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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을 받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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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이건오(한동대 선린병원장·서울 시민교회 장로·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장) 

파스칼은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구성 요체인 육체와 영혼이 참된 행복을 느끼고 누릴 수 있는 것은 이 마음의 공간을 하나님께서 메워주실 때다. 예수님은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셨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내가 하나님 안에 있기 전에는 내게 평안이 없었다”고 말했다. 행복은 하나님으로 충만한 사람의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나는 용서와 평안,삶의 목적과 삶을 살아갈 능력과 참 자유를 얻었다.

나는 6·25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았다. 내가 자란 시골에서는 누구도 우리의 삶의 목적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성실·근면을 강조하고 책에선 군인이 돼 애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통해 예수님을 만났다. 나는 내 모든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씻겨지는 경험을 하고 용서를 알았다.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로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 무척 감사하고 기뻤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어주신 그분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삶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섬기는 것이 무엇이고 전도와 선교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고교 1학년 가을에 친구들에게 떼밀려 동네에 새로 생긴 교회에 출석했다. 교인이래야 20명 정도였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전도사님의 가르침은 매우 강하고 뜨거웠다. 교회에는 용서와 영접,친절이 있었다. 우리는 교회 안에 학생회를 만들었고 성경과 기도를 배웠다. 어느 늦은 여름 날 밤,우리는 처음으로 전도사님을 따라 철야기도를 드렸다. 그날 밤 나의 죄들이 파노라마처럼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수업료를 못 내 학교에서 쫓겨났을 때 시장바닥을 돌며 물건을 훔쳐 동네 친구들에게 팔아 영화관에 드나들었던 일도 떠올랐다. 그 일로 나와 친구 2명이 퇴학을 당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일들을 죄로 생각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 용서를 빌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몸에서 핏방울이 떨어져 나를 적셔왔다. 죄가 용서되었고 정결케 되었다. 다음 날 나는 시장으로 갔다. 상점 주인을 만나 잘못을 빌 참이었다. 그러나 그 상점은 이미 다른 데로 이사해버리고 그곳에 없었다. 나는 상점 주인에게 진 빚을 하나님께 갚기로 했다. 그것은 더욱 열심히 믿고 전도하는 것이었다.

고3이 되었을 때 나는 신학교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 아버지께 말씀드렸다가 족보에서 파버리겠다는 준엄한 질책을 받았다. 그래서 전도사님께 의논했다. 전도사님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그때에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신학교에 가도 된다고 조언하셨다. 당시 나는 고3이었지만 작은 시골 교회의 교회학교 부장과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모든 교회학교 예배 인도는 내가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수요일 저녁 교회학교 설교를 맡았다. 교회학교 설교집 중에서 설교 하나를 골라들었다. 한 의사가 무의촌에서 주민들을 섬기며 전도하는 간증이었다. 그 순간 ‘누가 이 의사와 같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의 심장을 강타했다. 나는 설교하면서 ‘주님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은 시골 소년에게 꿈도 꾸어보지 않았던 의대를 가게 하셨다. 대학에서 나는 김준곤 목사님을 통해 신령한 꿈을 품으며 신앙의 잔뼈가 굵어졌다. 민족을 가슴에 품게 되었고 세계 열방을 향해 눈이 뜨이면서 선교의 거룩한 부담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의대생들과 함께 기도와 말씀공부를 시작했다. 이것이 모태가 되어 지금은 1500명의 의료인이 모이는 아가페 의료봉사단으로 발전했다. 결핵환자와 한센병 환자 진료,농어촌 의료 전도,세계 열방을 향한 의료 선교를 위해 내 물질과 휴가를 다 내놓아도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것은 주님께서 내게 주시는 은혜다.

의사로 성장하는 내게 하나님께서는 장기려 박사님을 만나게 해주셨다. 그분은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셨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또 주어서 자기 집 한 칸도 없으셨다. 그래도 죽음을 앞두고 “간디는 물레 하나만 남겼는데 나는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배웠고 전인치유라는 소중한 개념을 배웠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스승님들을 통해 나의 내면은 영글어갔다.

지금 나는 지구촌의 모든 족속을 향한 거룩한 부담을 갖고 의료 선교 사역을 돕고 있으며 한동대 선린병원을 선교 기지 병원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꿈도,소망도 없던 시골 소년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으신 그 은혜 때문에 예수님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은 열망으로 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님의 사랑에 이끌리는 삶을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을 받는 사람은 이 땅에서 하늘 나라의 삶을 산다. 나는 오늘도 예수님의 사랑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인일 수밖에 없다.

◇ 이건오 원장은 1962년 부산대 의과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뒤 가톨릭대 의과대학 대학원 의학과 박사과정을 수료(외과학)했다. 부산 침례병원 고신의료원 및 해군 군의관,서안복음병원 외과장 및 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동대 선린병원장으로 일하며 서울 시민교회 장로 및 한국 기독교 의료선교협회 회장,성산 장기려 선생 기념사업회 상임이사,북한 의료선교위원회 위원장,고신대 의과대학 교수(외래),성산생명윤리연구소 이사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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