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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누드 그림을 포기하고 어린이 전도자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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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장혜영 자매 (오스트리아 작은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서 제 마음속에 들어오던 날!(1987년 1월 21일)

관절염으로 인하여 학업을 (그림 공부-독일에서) 잠시 중단하고, 남은 저의 인생을 제대로 지고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에, 제 자신이 가장 믿던 부모님마저도 저의 아픔에는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는 절망감에, 막연히 쉴 곳을 찾아 삼년만에 귀국을 결행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될 줄을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귀국후 얼마 안되어 하나님의 놀라운 복음을 듣게 된 것입니다!

골고다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참으로 쉼을 찾던 날!(말씀을 전해 준 형제님과 기도를 해 준 형제 자매님께 고마움을 전함)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제 마음의 중심을 완전히 바꾸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예전에 부모님의 충고도, 매도(나이 들어서까지 어찌 부모님의 속을 썩혀 드렸는지 맞기도 많이 맞았다) 저를 변화시키시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한 말씀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놀라운 기적!

그 동일한 말씀은 이후 팔년 동안의 독일 생활에서도 동일하게 살아움직였는데, 이제 어떻게 한 발짝씩 주님의 말씀으로 제가 인도를 받았는가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석달간 부모님 곁에서 쉬는 동안, 어떤 자매님과의 성경 공부를 통해서 주님의 말씀은 저의 의문점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주셨는데, 그때 주님 말씀의 통쾌함과 주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이 - 성경을 보는 일이 완전히 제 생활의 첫째 자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독일로 돌아와 그림을 그리면서(관절염은 주님의 은혜로 치료됐음) 주님을 알아가는 기쁨은 어떤 일보다도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약 두 해가 지나가자 그림을 그리는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누드(나체 : 옷을 벗은 사람들)만 그려 왔는데, 예수님을 모를 때는 인간의 몸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예수님을 안 후에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사람을 어찌 이리 기가 막히게 만드셨는가 하는 놀라움에, 완전한 예술가이신 하나님께 찬사를 드려 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에 죄가 들어온 후에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저의 마음은 후자 속에 있어서 별 어려움이 없이 이 년 동안 그려 왔지만, 만약 사람들이 제 그림 때문에 죄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면(마음속이라도), 그것은 제 책임임으로 저는 그림 속의 사람들에게 옷을 입히는 일을 시작했는데, 어떻게 그 일이 어렵고, 즐거움이 없는지… 주님께 원망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저는 다른 사람처럼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추상화나 풍경을 그리지 않고, 이런 종류의 그림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데 왜 못 그리게 하십니까?"

정말 힘든 나날이, 한숨과 더불어 손은 움직이는데 아이디어가 전혀 없으니… 마침내 제겐 그림의 한계가 왔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잠언을 통하여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잠언 23:27).

말로는 그림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을 드리겠다 했지만 내 자신의 영광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음을 일깨우셨던 것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픔이었지만, 사실이었습니다. 우선 순위를 바꾸기 원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그럼 어찌하오리까?:"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또 하나 인정하기 싫었던 것은,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주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삼 년동안 매해 비슷한 시기에 이 말씀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씀에 대해,

한 살(믿음의 나이) 때는 : 무슨 뜻이지?

두 살 : 혹시, 나? 아니지! 이사야에게 하셨지.

세 살 : 나에게 하시는구나. 그럼 어디로 가지요?

또한 같은 시기에 한 분을 통해 성경 학교에 가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것을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으로 분별하였습니다만 고집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성경 학교 가는 게 '확실히' 주님의 뜻이라면 사람을 통해서 말씀 마시고 오직 주님의 말씀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되, 말씀하실 때에는 이것이 바로 너에게 한 말이란 걸 나로 하여금 알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서른 여덟살에 인생의 길을 바꿔야 되는 것이니 그 말씀이 이해가 되지를 않더군요(그리고 사람의 눈이 두려웠습니다.)

1) 주님, 저는 육신의 나이가 들만큼 들었으니 어찌 진로를 바꾸겠습니까?

-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세였더라(창 12:4)

2) 그러면 주님, 저의 믿음의 나이가 겨우 세 살인데 좀더 성숙한 사람을 보내시지요?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누구에게 모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렘 1:7).

3) 저는 돈이 없질 않습니까?(그 때 상황은, 방학중에 일을 하면서 살다가 아주 어려운 때를 맞게 됐음) 삼 년동안 누가 돈을 대줍니까?

