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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이민 생활에서 만난 하나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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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도용석 집사 (미국 뉴저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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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교직생활에 몸 담고 있다가 보증문제(은행사고)로 인해 불가피하게 이민을 결정하게 되어 4가족이 어렵게 미국에 오게 된 도용석 집사님이 삶의 어려운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나 축복을 누리며 지내온 시간들이 감동이 되어 글로 적어 저희 에 보내오셨습니다. 지금은 제자의 길을 가고자 애를 쓰고 있는 집사님의 간증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총 5회에 걸쳐 간증문을 연재하여 이 곳에 올립니다. 많은 은혜 있으시길 바랍니다. - 운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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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낮선 땅의 도착

추운 겨울날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 첫 발을 내 딛는 순간은
아마~ 초등학교 3학년 가출을 했을 때 청량리 역에서 주춤거리며
가야 할 곳을 정해야 할 피치 못할 순간과 너무나 똑 같은 상황이 아닌가 싶었다.

다행이 갈 곳이 있었고 마중 나온 벗이 있었기에 그다지 두렵고 춥지는 않았었다.

공항에서의 포옹과 인사는 정신이 없었고 그저 우리식구와 함께
미국 땅을 온전히 밟았다는 안도의 숨을 고르기에 바빴던 기억만 난다.

반가움과 미래의 두려움이 한꺼번에 찾아오고, 휘한 찬란한 불빛과 경적 음이 스쳐
지나가고, 운전하는 친구의 손놀림과 지나가는 곳마다
이어지는 소개와 설명에 집중도 되고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마음이 분산이 되는 가운데
어느새 맨허튼이 마주 보이는 안락한 식당에 도착이 되었다.

시차 생각 할 틈도 못하고 주문이 되어온 음식을 마주하고 그저
이 곳이 미국이고 여기가 식당이고  이어서 가는 곳이 어디일까 하는
기다려지는 ... 기대감과 막연함이 밀려오는 통에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앉아 잇는 여기가 고향의 식당과 음식들이 맛이 별 차이 없이
똑 같이 느껴지고 친절히 맞이해 주는 종업원과 한국인들이
다소 마음을 안정을 찾아 주기에 이르렀다.

막내가 잠들어 밥도 못 먹인 채 식당을 뒤로하고 친구의  집으로 향해져
이렇게 첫 미국의 밤은 지나가고 있었고 나를 맞이한 사랑하는 친구는
하염없이 기뻐하며 이야기꽃을 피워 가고 있었다. 


2. 책임감이 밀려오기 시작

네 식구가 그동안에 정들고 여러 가지로 익숙해져 있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이제는 새로운 것과 거처에서 모두들 적응을 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첫 아침을 맞이 해야 했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나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이 곳의 삶을 설계하며
살아 가야하는 책임감이 엄습해 오는 부담감이 빨리 찾아온 것 같았다.

친구는 안정을 취하고 천천히 시작하자 라는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지만 가장으로서의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가
가볍지만은 않았었다.
혼자생각으로 이제 첫 날인데 ......왜 이리 조급해 지는 걸까?

몇 일간  새벽잠을 설쳐야 했다.
막내가 한국에서 지냈던 집이 생각이 나고 자신의 것이 그리웠던지
며칠 새벽을 잠결에 통곡을 하며 우는 것이 아닌가!
집에 가자는 떼를 쓰며 흐느끼는데 정말이지 짐 가방을 몇 번이고
들었다 놔야하는 꽉 막히는 가슴을 어찌하여야 할 지 몰랐었다.
집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어떨까 라는 막연한 질문도 해보고
그저 두려움과 걱정이 숨막힐 정도로 찾아오는데
아마 살면서 그렇게 어찌 할 바를 모를 정도는 손꼽을 정도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는데
일요일 아침 친구네 부부가 교회로 앞장을 서서 우리 식구를 인도해 갔다.
이 곳에 오기 전 교회 생활을 해야 수월하게 지낼 수 있다는 주변의
친구들과 선배들의 조언을 들었지만
막상 준비하고 나서려 하니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한국에서 우울증으로 시달려야 했기 때문에 여럿이 모이는
자리가 부담이 되었기에 더구나 교회는 더 더욱 낮이 설었다.
불교 집안에서 자란 나로서는 두렵고 떨리기까지 했었다.     


3. 사람들 만나러 갔던 교회

시간차  적응이 될  싶을 때 간 교회라
아직 어리둥절하고 초면이라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
모두들 반갑게 맞이하여 주고 이것저것 여럿이서 우리 식구에게
챙겨들 주느라 분주하기도 하고 황송하기도 하고....
성격이 원래 적응은 잘 하는 터라 그리 어려운 자리는 안 되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 장로님 댁에서 남, 녀 선교회 모임이 저녁에 있어서
초대되어 친구 식구와 함께 가게 되었는데 영화에서나 본 듯한 큰 별장 같은
집들이 앞 뒤, 좌우로 흰눈에 덮여 그림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몇 번이고 감탄하며 이런 곳에 한국 사람이 산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의심이 가기도 했다.
미국에 갑부들이 모여 산다는 알파인 동네라 하는데
어둠 속에서 더 더욱 내 자신이 작아지는 듯 했다.

