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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약한 나로 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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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김현선 (부산영락교회 1청년)

신앙생활을 한지 7,8여 년 동안 직접적인 하나님을 체험하거나 내어놓고 주님을 증거할만한 간증이 없어 하나님 앞에 좀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몇 일이 걸려도 다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알았기에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감사와 찬양을 주께 올려 드립니다. 처음 주님을 알았을 때 한없이 어리고 나약하기만 했던 나를 주님의 사람으로 세우시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과 고통과 희생이 있으셨는지, 내가 아파하는 만큼 그 몇 배로 아파하시는 주님을 느끼며, 또 다시 주를 버리고 떠날 나를 알면서도 사랑하기로 작정하시고 한없이 부으시는 주님의 눈물어린 사랑을 과장됨 없이 진실하게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자란 가정은 온 친지를 통틀어 크리스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불교집안이었습니다. 할머니를 따라 철마다 절에 가면 부처님, 산신령께 열심히 빌고 맛난 비빔밥 얻어먹고 절 중앙의 대종에 새겨진 우리 가족들 이름을 보며 마냥 신기해 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던 제게 할머니는 항상 ‘지장보살 지장보살...’을 입버릇처럼 외게 하셨고 저의 어머니도 점집을 숱하게 드나드시며 가족의 미래를 예측하곤 하셨지요. 저는 재미 반으로 가끔씩 주일학교를 나가기도 했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영락교회를 어릴 적부터 다니던 한반 친구의 전도로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교적 자유분방하게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나 미팅 등을 한창 즐기고 있던 그때 처음 만난 주님은 너무나 선하신 분이었고 교회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거룩함으로 채워진 곳이라 교회에 속한 나마저 거룩하고 선한 듯 하여 매일같이 기쁨으로 교회를 다녔습니다. 본래 노래를 참 좋아했던 나는 청년부가 되어서는 호산나 찬양팀을 섬기며,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순장으로 세워지며 나름대로는 열심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고, 고신대학 가정복지과를 다니며 남의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이가 되겠다며 나름대로의 꿈과 비젼도 한껏 가진 꿈많은 아이였습니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어느 날, 어릴적부터 고질적으로 조금 가지고 있던 아토피가 급작스럽게 진행되면서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끔찍한 몸으로 얼굴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특히 심하게 진행된 팔은 혼자서 밥을 떠먹지 못할 정도로 퉁퉁 부어서 가족들이 밥을 떠 먹여 주고 옷을 입혀주고 계속 흘러나는 진물을 붕대로 꽁꽁 묶어 매일같이 찜질방에 가서 땀빼는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루종일 뜨거운 열기 속에서 쉴새 없이 땀을 빼내고 밤에는 아버지가 부황기로 계속 피를 빼는 과정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 매일같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며 날을 새웠습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기도란 숨조차 쉴 수 없는 뜨거운 찜질방 속에서 ‘살려주세요...주님, 제발 살려주세요’하며 몸을 트는 것이었고 하나님을 부를 기력도, 찾을 이유도 망각해 버렸습니다. 끔찍한 외모로 교회에 나가는 것은 상상 할 수도 없었고 어차피 믿는 가족이 없던 나는 너무도 쉽게 교회를 떠나버렸습니다. 어쨌든 하나님 없이도 찜질방에서의 치료는 비교적 잘 진행되어 학교도 무사히 졸업하고 조금씩 정상인으로 나아지자 그간 못했던 술도 많이 먹어보고 남자친구도 맘껏 만나 보며 건강 때문에 못했던 일, 종교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맘껏 즐기며 건강과 젊음을 과시했습니다.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성향인 나는 그런 방심 속에 다시 아토피가 재발하여 매일같이 뜨거운 땀을 흘려야 하는 끔찍한 생활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희망은 없었습니다. 나는 언제까지 끝모를 이 생활을 해야 하고 나의 가족도 친구도 나를 여기서 건져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그만 죽어야 한다는 생각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나를 받아 주실 건가요? 나를 기억하고 계신가요? 나를 살려 주실 수 있나요?’ 처참한 심정으로 머릿속에서 지워졌던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은 그 때 깜깜한 눈앞에 실낱 같은 섬광이 스쳐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아...하나님이구나...’하나님이 내게 찾아와 주신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나를 잊지 않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다시 교회로 돌아간 내게 ‘너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의 자녀이다. 너의 신분을 망각하지 마라’라는 말씀으로 나를 세워 주셨고 더 이상 사람을 보며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본 찬양팀에서 싱어로 세워지고, 청년부 임원을 맡으며 그 어느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강한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던 그때 믿지 않는 가족에 대한 기도도 날로 깊어져 갔습니다.

무척 몸이 피곤했던 어느 날, 밤새 눈을 비비고 눈을 두드린 탓인지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전에 망막박리 수술을 한번 받은 눈이라 잠깐 그러다 말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다음날이 되어도 그 다음날이 되어도 한쪽 눈은 계속 아무 것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무언가 크게 잘못 되었다는 불안한 생각에 병원을 찾아갔더니 왼쪽 눈의 망막이 완전히 떨어져서 시신경도 다 끊어졌고 수술을 해도 손가락 구분하기 어렵거나 아예 실명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급하게 수술날을 잡기는 했으나 가족들의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한없이 눈물을 흘리시며 힘겨워하시는 어머니께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엄마, 난 이 한쪽 눈으로도 지금 세상을 다 볼 수 있다는게 너무나 감사해요.” 어머니는 내가 신앙이 있어 너무나 다행이라며 그날 함께 수요예배에 참여하셨습니다. 이전부터 저의 기도를 많이 해 주셨던 한 집사님이 어머니께 복음을 전하시고 어머니가 돌아오시면 딸이 고침을 받는다고 가족을 부르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라며 말씀을 하시자 어머니는 예배 내도록 울며 통곡하며 회개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고 그 후로 매일같이 새벽기도를 나오시며 어머니의 회개기도는 계속되었습니다. 나의 어머니가 나의 가족이 주님께로 올 수 있다면 내 눈이 아니라 내 온 몸이 다 비틀려도 상관없으니 제발 우리 가정이 믿음의 가정이 되게 해 달라던 나의 간절한 바람처럼 기적적으로 어머니가 돌아오시고 아버지도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너무도 담대히 할머니와 친지 어른들께 이제 하나님을 믿겠다고 선포하시고는 집안에 있던 부적과 신상들을 모두 없애고 교회에서 받은 시계며 달력들을 마치 성물처럼 집안 곳곳에 채워 놓으셨습니다.

