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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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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강신옥 성도

저는 초등학교에 근무하던 1985년 10월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은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고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제가 있는 대구를 1년 동안 왔다 갔다 했습니다. 이렇게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은 굉장히 불편하고 또 공부하는데 지장이 많았기 때문에 남편은 대학원 졸업만 하면 대구나 서울 한 군데로 합쳐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때가 되니까 남편은 신학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언젠가 신학을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시 부모님도 안 믿는 상태였고 저 자신도 이 일에 선택받았다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하나님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나도 교직을 택할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택했다. 목회 일은 정말로 감당할 수 없어서 차선책으로 이것으로 택한 것이니 신학은 하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제 말을 듣고 막무가내로 고집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후 다락방에 올라가 계속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기도가 듣기 싫었는데, 기도 소리 자체보다 그것에 제 마음이 감동되고 흔들릴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  불가능했던 서울 전근

그래서 첫 아이가 태어날 때도 되었기 때문에 애를 낳아 키우고 어느 정도 생활 기반이 잡히면 그때 신학을 하라고 차선책을 제시했습니다. 그랬더니 서울로 전근하면 그런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이가 없어서 "아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해요. 지금 어떻게 서울로 전근을 한단 말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지방과 서울의 교사 교류는 일대일 방식으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서울에서 한사람이 대구로 오는 경우가 있어야 대구에서도 한사람을 서울로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우선 순위가 정해져 있는데, 일 순위는 부부교사이고 이 순위는 부부가 공무원인 경우고 삼 순위는 회사원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삼 순위에도 들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서울로 전근을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말해 주니까 남편은 "하나님은 하시고자 하면 다 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그것을 믿음이 아니라 황당무계한 생각이라고 여겼고, 정말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12월이 되었을 때 타 시도로 전출할 교사는 신청하라는 공문이 학교에 왔습니다. 저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잠자코 있었는데, 어느 날 저의 가정 형편을 잘 아시는 교감 선생님이 오셔서 "강 선생, 서울 보내 줄까?"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농담이려니 하고 "제가 무슨 자격이 있어야 가지요"라고 했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아, 자격이 따로 있나. 일단 내봐. 안되더라도 밑져야 본전인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래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어야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다음 해 3월에 첫아이를 출산하기도 하고, 서울이란 곳에 대한 막연한 이질감과 두려움도 있고, 가능성도 없는데 괜히 내가지고 망신만 당할 것 같아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틀쯤 지나 교감 선생님이 "강 선생, 신랑이 서울에 있는데 타 시도 전출 신청 안 해?"라고 하면서, 당신은 며느리가 대구에 있어서 서울 전근을 몇 년째 신청을 하고 있지만 남편이 회사원이기 때문에 안 되고 있다고 하시면서 "그래도 뭐 해 봐야지. 올해는 서울은 안되겠고 경기도라도 내야겠어. 그래도 서울에서 대구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아? 강 선생도 한번 내보지 그래"라고 하셨습니다.

며칠이 지나 남편에게 교감 선생님이 이렇게 권유하더란 말을 하니까 남편은 반색을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니까 신청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안될 것 뻔히 알면서 내 가지고 소문만 나면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겠어요. 그리고 서울과 대구에 떨어져 있는 부부가 어디 한 둘이에요?"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신청을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된다고.

그래도 제 스스로 신청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미루면서 며칠이 지났는데 교감 선생님이 와서 "이거 오늘까지 보고해야 하는데 강 선생님 어떻게 보고해 줄까?"해서 "저는 모르겠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러면 일단 써 줄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전출 신청을 하는 것으로 보고가 된 것입니다.