역시 안에는 처음 보는 장식으로 둘러싸여 있는 여러 방들과
지하실의 영화관 다용도 방, 등등이 귀하게만 보였고
풍성하게 차려진 음식들..갈수록 기가 죽어져 갔다.
서로를 소개하고 나름대로 교회생활을 잘 하자는 인사와 함께
그 곳의 밤은 무르익어만 갔다 어색하게.....

언제쯤이나 우리가 이 같은 위치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어림없는 욕심이 밀려왔지만 그럴 때마다 나약하고 자신감이
상실되어 한 숨만 내 품게 되었다.

몇 주가 지나도록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는 하지만 아무런 은혜도
경험치 못하고 시작하는 순서가 많게 느껴지고 찬송가가 너무나 길다는
지루함, 목사님 설교 중엔 졸음을 참지 못해 집사람에게 찔림을 당하기 일쑤..
헌금시간엔 머릿속으로 계산하느라 한국 돈으로 얼마?....
친교시간은 다소 긴장이 풀려 음식 앞에서는 여유가 생겨
주위 분들과 비중 있는 예기도 나누지만 어찌 나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질 않고
걱정거리만 늘어가는 분위기..
다들 자리잡고 여유 있게 사는 사람들만 눈에 보이고 나와 처지가 비슷한 주위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몇몇의 분들은 자상하게 조언도 해주고 안심도 시켜 주지만
마음 안에는 아직 어찌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염려만 가득차있어
교회에 와서 크게 위로와 은혜가 되지를 않았었다.

어디를 다녀 봐도 미국은 좋은 나라인 것 같았다
얼마간 친구와 함께 사업하는 현장을 따라 다녔다
이 곳 저 곳을 따지고, 둘쳐 보고, 들어가 봐도 한국과는 너무나
좋은 것이 많은 나라인 것 같았다.

잘 왔다고 자신을 위로하며 그저 쉴 새 없이 다니고 경험 두하고
기분 전환이 잘 되는 쪽으로만 헤치고 다녔다.
맛있는 음식들, 관광명소들 가족과 함께 기분도내고 까짓 것 가지고 온 달러를
물 쓰듯이 쓰는 흉내도 내 보았는데 ...그리 평안한 마음이 오래 가질 않았던 것 같았다.

20일이 지나야 우리 가족의 안식처 렌트할 집이 나타나
친구 집에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우리에겐 무리가 되는 집이지만 집이 나오질 안아
우선 겨우 들어가게 되어 짐 보따리를 풀고 하나, 하나 살림도 장만하고, 얻기도 하고
본격적인 이민의 삶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써 볼 것이 없는 돈!
하루하루 제살을 깍아 먹듯이 지내며 며칠을 뒹굴고 있었다. 


4. 살림하는 아빠가 되다

막내는 유아원, 큰애는 1학년에 다니며 학교생활에 적응을 해야 했고
두 부부는 일자리를 찾기에 이르러 함께 신문을 뒤지며
전화로 확인을 만만치 않게 해야 했다.

영어를 해야 했고, 유경험을 요구하며, 출퇴근은 본인의 차로 등등..
자격 요건 중에 내가 갖춘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벌러덩 누워 아무 생각 없이 있다 다시금 연결해 보고 이렇게
며칠을 신문과 싸우며 시간을 소비하다
몇 군데 정해놓고 결판을 붙었다
좀 괜찮은 곳이 나오면 주급이 현실적으로 너무나 싸고
이래저래 핑계와 무능력에서 오는 좌절감,,,
사실 생소한 일에 자신이 없어서 포기를 하기도 했었다.

결국 집사람이 씩씩하게 일자리를 몇 군데 찾더니 면접을 보았다
당분간 자기가 일을 해 볼 테니 아빠는 천천히 찾아보자고....
사실 한 달 집세 정도 하는 주급이지만 우선 시작을 하기로
합의를 보고 아이들과 집안일 은 나의 몫으로...
사실 몇 개월의 집세와 생활비만큼 여유가 있기에 그렇게 결정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미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 첫 출발을 내 딛었던 그 때가 어제 같은
느낌이다.

