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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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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김양순  (광주순복음교회)

할렐루야!
부족한 저에게 간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아 그 사랑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지금 저에게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가 있습니다. 염색하지 않은 새하얀 머리에 깔끔하게 차려 입고 언제나 반듯한 모습의 외할머니이십니다. 가끔씩 외할머니가 오시면 우리 집 아이 셋은 인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찬송가 두개를 챙겨들고 외할머니 앞에 나란히 앉아 힘껏 소리를 질러가며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할머니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계시는 동안 어머니와 성경말씀과 신앙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쉬지 않고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새벽이면 언제나 방언기도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야 깨달은 것이지만 너무 감사해야 할 환경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기억도 초등학교 때까지 뿐이고 그 후로는 교회와 점점 멀어졌습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중에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내 스스로가 자신을 했고 당당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교회로 돌아갈 것임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결혼할 당시 시댁은 철저히 우상을 숭배하는 집안이었습니다. 친정 어머님은 결혼전 시댁 어른과 남편 앞에서 저의 신앙생활에 대해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제가 교회에 나가려 하자 남편은 이혼을 하고 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이 없었고 갈급한 마음이 었었던 저는 ‘남편이 싫어 하는데 굳이 나가서 뭐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접어두자’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세상의 유희를 즐기며 살았습니다. 시댁에서의 제사드리는 모습과 명절날 차례 지내는 모습은 내가 TV 화면 속에서나 보던 풍경이었습니다. 심지어 시어머님께서는 결혼 후 저의 첫 생일날 갖은 나물과 시루떡으로 상을 차려놓고 불경을 외우셨습니다.

첫 아이가 세 살 되던 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얼마 후 높은 언덕 위에 교회가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나하고는 상관없는 딴 세상의 일이었습니다. 주일이면 아파트 앞이 많은 차들로 북적일 때 우리 가족은 언제나 나들이 길을 나서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여러 우상들을 섬기는 저를 보시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2년 후 친정 아버님이 폐암 말기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부모님은 계속 신앙생활을 하고 계셨습니다. 병원 치료를 위해 우리 아파트로 아버님을 모시고 왔고, 섬기던 교회를 가기 힘들었던 어머님은 순복음교회를 두 달 정도 다니셨습니다. 거기에서 한 집사님을 만나 우리 집 사정이 알려지자 전도사님과 여러 집사님들이 오셔서 계속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랜만에 드린 예배였고 장로교에서 엄숙한 예배로 길들여진 저로서는 그렇게 뜨겁게 기도하는 모습이 낯설고 어색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여러 날을 모여 예배드리고 눈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면서 부보님과 한 교회에 출석을 하게 되었는데 마침 일천번제를 드리는 기간이어서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을 데리고 날마다 교회를 나갔습니다. 예배 전 준비 찬송이 참으로 은혜스러워서 계속 찬송을 부르고 싶었고 아버님을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부르짖어 간구했습니다.

