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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평생 기도하라” 나를 깨운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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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이효계 장로(숭실대총장)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인침을 받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 중에 내 몫의 태인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믿음의 순례의 길’을 걸어온 지 70년,부족한 종의 지나온 믿음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한다.

나는 모태에서부터 크리스천이었다. 우리 하나님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를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셨고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지명하여 불러주셨다. 지금 생존해 계신 93세 의 부친(이복량 원로장로)과 91세의 모친(박정희 은퇴권사) 사이에서 2남3녀 중 장자로 태어났다. 이사야 43장 1∼2절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는 말씀의 부름에 순종하는 자로 성장해왔다. 공무원이신 아버지께 유년시절부터 받았던 ‘신앙 제일주의 교육’은 내 신앙관,공직관,기도생활에 큰 본이 됐다.

하나님께서 내게 역사하고 계심을 안 것은 아버지를 따라 여수교회(전남)에 다니던 중2 때 일이다. 아무도 없는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어디에선가 음성이 들려왔다.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다시 기도를 계속했다. 계속해서 “평생 기도하라”는 음성이 두 번이나 더 들려왔다. 누구의 음성일까? 나는 그 당시 신앙이 무엇인지,기도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중학생이었다. 왜? 엄청난 일이 내게 일어났는지 몰랐다. 다만 교회학교에서 배운 ‘엘리 제사장과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네 번이나 부르셨던 성경 이야기가 머리에 맴돌았다.

이때부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심하고 ‘새벽기도회’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55년 동안 아무리 바쁜 공직생활 중에라도 새벽기도회만은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매일 새벽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씀으로 명상한다. 이 시편 23편 말씀은 나의 신앙생활을 풍성하게 해준 기도서가 되었다.

고3 때(1953년) 나는 기도 중에 ‘목회자의 길’을 가야겠다고 서원했다. 그 당시 출석하던 동명교회 엄두섭 목사께서 숭실대를 추천해 주셨다. 숭실대는 1897년 평양에서 배위량(Baird)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 대학이며 민족대학이었다. 그러나 일제 치하에서 신사참배를 강요 당하자 1938년 스스로 학교문을 닫았다가 광복 후 서울에서 재건하였다.

나는 재건 1회로 입학하게 되었다. 초대 학장님은 ‘한경직 목사님’이셨다. 한 목사님을 만나게 된 것은 나의 일생일대의 큰 영광이었다. 입학 후 학교 문제로 갈등할 때 목사님은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말씀해주셨다. “아무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뜻에 맡겨라. 한 우물만 파라. 우리 학교에 들어온 것은 하나님의 섭리야. 먼 훗날 알게 될 것”이라고 내 마음을 정리해주셨다. 열심히 공부하던 중 2학년이 되면서 이변이 일어났다.

전남에서 군수로 재직하고 계시던 부친께서 “고등고시를 준비하라”고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내리셨다. 나는 6개월 동안 아버지와 소식을 끊었으나 기도 중에 답을 얻었다. 마침내 나는 한 목사님께 용서를 구하고 진로를 바꿔 부친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했다.

4년간의 준비 끝에 1961년 고등고시 행정과(제13회)에 합격해 공직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하나님은 나를 전주시장 내무부차관보 광주시장 전남지사 국무총리비서실장 내무부차관 한국토지공사사장 농림부장관으로 세워주셨다. 그리고 지난해 3월에는 제11대 숭실대 총장으로 선임되었다. 나는 숭실대 총장이 된 후에야 51년 전 ‘한경직 목사님’의 선지자적인 말씀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항상 기도의 연속이었던 공직생활 중 기도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들이 많다. 그 중 한국 현대사에 가장 비극적인 사건 한 가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바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었다. 나는 1990년 광주시장으로 발령 받았다.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5·18 문제는 내가 해결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어느 날 새벽기도회에서 “직보하라,직보하라”는 계시의 음성을 듣고 계통적인 절차도 생략한 채 보상기준과 방법,보상금 재원을 포함한 정책 결정을 촉구하는 내용의 친서를 대통령께 전달했다. 대통령은 “현지 사정은 현지 시장이 가장 잘 안다. 시장 복안대로 보상금을 결정하고 지급하라”로 바로 지시를 내렸다. 이로써 시장으로 부임한 지 1년반만에 5·18 보상 문제가 완전히 마무리 되었다.

우리 하나님은 진실로 회개하고 기도하는 자의 외침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우리 하나님은 나의 모든 기도를 들어주셨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나라의 지경을 확장하기 위해서 나를 하나님의 도구로 삼으시고 실천하도록 하셨다.

나는 오늘도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바울’의 열정과 ‘모세’의 지도력,‘다윗’의 순결함과 ‘요셉’처럼 꿈을 지닌 참된 크리스천이 되게 해달라고….

◇이효계 총장 약력

이효계 총장은 1935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숭실대 법과대학 법학과,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뒤 1961년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해 공직의 길에 들어섰다. 전주시장 내무부차관보 광주시장 전남지사 국무총리비서실장 내무부차관 한국토지공사사장 농림부장관 등을 지냈다. 직무에 정려하고 기여한 바가 커 홍조?황조·청조 근정훈장을 받았다. 현재 소망교회에서 장로로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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