  꿈으로 미리 보여 주심

이때쯤 해서 저희가 살고 있는 사글세 집 계약 기한이 다 되었기 때문에 저는 애도 태어나면 집이 좀 넓어야 하니까 다른 집으로 옮기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은 이제 몇 달만 있으면 서울로 이사 갈건대 왜 집을 옮기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안되는 일을 가지고 왜 자꾸 그러느냐"고 하니까 남편도 혹시나 싶었는지 다른 집을 알아보고 이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아파트를 전세 500만원에 얻었는데 여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남편이 그 집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보지 않고 계약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우리가 계약한 사람과 원 주인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사실을 꿈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전세 계약을 하고 와서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가 이사가는 날이 되어 이사를 들어가는데 낮에 계약을 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집 거실에 앉아서 자기가 주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롱을 안으로 들여가다 말고 다시 밖으로 쫓겨 나왔습니다. 이 꿈이 너무 이상해서 남편에게 얘기를 하면서 "이사갈 집에 무슨 문제가 있나 봐요"라고 했습니다. 그때서야 남편은 "아하, 내가 등기부를 떼보고 계약을 했어야 했는데"하면서 급히 나갔습니다. 그리고 등기부등본을 떼어 확인한 결과 정말 집주인과 계약한 사람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집을 소개한 부동산에 전화를 해서 "우리가 계약한 사람이 확실히 집주인입니까?"라고 물었더니 "확실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그 집에 직접 갔더니 딴 사람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에 부동산에  가서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주인 행세를 했던 사람이 양심의 가책도 되고 겁이 났는지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없었던 걸로 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약금은 자기가 이미 다른 데 다 써버렸으니 한달 뒤에 주겠다고 했습니다. 기가 막혔지만, 이제는 돈 못 받을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거봐, 내가 집 얻지 말자고 하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역사가 나타나나 보다' 하는 생각과 '이것은 아마 하나님이 나에게 그런 것을 알게 하시려고 겪게 하시는 모양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남편이 신학하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 들였고, 이왕 할 바에는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렇지만 서울로 전근은 안되니 집은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남편도 하는 수 없이 다른 집을 얻었습니다. 대구 MBC 앞에 집을 얻은 것이 그 해 1월쯤 되었는데, 저는 결혼하고 처음 얻는 전셋집이어서 내 집 같은 생각이 들고 오래오래 살아야겠다는 마음에 돈을 들여 대문에 페인트칠도 하고 벽지도 바르고 여러 군데 단장을 했습니다.


  서울로 전근을 가게 됨

타 시도 전출 신청 결과는 2월 말 경에 발표되는데 저는 전근이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출 신청해 놓은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꿈을 꿨는데, 제가 서울로 전근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여기가 어디예요?"라고 물었더니 경기도 진입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서울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꿈을 깨어 남편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이제는 정말 전근이 된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심리학적으로 보면 평소 무 의식 중에 원하던 것이 꿈으로 나타나는데, 내가 전근 신청을  했으니 그것이 꿈으로 나타난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봄 방학이 되어 신학기 준비를 하고 출산할 때가 다가와 배가 굉장히 불렀던 때였습니다. 2월 25일 경이었는데, 새벽에 전화가 왔습니다. 대구 교회 배 집사님 사모님인데, "강 선생, 전근 가게 됐어"라고 하시는 겁니다. 저는 놀라서 "무슨 전근요?" 하니까 신문에 났다고 했습니다. 너무 놀라 남편에게 "내가 서울로 전근가게 됐데"라고 했더니 남편이 확인해 보라고 했습니다. 학교에 전화를 해 보니 교감 선생님이 정말 전근 가게 됐다고 하면서 빨리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까 신문을 본 학부형들에게서도 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학교에 가니까 교감 선생님이 "나는 망했다"고 탄식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며느리가 서울로 전근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경기도로 냈는데 그대로 되었고, 저는 정말 서울로 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아이고, 나도 차라리 강 선생처럼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서울로 할 걸 그랬다"고 후회했습니다. 저는 이게 정말 꿈인지 생시인지 벙벙할 따름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는 서울에서 처음 지방 교사들에게 대거 문호를 개방한 것이었습니다. 대구에 15명이 할당되었는데, 저는 대구에서 서울로 신청한 사람 가운데서 경력이라든가 나이라든가 모든 것이 제일 낮았습니다. 그런데 이전에는 실제로 전근되는 사람이 한 두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해도 신청자가 별로 없었고, 그 때문에 모든 면에서 가능성이 없었던 제가 서울로 전근을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였습니다.

