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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목에 걸린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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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김유중 (성진교회)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그래서 목에 걸린 가시 같은 껄끄러운 존재. 삼키자니 넘어가지는 않고 뱉아 버리자니 무언가 있기는 있는 것 같고, 가만히 있자니 목이 아프고... 맨 처음 교회를 통해 내 사고의 굴레 속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20대 종손으로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유교적 전통과 제사문화에 익숙해 있었다. 가문의 조상을 섬기며 제사를 지내고 문중 일에 앞장서야 하는 일이 나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다 교회에 나가도 나는 절대로 교회에 나가서는 안될 사람이었다. 시골 우리집과 맞닿은 언덕 위 전망 좋고 양지바른 곳에 예배당이 있었는데 친구들이 교회에 다녔지만 그곳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딴 세상의 일이었다.

결혼하고 십 여년이 지난 후, 건강하시던 아버님의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셨다. 아내와 나는 열심히 간호하였지만 현대의학으로도 어쩔 수 없는 병이라 1년여의 투병생활 끝에 결국 돌아가셨다. 아버님의 수발을 들던 아내에게 아버지의 임종은 충격이었다. 그토록 평생을 건강하고 엄격하게 사시던 분이 약하디 약한 모습으로 그런 시아버지를 두려워했던 며느리 앞에서 속절없이 스러져가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던 아내는 그 일 후 '인생'에 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 듯 하였다. 그 후 언니의 전도로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는데 나는 아내가 마음의 평안도 얻고 사회생활의 일부분으로 신앙생활도 괜찮을 것 같아 허락을 하였다. 그것도 주일 낮 한번만 참석한다는 조건으로,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아내는 신앙생활 초기부터 말씀을 순전하게 받고 믿음이 급속도로 자라갔다. 그 당시 세상 즐거움을 좇아 살던 나에게 아내의 변화된 생활 태도는 내가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데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왜냐하면 늦게 들어와도 바가지를 긁거나 듣기 싫은 잔소리를 더 이상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이러한 즐거웠던(?) 생활도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새벽녘에야 집에 들어왔다. 미안한 마음을 갖고 들어왔는데 마침 아내는 자고 있었다.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아내의 얼굴을 내려다 본 순간 나는 놀랐다. 베개가 흥건히 젖어 있었는데 눈을 감고 있는 아내의 눈가로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내는 잠든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중에 하는 말이 '당신이 너무 불쌍해서 늦게 들어오는 저녁마다 울었다'는 것이다.

내가 불쌍해서 울어? 아내가 교회에 나간 후 처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 후 몸이 약한 편이었던 아내가 새벽이면 교회에 나가 기도를 하였다. 아침에 깨어보면 옆에 없었고 들어 올 때마다 울어서 눈이 부어 있거나 충혈된 모습이어서 바라보는 내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오늘도 내가 불쌍해서 울었단 말인가?'

어느 날 아침 밥상을 들고 들어오던 아내가 현기증을 일으키면서 어지럽다고 쓰러졌다. 나는 화가 나서 더 이상 새벽기도 나가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 후에도 아내의 새벽기도는 계속되었고 몸은 더 약해지는 것 같았다. 나로서는 아내의 새벽기도를 멈추게 할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결국 내가 '교회에 한 번 나가 주는 것'을 조건으로 걸고 아내의 새벽기도를 멈추게 할 수 있었다.

1992년 5월 31일. 아내와 약속 때문에 그야말로 끌려가는 망아지처럼 어쩔 수 없이 교회에 처음 출석하였다(그러나 어리석었던 나는 이 날이 오래 참으시고 참으시던 사랑의 하나님 앞에 죄인 하나가 돌아오는 날이었던 것을 한참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할렐루야!)

목사님과 처음 성경공부를 시작하던 날, 나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어차피 한번만 나와 주려고 했던 것인데 이런 성경공부로 골치아프게 할 것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기왕 끝낼 거라면 성경의 허구성을 멋지게 따져본 후에 교회를 끊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우쭐대며 성경의 한 부분을 들이대고 따지던 그 모습이라니,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이고 교만한 생각이었는지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 함께 공부하던 집사님들의 신앙생활 모습을 보게 되고 신앙 간증이며 신앙생활에 대한 조언을 듣게 되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공부하는 시간이었던 같다. 나에게 있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각자 고백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예수님은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존재'라고 말했는데 이 때는 이미 예수님에 대해서 믿어지지 않는 내 마음과 예수님에 대해 거부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음을 막연하게 깨닫는 것 사이에서 내적으로 갈등하고 있었던 순간이었다. 어쩌면 그 동안의 성경공부와 집사님들의 따뜻한 배려와 사랑으로 배타적이었던 나의 마음도 약간씩 누그러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성경공부를 끝낼 수 있었던 것이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임을 믿어서가 아니라 목사님과 여러 집사님의 관심과 배려와 사랑에 이끌렸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또한 그 때 성경공부를 통해서 차츰 차츰 '나의 하나님, 나의 예수님'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는 구원의 은총이 우리가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주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분명히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르겠다. 또한 예수님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나를 괴롭히는 존재'가 아니라 이제는 '내 마음의 한 가운데 좌정하셔서 나를 인도하시는 분' 임을 고백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은 예수님을 믿어서는 않된다고 생각했던 한 어리석은 존재를 하나님은 일찍이 사랑하셔서 불러 주시고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만을 섬기던 가문 속에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빛을 비추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수 천년을 하나님 모르고 살던 가문 속에 이제 하나님이 임하셨으니 이 후로 천대에 이르도록 하나님을 섬기는 가문이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우리 가정을 통해 가문 속에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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