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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내가 달린 십자가에 함께 달릴 수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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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서광섭 성도 (남, 은혜교회)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말씀을 접하고 살았지만 늘 세상적인 것에 흥미가 많았다. 믿음 생활과는 거리가 먼 초능력개발, 잠재의식개발, 초월적 명상, 최면술 등, 자기 암시에 대한 자아개발에 심취되어 관련서적과 학원을 다니며 수년간 몰두하였다. 어느 수준에 도달하자 문화원을 개설했고,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적극적이다!’ ‘나는 성공 한다!’ 등의 표어를 만들어 원생들과 끊임없이 외치며 충실히 실행에 옮겨봤으나 암시하는 내용과 현실과의 괴리감은 날이 갈수록 멀어져 갔고 구호와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나는 실패를 되씹으며 방황하던 중 교보문고 근처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이번에는 종교서적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집, 컬럼집, 주석집 등을 탐독하면서 한 분야씩 깊이 들어가 보자는 생각으로 십자가 제목만 있으면 읽었고 성령, 성막 등 차례대로 보기 시작했다. 또한 내친 김에 신학공부도 해보자 싶어서 1990년도에 2년제 신학교를 졸업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세상에 묻혀 살았었다. 주일날은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소형 라디오에 기독교 방송을 고정시키고 4~5시간 산행을 하며 말씀을 들었다. 자칭 나는 ‘라디오 교회, 나 홀로 교회를 다니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난 점점 듣는 귀가 교만해졌고 어쩌다 구경하듯이 집 근처 교회에 나가서 말씀을 들으면 시시하게 느껴져 오히려 유명 목사님 설교테이프를 듣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대신하며 교회 밖으로 나돌기만 했다.

  어느 날 어렵게 시작한 공장은 문을 닫게 되었고, 나의 재정과 생활은 최악으로 향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 또 하나의 믿는 구석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남다른 세일즈맨십이 있었기 때문에 이정도 어려움은 충분히 헤쳐 나가리라 자신했다. 난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열심을 다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열심을 내면 낼수록 질곡의 나락으로 내 몰리고 있었다. 그러자 하나님을 향한 분노까지 일어 불경죄까지 더 하고 있었다.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내가 뭘 그리 잘못했나요. 이렇게 열심히 살겠다는데 왜 이러세요?’라고 원망이 나오면서 오기가 발동하여 안 먹던 술도 먹고 타락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어떤 기도원에 함께 가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3명이 함께 3일 작정으로 강남금식기도원에 도착했다. 나로서는 처음 대하는 환경이라 그런지 너무 소란스러웠고 꼭 저렇게 소리를 질러야 하나님이 들으시나 하는 의구심과 마이크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와 사방에서 절규하듯이 소리치며 기도하는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난 허탈감과 실망스러움만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런데 내 속에서 이상하게도 어떤 강한 이끌림이 일어났다. 이번에 한 번 더 그것도 혼자서 기도원에 가보자는 이끌림이었다. 그래서 기도원으로 향했다. 첫날은 그저 밋밋하니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 둘째 날이 되자 돌발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토록 거부하던 내가 절규하면서 몸부림치고 있었는데 그것은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마치 지금까지 내속에 꽉 채워져서 요지부동이었던 불신앙의 독소들이 지진을 만난 듯, 스나미를 맞은 듯, 둑이 무너지듯이 깨지고 부서지면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쏟아져 나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토록 어설프기만 했고 목구멍으로 기어들어 가기만 했던 기도가 눈물 콧물범벅이 되면서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였다. 그렇게 하루 종일 매달려서 기도했다.

  하루가 지난 그 밤에 나는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환상 속으로 들어갔다.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너무도 선명하게 누군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때 옆에서 얼굴은 보이지 않고 손만 다가오는데 그 손에는 어린아이의 팔뚝 굵기의 주사기가 들려있었다. 나는 이렇게 큰 주사기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어서 ‘왠 주사기가 저렇게 큰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순간 그 주사기는 예상치도 않던 나를 향해 다가왔고 바로 그 순간 마치 막대 풍선 굵기의 큰 혈관이 내 몸속에 새로 생기면서 허리를 한 바퀴 빙 두르면서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혈관이 터지지 않을까 하는 내 걱정은 기우였고 누워있던 사람은 바로 나였는데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음성이 “너는 내가 걸어간 십자가의 길을 나와 함께 걸어가 보려느냐?” 즉, 나의 십자가에 함께 죽을 수 있느냐? 하시면서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생생한 장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우리 주님이 채찍을 맞는 장면이 보였고, 지금까지 이야기로만 그저 설교 가운데서 듣기만 했던 그 현장에 내가 서 있었다.

  가죽 채찍에 매듭을 짓고 그 매듭마다 쇠갈고리가 달려 있어서 한 번 내리 칠 때 마다 채찍이 온 몸에 감기면서 피가 터지고 살점이 흩어지고 있었다. ‘오! 주님, 어찌 그 고통을 당하시나이까. 그 아픔을 어찌 다 참으시나이까. 누구 때문에 죄 없으신 우리 주님이 그 참혹한 고난을 다 당하시나이까?’ 나는 그저 통곡하고 흐느끼며 울고만 있었다. ‘전신주 굵기의 십자가를 지신 우리 주님, 그 무거운 십자가 지시고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골고다길 오르시네. 저 무지한 사람들 우리 주님 귀한 손에 못을 박을 때 살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지면서 우리 주님 보배 피 사방으로 흘러내리네 … 주여, 아닙니다. 이건 아닙니다. 그 못은 내 손에 박아야 할 못 입니다. 남에게 손가락질하고, 때리는데 사용했던 내 손, 욕심으로 움켜쥐기에 바빴던 내 손, 이웃을 향해 베풀지 못했던 나의 손, 이 추하고 더러운 내 손에 박으소서! 세상 것 향하여 바쁘게 다니며 음탕한 곳으로, 또 술집으로 노름방으로 남을 걷어차는데 사용했던 이 발에 그 못을 박아야 마땅한데 이 벌레 같은 나 위해 대신 고난을 받으시나이까? 주님 당하신 그 고통은 하나도 남김없이 내가 받아야 할 형벌인데 나의 흉악한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그 참혹한 고통 다 참으시고 그 보배 피를 다 흘려주셨네요.’

  그때 어디선가 찬송가가 들려왔고 나도 함께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라는 곡으로 144장을 시작으로 온통 보혈의 찬양을 했다. 내가 그동안 건성으로 불렀던 찬송들이 이제야 내 영혼의 노래로 살아서 돌아왔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욥이 고백했던 그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셨다. 평생 주님에 대해 책으로, 라디오로 듣기만 하고 깨닫지 못했었는데 이제야 내 눈으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난 것이다.

  그렇게 주님의 고난당한 현장을 환상 속에서 목도한 나는 지금까지 죽은 그림 같았던 믿음 생활에서 비로소 생생하게 살아서 호흡하는 신앙으로 고침을 받고 진실한 감사와 찬양을 올리게 되었다. 그토록 깊었던 내 불신의 병을 고쳐주시고 망가졌던 몸까지 고쳐주신 내 영혼이 새롭게 태어난 강남금식기도원에서 감격에 목이 메어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정리 : 강남금식기도원 간증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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