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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가장 소중한 예수 보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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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윤석규 장로

"예수 보따리" 이 말의 유래는 이렇다.
1969년 가을 어느 주일 담임 전도사님께서 설교중에 말씀하시기를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사를 하면서 다른 짐은 다 싸고 심지어 먼지까지도 쓸어 넣 으면서 "예수 보따리"(?)는 버리고 가느냐고 하시었다. 내용인 즉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 다시 전도를 받아야 교회에 출석을 하게 된다는 말씀이셨다.

이 말씀은 나에게 상당히 강하게 와 닿았다. 왜냐하면 나는 당시 군인이었음으로 군인은 부대를 통상 2년여에 한번씩 옮겨야 하는 특성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사가 아주 잦을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20여년 군 생활 중에 주요 도시만도 서울에서, 원주, 광주, 영광, 다시 광주, 대전, 삼척, 경기도 현리, 다시 서울로 옮겼음) 이사 할 때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히 내성적이었던 나는 현지 적응이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예수 보따리"에 대하여 알고 부터 이사는 다른 곳으로 떠나는 개념에서 새로운 형제 자매를 만나는 기회가 된다는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새로운 부대에 가서 먼저 부대장에게 전입신고를 하고 밖에 나와 가까운 교회를 찾아"예수 보따리"를 풀어놓으면 그 다음은 우리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었다.
새로운 임지에서 가장 힘든 문제가 거처할 방을 얻는 것인데 나에게는 전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교회의 모든 성도는 한 형제요 자매요 부모가 아닌가.
새로운 형제가 하나 생겼으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그래서 앞다투어 방을 얻어주고 며칠 후 아내가 짐을 화물로 붙여오면 리어카가 동원되고 온 교인이 밀고 끌어 집까지 짐이 옮겨진다.

또 2-3주 후면 나와 아내는 성가대 석에 앉아 있고, 교회의 여러 가지 일로 봉사하며 기관에서 같이 활동하니 불과 2-3년 체류하였을 뿐인데 떠날 때는 흡사 본향사람이 타향으로 떠나는 것처럼 교회에서 울먹이며 송별예배를 드리고 기차역까지 나와 석별의 정을 나누곤 하였다.

부대 안에서도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들어 내놓고 말하니 그 많은 군인들의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었고 (그 유명한 폭탄주도 군인이 만들어낸 술 문화였음) 심지어 어떤 동료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술을 권하면 "이 사람에게 술을 권하면 당신도 지옥에 가니 권하지 말라"고 보호하여 주기까지 하니 이 얼마나 자유스러움인가. 또 나는 교회의 각종 예배는 거의 빠지지 않았는데 (구역예배까지도 빠지지 않았지만 지금도 새벽 기도회는 잘 참석치 못하고 있음) 이처럼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의 도움이 많았다. 예를 들어 주일에 당직차례가 되면 바꿔 주기도 하였고 잠깐 자리를 지켜 주기도 하였으며, 행정실에서는 가능한 주일에 당직을 서지 않도록 배려하여 주기도 하였다. 물론 이것은 나와 동료와의 인간관계 형성의 문제였고 주일이 아닌 다른 공휴일에 자청하여 당직을 하여준 결과이기도 하였지만 어쨌거나 당직근무는 주일을 지키는데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이처럼 우리에게 평안과 자유함과 즐거움을 주는 "예수 보따리"인데 왜 사람들은 예수 믿는 것을 감추려하고 이사와서는 "예수 보따리"는 다락 깊숙이 처박아 놓고(?) 끌러 놓지 않고 있다가 전도자들의 수고를 통하여 이것을 끌러 놓고 있는지!
지금도 나에게는 "예수 보따리"가 가장 소중한 것이요 평안을 주고 자유함을 주며 언제나 소망을 주는 것으로 이 "예수 보따리"만은 결코 잃지 않을 것이며 후대에도 이것만은 유산으로 물려 줄 결심이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후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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