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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극심한 시련의 풀무 불은 영생의 지름길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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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김병진 성도 (남.48세 새삶교회, 평택시 비전동)

  나의 아버지는 유교 훈장님이셨고 어머니는 절실한 불교 신자이시다. 어머니는 늘 나를 위해 절에서 불공을 드리셨다. 나는 집안의 영향을 받아서 어릴 때부터 진실한 마음으로 불교를 믿어왔다.

  지난 10여 년 전부터는 자동차 부품사업을 시작하여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이 강박우울증으로 자살을 함으로서 그의 생을 끝마쳤고 아들을 잃은 충격은 나의 가슴에 한주먹의 대못을 박는 것보다 더 큰 아픔과 고통이었다.

  그 후로 날마다 슬픈 노래와 술로서 삶을 지탱했다. 더구나 아들을 잃은 충격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믿고 보증을 서준 후배에게 배신을 당하면서 재정에 타격을 입었고 아내와 어머니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로 인해 고부갈등이 심화되어 그것이 결국은 부부 갈등으로 이어져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닥쳐왔고 나의 고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여러 가지 고통이 나를 짓눌렀지만 가장 큰 고통은 아들을 잃은 고통이었다.

  그때 만해도 나는 불교 신자였기에 아들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49제를 드리면서 금전적으로 정성스럽게 부족함 없이 최선을 다했다. 주지께서는 나에게 죽은 아들이 육촌 친척 중에 아들로 다시 태어 날 것이라고 윤회설로 나를 위로했다. 그러나 아들의 2주기 때가 가까워 올 즈음 아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꿈에 나타난 것을 보면서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당을 찾아갔다. 무당은 아들이 배고파한다고 바닷가에 가서 굿을 하자고 했고, 나는 그대로 따라서 굿을 진행하였지만, 윤회설에 회의가 오면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후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이 되었고, 나의 영혼은 갈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20대 때 군대에서 알고 지낸 친구가 목사님이 되었는데 1, 2년이 지나면 주기적으로 나에게 전도를 하러 찾아온 것이 머릿속에 스쳤다. 내 아들에게도 기도를 해 준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때 그것이 복인 줄도 모르고 예전처럼 술도 안 먹고 놀지도 않는 그 친구가 재미없다고 생각하며 시큰둥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굿을 하면서 재미없었던 예수 믿는 그 친구가 갑자기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 뒤로 2주기 제사 날짜가 가까워 올수록 그 친구가 자주 생각이 났다. 나의 관심 밖이던 친구라서 주소도 모르고 있었기에 그 친구가 12년 전에 안수를 받았던 대전의 그 교회를 기억하고 찾아 나섰지만 어디에서 목회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안수받은 그 교회에서 사무 보는 자매와 얘기를 나누고 실망하여 나오려는데 유일하게 그 친구 목사를 알고 계셨던 어떤 할머니께서 우리의 대화를 들으셨다. 유병일 목사님의 교회를 알고 계신다고 안내를 해주셔서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찾게 되었다. 나는 친구 목사님을 만나서 그간의 일을 이야기 하고 나의 가장 절실한 문제였던 ‘인간이 죽으면 어찌되는가, 천국(불교에서 얘기하는 극락)과 지옥이 있는가, 사후 세계의 결론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 물었는데 그 친구는 ‘아직은 해답을 알려 주기에 이르다. 3일 동안 교회에 머물면 하나씩 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친구 목사님께 난생 처음으로 예수님에 대해 자세히 소개를 받고 차근차근하게 복음을 들었다. 그리고 “추천 책을 충분히 읽고 기도원으로 가서 1개월 정도 있어봐라 믿음이 어느 정도 들어가서 좀 성숙되어야 들려 줄 수 있다”며 나를 타일렀다. 사모님도 나에게 기도원을 소개하면서 기도원 앞에는 시냇물도 흐르고 경치가 좋다며 설득하셨다. 그리고 결국 그 친구 목사님은 나를 차에 태워서 강남금식기도원으로 데려다 놓았다.