1월 27일까지 서울에 와야 한다는 교육위원회 통보가 왔습니다. 그래서 급히 집을 내놓고 꼭 가출 소녀처럼 옷 보따리만 대충 싸 들고 27일 경기여고 강당에 갔습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어느 학교인지 알려 주지 않고 북부 교육청이라고만 말해 주었습니다. 오리엔테이션을 한 시간 정도하는데 그곳 장학사가 "여러분은 정말로 행운아입니다. 우리 나라 건국이래 처음있는 혜택을 받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서울 교육에 누가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근무할 학교는 도봉초등학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도봉산 근처라고 하면서 장학사는 "선생님은 특혜로 올라 왔기 때문에 변두리에서 1년 있어야 합니다. 일단 그곳에 있다가 도심지로 장거리 내신을 내면 옮겨 주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이전에 서울 변두리로 전근 가는 꿈을 꾼 것이 생각났습니다. 비로소 정신이 차려지면서, '아 정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역사하셨구나. 내가 하도 안 믿으니까 이렇게 꿈으로 보여 주셨구나' 하면서 '내가 이사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를 했습니다. 대구에서 전세금을 빼야 서울에서 집을 얻는데, 그 전세가 빨리 빠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어 물어 도봉초등학교를 찾아갔는데 정말 서울이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는 변두리였습니다. 여기서 전철로 한 정거장만 더 가면 경기도 의정부라는 말을 듣고 '정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후 잠시 서부교회에 있다가 두달 후에 대구에 있는 전세가 빠져 의정부에 집을 얻었습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 저는 '하나님 일을 하려는 사람은 하나님이 각별히 보호하시고 길을 열어 주시는구나. 정말 이것은 거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심하니까 마음에 평안이 왔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런 체험을 하게 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남편이 신학을 하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까 그후부터는 시댁에서 아무리 반대를 해도 흔들리지 않았고,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계속적인 하나님의 역사

그때는 정말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신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하고 일주일 후에 큰아이 명철이가 태어날 때였습니다. 예정일이 더 남았는데도 진통이 심해 새벽 3시에 집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오자마자 택시가 와서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속하게 서울 미아리에 있는 성가병원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초산이라 12시간 넘게 진통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 전에 제가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을 하다 보니 몸이 너무 약해져 애를 낳고 난 그 이튿날부터 이 삼일 동안 계속 정신을 잃는 수가 많았습니다. 그때 서울에 시할머니가 계셨는데 남편을 막 야단 치셨습니다. 부인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면서 무슨 신학을 하려고 하느냐고, 왜냐하면 그분들이 와 계시는데도 제가 혼수상태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실을 얻어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로 가다가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지니 마치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 귀에 "할렐루야!" 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할렐루야를 했느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자기가 그랬다고 했습니다. 제가 화장실에 가다가 쓰러지자 다급해서 기도했는데 그 소리에 제가 깬 것입니다. 이런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이전에 많은 간증을 통해 "할렐루야"를 외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다는 말이 실감 나지 않았는데 직접 체험하고 보니 "할렐루야"라는 말에 큰 능력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믿음이 너무 약하니까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기 위해 계속 이런 체험을 하게 하신 것 같습니다.

도봉초등학교에 1년 있다가 전근 신청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은 신학원이 있는 대방동 근처에 집을 얻어야 된다고 하면서 제 주소를 대방동으로 해놓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근이 뭐 당신 뜻대로 되는 줄 알아요? 서울이 어떤 곳인데"라고 했더니, "아니, 그렇게 겪어 보고도 그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제가 아직 전근할 곳이 정해지지 않았는데도 혼자 가서 대방 교회에서 도보로 5분 정도되는 곳에 집을 계약했습니다.

저는 또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 큰 일이다 싶어 염려가 되었는데 전근 발표하는 날 또 꿈을 꾸었습니다. 칠판에 선생님들 이름이 죽 나왔습니다. 이때는 비정기 이동이기 때문에 저는 전근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었습니다. 정기 발령이 다 되고 나서 자리가 남아야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꿈에 제 이름이 써 있는데 신길동으로 발령이 난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갔는데 정말 발령이 나서 칠판에 이름이 죽 써 있는데 저는 도림초등학교로 났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에게 "도림초등학교가 어디 있어요?" 하고 물으니 "신길동에 있다"고 했습니다. 너무 놀라 화장실에 들어가 기도를 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너무나 뚜렷하게 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 앞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당신은 정말 살아 계신 분입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가보니까 대방동에 얻은 집에서 세 정거장 거리였고, 그 학교 선생님들 중에 집이 가장 가까웠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놀랍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이사가 없어도 하나님을 잘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기적이사를 보여주시지 않지만 저처럼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극약 처방인 이 기적이사를 통해 확실히 믿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는 믿음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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