집사람은 신앙생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크게 두려워하지 않고
잘 적응하는 것 같아 안심인데  한 편 내 자신은 부끄럽기도 하고
늘 엄습해 오는 막막함, 무기력감, 허탈감, 염려. 등등.. 집에서 혼자
이이들 학교 마칠 시간을 기다리며 오만가지 생각에 사로 잡혔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한다면 까짓 거 좀 쉰다고 마음을 먹지만 급한 성격에 어디 그런가?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그리 쉽지가 않았다.

빨래 보따리를 매고 동전 세탁소에서 시간 반을 때우고
집안 청소, 소량의 설 것이, 시간 맞추어 고향에 친구들 ..등등 전화로
안부를 전하며 맘을 달래기, 영어 단어 외우기...사실 외워지질 않았다
하교 후 두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도 갔다가, 군것질 두 시키다
다양한 시간을 보내며,  참!  저녁 준비를 빼먹을 수가 없었다
경험은 거의 없었지만
한국 가게에서 준비한 반찬 재료로 맛있게 만들어 가족의 입을
즐겁게 해 주고 싶었기에 나름대로 구상을 많이 했다.

저녁 반찬을 먹는 집사람과 아이들의 표정과 반응에 민감해지기 시작했으니....
사실 아내들의  집안 살림을 하는 것이 쉽지가 않고 적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 곳 미국 땅에 와서 실감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어쩌다  아내의 직장일이 늦어 기다리다 보면 걱정이 되기도 하고
실컷 준비한 저녁상을  맛없이 먹을 때는 괜히 묘한 감정이 맴돌고...^^

이렇게 짧지 않은 다섯 달을 가계부를 써가며 집안 살림에 손을 대기도 했었다.   


5.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

그동안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 거의 5개월을 함께 다녔지만
아무런 변화와 반응이 일어나지가 않았다
남선 교회 모임과 구역예배가 한 달에 한 번 있었는데 어디를 가든
미국생활이 처음이요 신앙생활도 처음이요 만나는 사람도 낯설어
그저 인사하는 정도가 의례적이고 형식적이지 않았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나에게만 오는 건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러했다.

그동안 한국에서 겪은 우울증의 증세가 이 곳 생활의 적응으로 잊은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그저 살아가야 하는 염려와 걱정이 더 크기에
우울증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것 같았다.
하여간 사람들이 모이고 새롭게 예기하는 분위기는 그리 내키질
않았다.
지금에야 생각하면 교회에 문을 열고 들어는 왔지만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는 계기나 옆에서 이끌어주는 자리가 미흡하지 않았었나 아쉬움을 가져본다.
주일 아침이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늘어놓고 교회 가기를 꺼려하고
배가 아프니 다음 주에 가겠느니 약한 소리만 늘어놓기 일쑤였다.

그러기를 반복하고 있는 어느 날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고 가끔 뵈었던
평안교회 신 다윗 목사님께서 뜻하지 않게 과일을 푸짐히 들고
처음 뵙는 교회분과 집으로 방문을 해주셨다.
몇 번 목사님을 뵈었고  따뜻한 격려와 조언의 말씀을 들었기에 어색하지는 않았고
함께 오신 분에게 그동안 하나님을 만나서 겪은 간증을 몇 가지를 듣기도하고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고 끝으로 신 목사님께서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를 하시는데
너무나 마음에 감동이 되고 그동안에 긴장과 염려로 가득차있던
내 마음이 스르르 눈 녹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변해지는 강한  느낌을
받았기에 혼자 의아해 하기도 했었다.
목사님께서 가신 후 왠지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느긋한 기분이
자리를 잡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마침 다음 날이 내가 처음으로 갖는 직장의 면접을 보는 날 이었다
아침에 식구들을 학교와 직장에 보내고 난 후 혼자 밥을 앞에 놓고
눈감고 처음으로 두 손을 모아 하나님께 기도를 간절히 했다
나에게 용기와 힘을 주시고 오늘 있을 면접에서 어려움 없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에도 차안에서 똑 같은 방법으로 기도를 하며갔었다.
면접은 쉽게 이루어졌고 아이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
주겠노라고 약속을 받고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또 다시 차안에서 기도를 했다.
아이들을  잘 돌봐 줄 사람, 우리의 현실에 맞추어 봐주실 분을 ....
그 날 저녁에 그 분이 나타났다 자상하고, 가까운 곳에, 인상이 좋으신 아주머니가....
금요일 저녁에 두 가지가 이루어져 다음 월요일이면
나도 미국에 첫 직장에서 꿈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사로잡혀
잠이 쉽게 오질 않았었다. 사실 두렵기도 했지만 별거 아니 것처럼
느껴졌었다.

미국에 와서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 마음 안에 가득 차 있었고
기쁨과 평안 여유와 자신감............함께 했고,
어느새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도 알지 못한 채
마음 안엔 벌써 평안교회 신 다윗 목사님에게 바삐 가 있었다.

- 다음 글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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