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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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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이영리(풍성기업 대표)

“내가 네 병을 고쳐주리라. 이번에 나으면 다시는 평생 아프지 않을 것이다”  이 약속의 말씀을 듣자마자 내 마음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의 강물이 흘러 넘쳐 얼굴엔 기쁨이 넘쳐났고 예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내 삶 가운데 일어났다.

아마 고등학교 때였던 걸로 기억된다. 당시 가짜 참기름 사건이 세간에 큰 이슈가 됐었고,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사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내 안엔 ‘정직한 사업을 하고 싶다’라는 소망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 꿈은 잠시 접어둬야 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교사로서 생활하면서 사업가로서의 내 꿈은 점차 퇴색되어 갔다. 그리고 그 꿈의 자리엔 다른 것이 자리잡고 말았다.

바로 심각한 정신적인 고통이었다. 남들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내 안엔 심각한 정신적인 눌림으로 인해 그 어떤 것을 보아도 행복하지 않았고 심지어 음식이 맛있는지 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30대 초반에 나는 다 늙어버렸고 아무런 꿈도 소망도 품지 못하게 되었다. 아무리 좋다는 약을 먹어도 내 상태는 전혀 나아질 기미가 안보였다. 그때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사단이 내 마음을 휘어잡고 나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던 어느 날 33세의 나이에 뒤늦게 아들을 보게 되었고 이 아들로 인해 내 삶엔 조금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딸 둘만 키우다가 원하던 아들을 얻고 나니 세상적으로도 남부러울 것이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좀더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게 되면 내 정신적인 고통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학교에서 육성회장직을 맡았고 또 도움이 될 까해서 조그만 개척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이해없이 참석한 예배는 예배시간 내내 졸립기만 하였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귀찮아 항상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는 자리에서 숨어다니듯 신앙생활을 하였다.

빚진 자

그러기를 한 5,6개월 정도 됐을까? 평소 친분이 있던 학부형 한 분이 나를 찾아와 “나와 함께 여의 도순복음교회 철야예배에 함께 가자”라며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우리 가정을 위해 그리고 남편 사업이 잘되도록 기도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남편 사업이 잘되도록 기도해주겠다는 소리에 무작정 그 사람을 따라나섰다. 그런데 이 걸음이 내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될 줄이야!

신기한 것은 철야예배면 꽤 늦은 시간인데도 전혀 졸립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들 두손을 들고 “주여, 주여”하며 부르짖고 손뼉을 치며 크게 기도하고 구경도 그런 구경거리가 없었다. 그렇게 구경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이윽고 새벽 3시경쯤 되었을까 간증시간이라며 어떤 사람이 올라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내용인즉 자신은 병원에서 마지막 사형선고를 받았던 간암환자에다 물질적으로도 고통받는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아내와 함께 들것에 실려 오산리 국제금식 기도원에 올라가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금식하며 기도하던 중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X-레이 촬영 결과 간암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통보까지 들었고 이후에는 물질적인 축복까지 따라왔다며 너무 기쁘게 간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간증을 들을 때 내 안에서는 나를 짓누르고 힘들게 했던 고통이 사라지고 상쾌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일이 있은지 정확히 일주일 후 나는 새벽기도를 드리며 난생처음 신비한 경험을 했다.

“내가 네 병을 고쳐주리라. 이번에 나으면 다시는 평생 아프지 않을 것이다”는 위로부터 들리는 분명한 음성을 들었던 것이다. 이 약속의 말씀을 듣자마자 내 마음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의 강물이 흘러 넘쳐 얼굴엔 기쁨이 넘쳐났고 밥맛도 꿀맛으로 느껴지는 등 예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에 내 삶가운데 일어났다. 나를 알던 사람들은 “어떻게 며칠 사이에 얼굴이 그렇게 좋아질 수 있느냐”, “비결이 무엇이냐”, “어느 병원 의사가 고쳐주었느냐”라며 묻기 시작했다. 그 질문들에 나는 나도 모르게 “하나님이 고쳐 주셨다”는 고백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곧 나의 간증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변화하니까 남편과 자녀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고 온 가족이 함께 그 때부터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이렇게 질병이 해결받게 되자 하나님은 내 안에 퇴색되었던 그 옛날 고등학교 시절의 꿈을 깨우쳐 주셨다. 그것은 정직한 사업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즈음 우리는 남편의 직장관계로 부산에 내려가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나는 이 꿈을 놓고 집중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님은 기도 중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리시라”(빌 4:19)라는 말씀을 주셨다.

나는 이 말씀을 받자마자 사업체의 이름을 ‘풍성’이라고 결정하였다. 그리고 88년 2월 육성회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주택건설회사를 인수해 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건축에 ‘건’자도 모르던 내가 그 일에 뛰어들게 된 것은 그 회사가 부도직전으로 부도가 나면 100세대의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처지를 외면하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업이라고는 처음 손을 댄 일, 그래도 사람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서 인지 주위에서 돕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은행에서 융자를 얻는 일도 가능한 선까지 일이 진척되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진척된 일은 집안 식구가 손을 대면서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무도 할 사람이 없어서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기도만 했다. 그 사람이 그 일을 통해서라도 믿음의 진보가 있게 되기를 바랐다. 결국 일은 다시 원점인 상태로 되돌아갔고 나와 우리 가정은 그 일로 추석에 쌀 한 톨없이 지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래도 마음 가운데 원망이나 불평은 나오지 않았고 그저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갔고 하나님께서 후에 수십 배로 갚아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사업적으론 실패했지만 영적으론 많은 것이 단련되는 시간이었다. 예전에 나였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업체를 위해 꾸준히 기도했더니 정확히 10년 후 드디어 기회가 왔다.

경북 대구근교에 동생이 땅을 갖고 있었는데 그 땅을 동생이 맡아 달라며 아주 헐값에 내놓았고 그 땅을 인수하게 되었다. 나는 그곳에 이전에 하나님이 주셨던 이름인 ‘풍성기업’이라는 당당한 이름을 걸고 납골당, 공원묘지, 실버타운을 건축할 계획을 세워 가설계에 착수하였다. 사업규모를 헤아려보니 20여만평 규모의 1천억 공사였다. 지난 88년 뛰어들었다가 본의 아니게 손을 떼었던 주택사업이 2천평 규모의 13억 사업이었는데 그때에 비하면 실로 수십배가 늘어난 것이었다.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셨고 마음 가운데 두셨던 믿음대로 때가 되매 이루어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고통 가운데 헤매이던 나를 고쳐주셨을 뿐만 아니라 학창시절 가졌던 소원을 기억하시고 기도를 들으셔서 내게 더 큰 축복과 풍성함으로 채워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한 우리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는 통로로서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안다.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사업을 일구어 나가며 내 안에 소원이 있다면 더 많은 것을 이웃과 나누는 그래서 그 이웃들이 하나님의 풍요와 축복을 경험하도록 돕는 삶을 살고 싶다.

아직은 시작이다. 그래서 갈 길이 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 은혜를 나누는 자로서의 사명이 있기에 내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나는 오늘도 빚진 자로서 주님이 주신 것을 나누는 삶을 살고자 오늘도 쉼없이 기도하며 감사로 삶의 제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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