1년쯤 지난 뒤 사모님께서 저에게 일을 그만두고 신앙생활만 열심히 하라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님을 통해 자꾸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냥 흘려 들었습니다. 일하는 중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병원치료를 같이 다녔고 좋은 약을 찾아 다니기도 했습니다. 아버님의 손에는 언제나 성경책이 들려 있었습니다. 병이 악화되고 호전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말할 힘이 있으시면 옆 병상의 환자에게 언제나 전도를 하셨고 문병객들에게도 전도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 때 아버님의 여러 가지 믿음의 모습을 보며 저희 가족은 물론 본 교회 목사님까지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혼자 살던 남동생이 산에서 사고로 척추를 다쳐 수술을 받고 부모님이 계신 우리 집에 들것에 실려 내려왔습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결혼초부터 시작된 시댁 식구들의 거침없는 말들로 인해 마음의 상처가 육신의 병이 되어 나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병환중인 아버님을 모시고 사는 2년 동안 저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한방에는 머리카락은 다 빠지고 뼈만 앙상한 아버님이 누워 계시고, 한 방에는 겉모습은 멀쩡한 커다란 장정 하나가 반듯하게 누워있고,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저의 언제나 몸은 빳빳하게 경직되어 있고 24시간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2001년 1월 어머님에게는 성경책만 손에 들고 살아라는 유언과 우리 자녀들에게는 무엇보다도 귀한 아름다운 믿음을 유산으로 남기시고 아버님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가실 때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평온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 해 여름 다시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순복음교회를 다녔습니다. 이혼을 하고 교회 다니라던 남편도 본인은 다니지 않았지만 나와 아이들이 주일날 교회 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게 되었고 늦을 것 같으면 아이들도 챙겨주고 교회에서 돌아오면 청소도 말끔히 해 놓고 기다리고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는 남동생도 나아서 서울로 올라갔고 아버님은 평온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천국을 가셔서 우리 가족이 위로를 받고, 내 건강도 조금씩 회복되어 갔습니다. 모든 것이 평온해진 듯 싶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은 금요일 오후나 토요일 오후가 되면 나를 힘들게 했던 이런 저런 말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내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화가 끓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아침이 되면 ‘이런 마음으로 예배는 드려서 뭐해’하는 마음이 들면서 집에 주저 앉기를 세 번. 그 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맞아 이건 사탄의 방해야. 그래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보자’하고 끓어 오르는 화를 주님을 의지하면서 인내하며 두 주일이 지나고 나서 주일날 아주 평화스럽게 두 아이를 데리고 교회를 가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저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싶고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뜨겁게 기도하는 시간이 좋았고 오늘은 무슨 말씀을 주실까 기대하게 되고 당회장 목사님을 통해 주신 말씀이 달기만 했습니다.
가끔씩 예배시간에 졸았다는 사람들이 이상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 하나 깨닫게 해 주시고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기뻤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신했던 내가 철저히 우상을 숭배하는 집안으로 들어온 것은 이 집안에 복음의 씨앗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시댁식구들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서로가 믿임으로 하나되고 사랑으로 하나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교회 가자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그저 기도만 했습니다.

그런데 2년쯤 지난 주일날 아침에 같이 교회가자며 먼저 서둘렀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살아계셔서 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내가 변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랑으로 품어야 함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내 마음 속에 오셔서 나를 위로해 주시고 마음을 조금씩 치료해 주셨습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까지도 조금씩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내 환경은 별로 변한게 없어 보이지만 먼저는 내 마음부터 시작해서 내 삶의 환경들이 조금씩 변해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주님이 주신 진정한 평화인 것 같습니다.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듬뿍듬뿍 부어주시기 보다는 잔잔하게 임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푹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도 시간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저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저에게 회개케 하셨습니다. 아직까지 그런 기도를 드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세세한 부분까지도 낱낱이 알게 하시고 회개를 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울며 회개하고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그 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더 낮아지기를 원하셨고 더 가까이 나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저를 통해서 남편을 구원하시고 남편과 이 가정을 통해서 시댁을 구원하실 줄을 믿고, 저는 그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따를 뿐입니다.

우리 형제들이 외할머니 앞에서 소리질러 찬송가를 불렀듯이 지금은 저의 두 아이들이 외할머니 앞에서 찬송하고 율동을 하곤 합니다. 그럴 때면 어머님은 옛날의 저희들을 말씀하시곤 한답니다. 외할머니와 어머님이 그랬듯이 어머님과 제가 만나면 신앙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먼저 가신 아버님을 떠올리면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곤 합니다.
사랑하던 딸이 당신의 품을 떠나 사는 것이 마음 아프셨던 하나님, 그래서 2년 동안의 힘든 과정을 통해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다시 회복시켜 주시며 한없이 축복하시는 하나님,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오니 깨닫는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할 수 있도록 저의 삶을 온전히 간섭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다시 한번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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