-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여기에 쓰지 않은 여러 가지가 많지만, 주님께선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확신을 주셨습니다.

1990년 10월, 성경 학교(Bibelschule Brake)에 들어서면서, 주님은 신실하시게 제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그 말씀은 어려운 성경 학교 시절을 계속 이끌어 주신 말씀입니다.

저의 자아 처리, 언어, 대인관계(문화, 습관… 등), 일(성경 학교 학생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 됨), 밀려오는 과제 등에 힘겨워 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사랑과 그분의 능력 있는 말씀 덕분이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려고 여러 번 생각도 해 봤지만 주님께서 정해 준 자리라 떠나지도 못하고 "주여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옵소서"하는 말씀이 나의 간절한 기도가 되었습니다.

어려움 중에 있었던 큰 수확은, 살아 계신 주님을 더욱더 알아 가게 된 것입니다. 학비도 삼년동안 너무 넉넉하게 채워 주시고 공부에만 몰두를 할 수 있었고, 성경을 알아가는 기쁨도 너무 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친구들을 주님 안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틀린 사람들이지만(얼굴색, 언어) - 주님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하나가 된 놀라운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신비하도다 복음의 비밀이여! 하는 뜻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것을 배우게 됐지만 그 중에 두 가지를 말한다면 주님께 대한 신뢰와 인내였습니다.

주님은 해냈습니다!

저는 그분과 더불어 얼마나 졸업식의 기쁨을 누렸는지!

하지만 졸업식의 기쁨은 잠시, 저는 또다시 짐을 싸들고 그 다음날 스위스를 향해 떠났습니다. 어린이 사역자양성소에서 있는 삼개월 간의 수업을 받기 위해서지요(어린이 전도 협회에서 주최).

주님은 제가 바로 거듭나자마자 육개월 된 저의 조카를 통해서 저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후 어린이를 관찰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가 제게 The은 사랑을 알아가게 되었고, 저도 어린이에게 사랑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서 주님을 만나야만 되는 중요성도 알았습니다.

삼년의 성경학교 학비도 넉넉하게 채워주신 주님은 삼개월의 수업료도 (저의 믿음 없음에도 불구하고) 채워주시고, 고향에 가고 싶어서 향수병이 든 제게 넘치게도 비행기표 살 돈도(학생과 선생들을 통하여) 주셔서 지금 이렇게 한국에 나와 주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을 나누게 된 것입니다(가슴 속 깊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스위스에 있던 삼 개월은 저에게 또하나의 결정을 요구하였습니다. 그 과정이 끝나면 중등부를 도와 달라는 내용의 초청이 독일 교회의 한 모임에서 온 것입니다(집 제공+월급:많지는 않지만). 제 마음은 그곳으로 기우는데, 정작 주님이 원하시는 곳은 오스트리아에 있는 어린이 전도협회였습니다. 그때 다시금 제 마음이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독일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매달 걱정없이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가 저에게는 더욱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또 하나님의 일도 하는 거니까요).

그러나, 주님은 사람이 공급하는 곳에 의지하길 원치 않으시고 오직 주님 자신만을 의지하길 원하셨습니다(그 선교 단체(Child Evangelium Fallowschip)는 일정치 않은 후원금으로 지내야만 합니다).

"삼년동안 그리 살았으면 됐지, 또? 주님 싫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 11:40).

믿음이 없는 제게 주님은 얼마나 신실히 자신의 말씀을 따라 저를 지켜주셨나 확인시키셨는데, 이제 저는 순종하는 것을 배우는 차례가 온 것 같습니다. "예, 주님"(그 후, 제게 마음의 평안이 찾아 들고 앞날에 대한 걱정은 싹 없어졌습니다).

새로 시작할 일에 기대감을 크게 갖고, 제가 이해치 못하던 일-그림 공부를 중단하게 된 일-이 그때서야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비로소 그분의 큰 뜻을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어린이를 위해 그림책 자료를 만드는 일의 그림 부분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선교 이야기 등…).

인물을 많이 그려야 되기 때문에 육년 동안 인체를 확실하게 그리게 하신 주님. 어떤 모형이 없어도 저의 손은 익숙하게 연습이 되어 있고, 아이디어는 주님께 오는 것임을 확신하므로 저는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통하여,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법으로 인도하시는, 완전하신 주님께서 제 안에 계심이 제게는 어떤 것보다 중요함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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