  목사님은 내려가고 나 혼자만 기도원에 남았다. 기도원 생활을 한 처음 5일간은 나에게 큰 곤욕이었다. 통성기도 하는 사람들이 이상하고 예배를 드린다는 사람들의 복장이 너무 자유스러워 불손하게 보이고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게 하고는 은혜를 받는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됐다. 절에서 불공을 드릴 때 보아왔던 단정한 복장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보여 이런 곳에서 어떻게 은혜를 받나하는 생각이 들고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나의 목적인 해답을 얻고 빨리 집으로 가려고하니 마음이 조급하고 갈급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 아닌지’ 결판이 나야만했다. 그래서 상담도 안 하고 친구 목사님도 모르게 빨리 결판을 보기 위해 겁 없이 금식 15일을 작정하고 5일을 금식하는 중에 친구 목사님이 알고 “아직 금식할 단계가 아니다. 무조건 금식의 날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금식을 중단 시키셨다. 그렇게 금식을 포기하고 이것으로 결론이 안 나니까 성경을 완독하면 결론이 날 것 같았다.

  그때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잠을 두세 시간 자면서 다섯 번의 예배를 모두 참석하며 쉬는 시간에는 책을 읽었다. 성경책은 장서로서는 다른 책과 달라 이해도 안 가고 읽어도 진도가 더디었다. 그러나 한 글자씩 꼼꼼히 모두 읽어나갔다. 구약을 읽고 신약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충격에 사로 잡혔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내용을 읽으면서 내 가슴은 터질 것같이 아파왔다. 세상 사람들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고 참을 수 없는 너무 억울한 일을 한마디 변명도 없이 참으신 주님이 너무 어리석어 보였고,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가슴이 메어지고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사랑하여 그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는데 자기 백성에 의해 오히려 죄를 뒤집어쓰시고 십자가에서 무참히 죽임을 당하신 사건 속에서 너무 바보 같으신 예수님 때문에 나는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맨 뒤에서 예배드리던 난 강대상 바로 앞으로 나아가 울면서 예배를 드리는데 통성기도 시간에 혀가 꼬부라지면서 방언을 받았다. 그리고 마음속에는 ‘아! 주님은 살아계신다! 부활하셨다!’는 확신이 들었다. 예전엔 목사님들의 설교 때마다 ‘순종하라 복종하라’는 말씀을 그냥 들어왔었는데 왜 예수님께 무릎 꿇고 가야하는지 깨달아졌다. 이제는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체험하니까 예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가 합당함을 뼛속깊이 알게 되었다. 예수님 앞에서 점잔빼는 것은 가장 교만한 것이다.

  그동안의 나의 잘 못된 생각들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죽은 아들의 사후에 대해선 내 능력을 벗어난 문제이며 ‘주님의 권한이다’라고 알게 해주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으로 윤회설이 뭉개져 버렸고 하나님 말씀은 윤회설보다 더 큰 설득력과 위로와 평안을 주었다. 성령께서 내 몸에 임하시니까 술과 담배, 천식의 고통과 병원치료를 받아왔던 우울증이 사라지고 깨끗이 치료를 받았다. 할렐루야!

  그리고 내가 어떤 문제든지 궁금한 것이 있을 땐 하나님께서 설교를 통해서 또는 꿈과 환상으로 가르쳐주셨다. 또한 주님께서 살아계신데 마귀도 활동을 크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오직 깨어서 기도하며 믿음의 줄을 놓지 않도록 은혜주시기를 간구한다.

  끝으로 한 가지,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것은 우울증의 고통은 너무나 암울하다는 것이다.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계속해서 성공 할 때까지 자살을 시도할 것이다. 반드시 주님께로 나와서 고침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님의 평강이 모든 분들께 임하기를 바라며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할렐루야!
<정리 : 강남금식기도원 간증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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