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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출세길서 헤매다 법조복음화 U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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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심동섭 변호사

중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갔음직한 여자 아이가 내게 다가와 예수 믿으라며 전도지를 건넸다. 나는 무심결에 “예수쟁이구먼” 빈정대는 말투를 내뱉었다. 그러자 그 아이는 매우 단호하고 앙칼진 목소리로 반격했다.

“예수쟁이라니요. 예수 믿는 것이 어때서요. 뭣도 모르면서!”

그 아이의 화가 난 목소리가 나의 뇌리에 울려 퍼졌다. 어떻게 조그마한 아이가 확신에 차서 대들 수 있을까.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나 역시 중학생이란 어린 나이였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나는 옷매무새를 고치고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사실 내가 기독교를 접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회당 종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마음이 평온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를 따라 주일학교에 따라간 일이 몇 번 있었다. 그 당시 주일학교에서는 3번을 출석해야 정식으로 등록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매번 두 번째 출석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어김없이 아버지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 포기해야 했다.

아버지의 논리는 단순했다. 예수믿는 사람은 게으르고,주일이라고 일도 하지 않으며,공부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해도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그렇게 게을러서 어떻게 살아가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어린 여자 아이의 전도를 받은 후부터는 기독교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다니던 미션중학교 성경공부시간을 통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믿게 되었다.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 믿는 재미에 빠진 나는 고교시절 공부를 소홀히 했고 성적이 떨어지게 되었다. 다행히 고려대 법대에 합격했지만 아버지는 내가 더 좋은 학교에 가지 못한 것을 못내 서운해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하나님께 매우 죄송스러웠다. “아버지,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예수 믿겠습니까?” 아버님은 눈을 번쩍 뜨셨다. “그럼,사법시험에만 합격해준다면 교회에 못나갈 이유가 없지.” 그날 이후 나는 이를 악물고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틈틈이 기도하고 말씀을 보면서 공부에 매달렸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부모님도 약속대로 교회에 출석했다. 온 가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되니 앞으로 나의 모든 인생이 순조로울 것만 같았다. 1988년 28세의 나이에 검사로 임관되던 해는 온 세상이 내 것으로 보였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검사로서도 최고의 경지에 이르고 싶은 욕망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적인 방법보다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으로 보였다. 술자리와 골프 등의 사교모임이 잦다보니 교회생활이 멀어졌다. 교회는 출석했지만 신앙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앙상한 뼈만 남은 모습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나의 믿음만 보고 결혼했다는 아내는 세상으로 젖어가는 나를 보며 눈물로 호소했지만 나는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그 눈물을 외면했다. 내가 세상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아내의 한숨과 기도의 시간은 길어졌다. 그런 생활을 하기를 10년. 나의 영적인 삶은 고갈됐고 열망하던 검사로서의 출세길도 쉽지 않았다. 하나님께 돌아오고 싶었으나 용기도 힘도 없었다.

1995년 춘천지검에서 근무할 때 검사장으로 부임하신 전용태 장로님은 내 신앙 생활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셨다. 그분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면서 나의 영성이 회복됐고 기도를 통해 나에 대한 하나님의 소명을 깨닫게 되었다. 검사로서 검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내 소명임을 알았다. 그 다음 해인 96년 사랑의교회에 출석하면서 제자훈련에 푹 빠졌다. 대구에서 근무할 때는 지역교회 목사님들의 부탁으로 평신도 제자훈련을 인도하기도 했다.

검찰을 복음화하겠다는 열망은 언제나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혼자서는 그 일을 이룰 수 없기에 사랑의교회에 출석하는 법조인 형제들과 함께 법조선교회를 조직했다. 법조선교회는 현재 회원 수만 100명이 넘는 조직으로 성장했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선교의 비전도 갖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법을 통해서도 국내뿐 아니라 해외선교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너무도 기쁜 일이었다.

사역을 더 잘하기 위해 예수믿는 법률가를 중심으로 애드보켓코리아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개발도상국가에 법의 지배가 확립되도록 도와주면서 종교의 자유가 확대되도록 해 궁극적으로 선교의 문을 열도록 힘을 쏟고 있다. 또 선교사님들이 선교지에서 안정된 법적지위를 확보하도록 도와주고 교회나 선교 관련 시설의 설립과 운영에 법률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의 기독법조인을 개발도상국에 파견해 섬기도록 하고 개발도상국의 젊은 법조인을 한국으로 초청해 기독교세계관을 가진 법률가를 양성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2006년 3월 검사생활을 마감하고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나는 나머지 인생을 애드보켓코리아 사역에 전념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오늘도 ‘법을 통한 선교’를 목표로 달리고 있다.

◇ 심동섭 변호사는 누구

1959년 8월4일 부산에서 출생했다. 82년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같은 해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88년 2월 서울남부지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97년 경북 영덕지청장을 거쳐 올해 3월 서울고검 검사를 끝으로 18년간의 검사생활을 마감한 뒤 현재 법무법인 소명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검사재직 시절 검찰신우회 모임에서 ‘폭탄주 금지’라는 기도제목을 꺼내기도 했다.현재 사랑의교회 안수 집사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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