수술 전날 사람들에게 기도 부탁을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은 제게 수술하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사건’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수술을 하건 안 하건 가족을 인도하시려는 주님의 목적이 이뤄졌기에 분명 고치시겠지만 그것이 주님의 사건 즉, 전적인 주님의 영광이 되게 할 것이냐 평범한 일상으로 남을 것이냐는 저의 믿음의 분량에 맡겨졌습니다. 의사는 분명 수술하지 않으면 영영 시력을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눈알 자체가 축소될 것이라고 엄포했고 수술을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울 듯 하여 결정을 내리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밤새 고민하고 마침 청년부 하계 수련회를 위한 특별 새벽기도회가 있어 참여하였는데, 내 상황을 안 모든 청년이 눈물로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담임 목사님께도 안수기도를 받은 후 교회에 혼자 남아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내 눈을 맡긴다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입원해야 할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교회 본당에 앉은 나는 마지막으로 주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내가 지금껏 신앙생활 하며 주님을 위해 살겠고, 내 생명 주님께 드리겠다고 수천 번 고백하였습니다. 제 생명은 주의 것입니다. 하나님, 수술 하러 갈까요? 말까요?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그때 내 마음에 주님의 깊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정녕 나를 살아있는 하나님으로 믿었느냐? 네 믿음을 보여라.’ 참 부끄러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술하지 말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알았습니다. 뜻대로 하겠습니다. 주님 알아서 하세요.’그렇게 기도하고는 벌떡 일어나 본당 내려오는데 너무나 두려워 계단에 주저 앉아 버렸습니다. 내 눈이 짜부라져 없어져 버릴 것만 같고 다른 눈마저 덩달아 실명되어 앞을 볼 수 없는 장애인이 되어 버릴 듯한 공포에 움직일 수 없어 한없이 눈물만 흘렀습니다. 그 때 주님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내가 너를 지키겠다.’ 힘을 얻은 나는 밖으로 나와 병원에 전화하여 수술을 취소하자 담당 의사는 무척 화를 냈습니다. 정신없는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눈이 멀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사과하고 전화를 끊자 마음이 편해 졌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잘 보이는 눈을 가리고 안 보이는 눈으로 세상을 보았습니다. 길이 보이고, 도로가 보이고, 지나가는 자동차가 내 시야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늘이 보이고 내 손가락이 보였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조금의 빛도 보지 못해 깜깜했던 내 왼쪽 눈이 앞을 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께 전화해서 조금씩 보인다고 말씀드리자 너무나 기뻐하시며 함성을 지르시며 눈물을 흘리시며...‘예수님, 너무 감사합니다. 예수님...예수님...’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과 함께 처음으로 손을 잡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믿기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기적은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이 후에 의사의 권유대로 수술을 받고 비교적 괜찮은 직장을 얻어 사회생활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수술 석 달 후 시력을 측정하자 0.1도 못 나올거라 했던 시력이 0.5가 나왔고 재수술을 한번 더 받으면 더 시력이 좋아질거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주일마다 교회를 참석하시며 새신자 훈련도 받으시며 교회생활을 즐거워하십니다. 아직은 딸을 위해 기복적인 신앙이 남아 있지만 이 가족을 더욱 연단하여 정금같이 사용하실 주님의 계획을 저는 압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너무나 잘 잊습니다. 홍해를 가르며 바로의 군사를 매몰시키고 불과 구름기둥으로 광야길을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잊고 그 목전에서 범죄 할 수가 있었을까? 하고 항상 궁금하였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내 모습을 돌아보면 그와 같음을 발견합니다. 처음 주를 만났을 때의 한없는 평안함과 죽을 것 같은 절망가운데서 신분을 회복시키시고, 가족을 인도하고 내 믿음을 보기 위해 내 눈을 뜨게 하신 그 산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의 바쁜 일상에 몸을 맡기다 보면 그런 주님을 자꾸 잊어갑니다. 말씀의 능력과 기도의 능력을 상실한 경건의 능력을 잃은 그리스도인이 되어갑니다. 그런 나인 줄 아시면서도 왜 주님은 그리 애쓰셨나, 이 나를 다시 세우시기 위해 또 어떤 계획들을 세우시고 눈물로 애통함으로 위로와 사랑으로 나를 다듬으실 건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너의 아픔을 통해 내가 이루리라 너의 근심을 통해 내가 이루리라 너의 환난을 통해 내가 이루리라 너의 영혼 낙심치 마라 내가 너의 기도를 지금 듣고 있으니 너는 소망 가운데 기다리라 지금 내가 너를 외면한 듯 하여도 너를 세우기 위해 나도 아파하노라 너는 마음에 근심치 말고 전능하신 여호와를 기뻐하라 신실함으로 주의 날을 기다리면 내가 너를 높여 주리라” (2청년 17기 정성진 곡(曲)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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