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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축복을 소낙비처럼 부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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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차숙이 집사 (순복음교회 금천대교구)

바라봄의 법칙으로 인생역전 
기도제목 붙여가며 응답받아

내 인생의 변화는 철야예배에서 시작됐다. 어린 두 아이와 함께 늘 철야예배를 다니던 나는 어느날 삶의 희망을 갖게 됐다. 염전 3000평을 보고 와서 그 염전을 갖고 싶어 집안 곳곳 보이는 곳마다 써붙이고 기도했더니 주인이 되었다는 어떤 장로님의 간증을 들으며 새로운 비전과 소망을 갖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산꼭대기 판자촌에서 월세도 내지못해 집을 비워줘야 했던 절박한 상황이었다. 연탄과 쌀도 외상으로 가져오고, 월급의 반을 외상값 갚는데 쓰는 형편이었다. 염전 3000평도 주셨는데 우리 네 식구 사는 집을 안주실 분이 아니지 않는가? 당장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 문, 벽 등 눈에 보이는 곳마다 ‘집 주세요’라고 커다랗게 써붙이기 시작했다. 밤에는 철야예배, 낮에는 각종 예배에 참석하며 누울 때나 설거지 할 때나 화장실에서까지 집을 달라는 간절한 기도가 이어졌다.

“지하실 방에 가난하게 살면서 ‘예수님 믿으면 복 받는다’고 전도하면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집을 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기도하며 이번 기회에 축복을 받아 집에서 교구 연합예배도 드리겠다는 소원을 품었다. 그 때 교구 연합예배를 하려면 200명 정도의 성도들이 모였기 때문에 큰 집이 필요했다. 마치 기도가 응답된 듯 “큰 집을 주시면 우리집을 예배드리는 장소로 삼아야지”라고 생각하며 행복해했다. 큰 집에서 단합예배를 드리는 모습과 예수님 믿고 이렇게 축복을 받았다고 간증할 것을 상상하니 이미 받은 것처럼 눈물이 나고 감사와 사랑의 고백이 이어졌다.

얼마 후 남동생 둘이 함께 살게 돼 집을 옮겼다. 동생들이 돈을 보태 건평 40평이 되는 큰 집을 전세로 얻었는데, 3층짜리 새집을 시세의 2/3도 안되는 가격에 이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소원대로 교구 연합예배를 드렸고 그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예배 후 교구장님께서 “집 주세요”라는 기도보다는 더 구체적으로 “내가 주인이 되는 집 주세요”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 날로 우리집 곳곳에는 ‘내가 주인되는 집 주세요’라고 써져있는 종이가 붙었다.

6개월쯤 지났을 때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다. 내 형편과 사정은 절대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믿음을 가지고 집을 보러다녔다. 이미 하나님이 예비하신 집이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여기 저기 다니는데 한 집을 들어서는 순간 바로 이 집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대지 40평에 방 4개 지하방 2개가 있는 집이었는데 예전에 살았던 집에 다시 돌아온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었다. 적금 들었던 돈과 동생들의 돈을 합해서 드디어 내가 주인이 되는 집을 장만하게 됐다. 그 후 하나님의 축복은 오뉴월 소낙비 퍼붓듯 쏟아졌다. 초라하고 보잘것 없던 내가 물질의 축복을 받은 것은 물론, 남편 회사도 계속 번창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이 받은 축복을 지켜봤던 이웃들도 예수님을 영접해 교회생활에 열심을 가졌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어둡고 컴컴한 지하 단칸방에서 교구 단합예배를 드릴 수 있는 환하고 밝은 곳으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옮기셨다. 그 후에도 남편 사업에 대한 꿈, 자녀들에 대한 꿈을 품게 하시고 그 때마다 성령님이 인도해주셨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며 드린 철야예배와 새벽예배는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고 우리집은 기도하던 대로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간절히 기도하며 예수님만 바라봤을 때 주님은 철저히 내 편이 되어 주셨다. 너무 받은 축복이 많아 하나님께 무엇으로 감사를 드려야할까 생각하다 여선교회 봉사를 시작한지도 벌써 10년이 되어 간다. 우리 가족은 천국갈 때까지 주님의 사랑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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