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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인생은 속도가 아니고 올바른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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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진 청년 (남, 30세, 벧엘교회, 서울 서초구 양재2동)

  나의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어머니는 성경책을 들고 흰옷을 입고 말을 탄 사람이 옆에 타라고 하는 꿈을 일주일간을 꾸신 후 교회에 나가셨다고 한다. 불교를 강하게 신봉했던 시부모님 몰래 5년 동안을 혼자 교회에 다니시다가 결국 발각이 되어 계속 핍박을 받으면서도 다니셨다고 한다. 어린 우리들은 등산을 갈 때면 아버지 손에 이끌려 절에 가곤했다. 그러다가 내가 고교 2학년 때 캐나다에 이민을 가게 되었고, 나는 무신론자로서 인생의 청사진 설계로 꿈에 부풀어 살았다. 부모님은 서울에 계실 때가 많아서 캐나다에서는 부모님 없이 동생들과 생활할 때가 많았는데, 마치 자취생활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내용도 다르지 않고 똑같은 성경책을 왜 읽는지, 성경책에 대하여 몹시 궁금해졌다. 그래서 도서실에 가서 매일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며칠이 지난 후부터 집안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환청으로 들렸다. 그리고 태어난 후로 단 한 번도 가위에 눌린 적이 없었는데, 매주 토요일이면 정기적으로 천정에 동생들의 얼굴이 떠다니는 환상을 보게 되어 매우 두려웠고, 잠을 잘 때면 무서움에 떨었다.

  혹시 이러다가 내가 무속인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두렵고 답답했지만,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성경 읽기를 그만 두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뒤로는 환상도 환청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뭔가 패배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조금씩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더니 이번에는 불규칙적으로 가끔씩 나타나서 괴롭혔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예사로 넘겨 버렸다.

  그 후 세월이 흘러서 2001년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 4개월의 시간적 여유가 주어져서 한국에 나오게 되었다. 오래 한국을 떠나 있어서 아는 친구들이 없었는데, 우연히 중학교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교회에 다니는 그 친구를 따라 또래들이 있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한주 두주 나가면서 찬양하는 사람들이 천사같이 좋아보였다. 교회란 곳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마침 찬양하던 남자청년을 마주치게 되었다. 기회다 싶어서 그에게 질문을 했는데, 나를 무시하고 매몰차게 뿌리치고 가버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찬양할 때 천사같이 좋아보이던 모든 것이 순간 가식처럼 생각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았고, 일반 졸업반 대학생 캠프에 따라갔다. 참석한 많은 대학생들은 술을 마시면서 온통 불투명한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에게 캐나다에 가면 좋을 것이라고 부러워했지만, 나 또한 서양 사람들과 경쟁해서 이겨야하는 부담감이 컸었는데 나까지 더욱 불안해 졌다.

  나는 속으로 ‘하나님! 캐나다에 가면 교회에 다시 갈수 있을까요. 캐나다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님과 한국교회에서 믿는 하나님은 다른 것 같은데 제 생각이 맞습니까?’라고 독백처럼 읊조리며 소주잔을 들었는데, 그때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사람 바라보지 말고 나만 보고 와라.” 순간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지만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여전히 똑같은 분위기 그대로였다. 나는 그때서야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깨닫고 확신했고, 다시 그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이 여전히 천사같은 모습으로 찬양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저는 이제 하나님만 바라보고 갑니다.’라고 고백을 했다.

  그리고 은혜를 받으면서 ‘인생은 속도가 아니고 방향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더 좋은 방향을 선택하기로 결단을 했다. 그 후 제자훈련에 감동을 받고 훈련에 참가하기로 작정을 했다. 오랫동안 공부하며 준비해 왔던 캐나다 대학원을 포기하고 한국에 남아서 제자훈련을 신청한 것이다.

제자훈련에 내 인생 전부를 걸었지만, 나의 신앙적 배경과 경력이 전무하기 때문에 결국 심사에서 떨어졌다. 날 인도한 친구는 장로님 아들인데다가 신앙 경력이 꽤 있었기 때문에 제자 훈련에 합격을 했다. 그 친구는 기쁘다고 마지막으로 술 담배를 먹으며 축배를 들었다. 하지만 이제 믿게 된 나는 그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술 담배를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나님! 내 인생을 다 걸었는데, 어떻게 교회에서는 사랑을 외치면서 나를 떨어뜨릴 수가 있나요?’라고 울면서 원망을 하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는데, 나중에는 지쳐서 원망도 나오지 않았다. 친구는 미안했던지 단기 선교 훈련을 받아보라고 했다. 나는 그거라도 해야겠기에 친구의 말에 따라 훈련에 참가했다.

  훈련 첫 시간에 성령님의 관한 말씀으로 이끌어 주셨는데, 말씀을 듣고 감동이 되어 눈물이 흘렀다. 집에 돌아와서도 성령님이 죄로 꽉 찬 나 때문에 내 속에서 얼마나 답답해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어 계속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결단을 했다. 나중에야 그것이 제자훈련에서 떨어뜨리고 나를 위해 예비해 놓으셨던 은혜였으며, 나와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의 훈련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일 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신앙 훈련을 시키셨다.

  취업을 하기위해 면접을 보는 과정에서 면접관이 나에게 왜 캐나다를 포기 했냐고 묻기에 나는 예수님을 위해서 포기 했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면접관은 나에게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을 환자 취급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갔다. 순간 나는 화가 났다. 그 면접관의 말은 바로 내 뒤에 계시는 예수님을 환자 취급한다는 의미가 되니까 화가 났다. 나는 오기가 나서 “하나님 저들이 환자입니다. 나를 꼭 그 회사에 들어가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얼마 후 나를 환자 취급하며 돌아갔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 회사에 취업이 된 것이다. 나는 열심히 일하며, 어떻게 전도를 할까 고민하다가 성구가 들어있는 카드를 사서 만나는 사람마다 선물이라고 주었다. 입사한지 반년이 지난 어느 날, 여전히 직장 선교에 열심을 내고 있는 나를 보고 한 회사 선배는 예전에 자신도 예수전도단에도 있어보았다며 ‘회사는 회사고 교회는 교회이다.’라고 말하며 선교에 대해 핀잔과 충고를 주었다.

  하루는 업무가 꼬이는 일이 있었는데, 회사 사람들로부터 내가 전도에 열중하느라 일이 꼬인 걸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 일로 인해 상사들에게 내가 선물해 주었던 성구 액자들은 하나 둘씩 그들의 책상에서 내려지고 사라졌다. 나는 마음이 아프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교회에 갔지만 눈물만 났다. 그래서 선교하는 일을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교회에서 늦게까지 기도를 하고 다음 날 회사에 나갔는데, 직원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하더니 성경공부를 다시 하자고 했다. 또 다시 한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고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 후로도 만만치 않은 대적의 훼방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모두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셨고, 지금은 직급이 높은 분들도 주님을 영접하고 성경공부를 하기위해 모이고 있다. 나의 소박한 꿈과 기도 제목은 교만하지 않고 더욱더 깨어서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며 직장 내 복음의 사각지대에 놓인 곳에서 끝까지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최근에 회사에서 나에게 해외 근무를 추천하고 싶어도 내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술과 여자와 로비로 관련된 일들을 할 수가 없어서 추천을 못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앞으로의 인생 여정 가운데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복음 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세상적인 가치로 세상을 선택하지 않도록 간절히 소원한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정리 ·강남금식기도원 간증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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