의사의 이 말은 두려움을 가져왔다. 대학병원을 찾아 정밀검진을 했는데, 의사는 예측하지 못한 진단을 내렸다. 후두암이라고 하며 ‘수술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하루 빨리 수술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의사의 말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바로 수술하지 못했다. 일을 핑계로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간 기능이 떨어져 마취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이었다.

어려움과 마주하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교회였다. 생전에 어머니는 내가 교회에 나오도록 새벽마다 교회에서 기도하셨다. 여자형제 넷에 아들이라곤 나 하나뿐이니 어머니는 늘 하나있는 아들에 대해 애지중지하셨다. 나 또한 어머니의 말씀을 잘 따랐는데 유독 교회에 나오라는 말만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만큼은 달랐다.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었을까? 잘 다니지도 않던 교회가 그리웠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술을 하고 연이어 스물 여섯 차례 방사선 치료를 받았으나 3개월 후 재발됐다. ‘병이 깊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2차 수술을 받았다. 누군가 ‘산을 넘어 산을 만난다’고 했던가. 7개월 후 암은 다시 재발했다. 낙심이 컸다. 의사는 ‘성대를 들어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렇지만 성대를 들어낸다는 건 말을 영원히 하지 못한다는 것 아닌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성대만은 놔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의사에게 사정해 성대를 놔두고 치료하는 방법을 물었지만, 다니고 있는 병원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병원을 옮겨야 했다. 새로 만난 주치의는 ‘성대를 둔 상태로 수술해보자’며 ‘끝까지 용기를 잃지 말라’고 나를 격려했다. 그렇게 3차, 4차, 5차 수술을 받았다.

다섯 차례 수술을 받는 4년 여 동안 일을 못하고 막대한 치료비를 계속 지출하다 보니 벌어 놓은 재물도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식구들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사업을 하던 때 같았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을 아내는 시작했다. 식당 일을 돕는가하면 바느질을 하며 옷을 수선해 주는 일을 했다. 그럼에도 아내는 어머니가 그랬듯 새벽이면 교회에 나와 나를 위해 눈물의 기도를 흘렸다. 불평할 조건이 차고 넘쳤음에도 감사를 잊지 않았다. 내가 아파도 옆에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아내의 말이 있었지만, 믿음이 부족한 나는 다섯 번을 수술해도 완치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완치 보장이 없기에 삶을 포기하기로 했다.

아내는 나의 이런 결심을 눈치채지 못한 채 ‘나를 위해 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를 하고 오겠다’고 했다.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질 일이었다. 아내가 가여워 눈물이 났지만, 겨우 참고 ‘잘 다녀 오라’고 했다. 그렇게 아내를 보냈는데, 아내의 기도 때문이었을까? 마지막으로 교회에 가보자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픈 몸을 이끌고 교회에 들어섰는데 뜻 모를 설움이 복받쳤다. 겨우 참고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듣는데 말씀마다 나를 향한 것이었다. 목사님이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라고 하시는데 나를 향해 대놓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설교를 들으며 마음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 기도원에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약해 ‘금식을 하면 위험하다’고 주위사람들이 만류했지만 기도원에 가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그러자 마음에 기쁨이 충만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아내와 함께 매일같이 새벽기도에 나가 기도했다. ‘병원에서 수술로 낫겠다’는 생각도 버렸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랐다. 그리고 후두암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기도를 드렸다.

2003년부터는 남선교회 전도실에 나와 봉사도 시작했다. ‘살면 전도, 죽으면 천당’이라는 생각으로 전도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일하셨다. 약한 몸에 기력이 붙기 시작했다. 몸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아 2004년 11월 수술을 받았던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들은 ‘벌써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며 놀랐다. 주치의는 ‘암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며 완치진단을 내렸다. 다섯 차례 수술과 서른 여섯 번의 방사선 치료, 5년간의 투병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할렐루야.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경제적으로 예전보다 힘들게 살고 있지만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소망하기는 병상에 있는 모든 환우들이 내가 만난 소망의 예수님을 만나 영혼이 잘되고 강건하기를 기도한다.

(출처 : 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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