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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실명은…놀라운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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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이재서 목사(세계밀알연합회 회장)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산골 마을,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지 못했다. 보내 달라고 떼를 쓰며 졸랐지만 아버지는 형편이 안된다며 끝내 허락하지 않으시고 농사일을 하게 했다. 더 이상 공부할 수 없다는 것이 마음 아파 많이 울기도 하였고 교복 입은 친구들을 볼 때는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논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나도 좀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꽉꽉 막힌 이 산골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을까’라고 생각하며 시름에 잠기곤 했었다.그런데 인력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었던 그 환경을 하나님은 실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벗어나게 하시고 원도 한도 없이 공부를 해야 하는 길로 인도하셨다. 단지 공부만이 아니라 나의 배경이나 처지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과분한 미래를 정말 특별한 방법을 통해 준비하고 계셨다.

그것은 실명(失明)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너무나 아프게 찾아왔다. 초등학교 졸업한 지 1년 후쯤이었을까. 무지개를 좇고 별 보기를 좋아했던 열다섯 소년에게 그것은 너무 가혹한 형벌이었다. 이제 모든 것은 끝났고 스스로 삶을 정리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길이 없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바로 그 실명이 내게 엄청난 기회가 됐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내게 모든 것을 가져다주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놀라운 축복의 통로였다. 실명이 내 인생에서 내가 감사해야 할 첫번째 조건이라 말한다면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실명이 되고 나는 무슨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1968년 서울 맹학교 중등부 1학년에 입학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중학교였지만 그 학교의 입학은 결코 기쁠 수 없었으며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영원히 낙오자의 세계로 추방당한 심정에 마냥 서글프고 부끄럽기만 했다. 그것이 나중에 유학까지 가서 박사가 되고 대학 교수가 되는 명예로운 출발점이 될 줄을 그때는 몰랐다.

그 맹학교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과 사귀며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러던 중 고3 때인 73년 5월,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있었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선교 집회에 참석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났다. 그것은 실로 환희였다. 절망과 어두움의 나라에서 빛과 소망의 나라로 일순간에 건너온 것처럼 느껴졌다. 희망의 세상에서 살게 된 가장 소중한 삶의 전환점이 됐던 것이다.

신앙인이 된 다음,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라고 강하게 느낀 것은 장애인들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총신대에 입학을 했고 3학년 때인 79년에 장애인을 위한 선교 단체인 ‘한국 밀알 선교단’을 창립하고 단장이 됐다.

그러다가 84년 여름 장애인을 돕고 선교하는 밀알운동을 세계 속으로 확산할 전진기지를 미국에 세우기 위해,또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사역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여긴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됐다. 맨손으로 뛰어든 미국 유학이었지만 10년 동안 사회복지학으로 학사와 석사,박사학위를 받고 계획했던 대로 미국 여러 지역에 밀알 지부들을 세웠던 것은 실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미국 유학을 하는 동안 미국뿐 아니라 유럽 등 여러 나라를 다니며 밀알 지부를 세우기도 했다. 공부 하나만 하기도 힘든 미국에서 나는 두 가지를 해낸 것이다.

94년 귀국 후 96년부터 모교인 총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됐다. 95년에는 내가 직접 다니며 설립한 세계의 모든 밀알 지부들을 하나로 묶어 ‘세계 밀알 연합회’를 출범시키고 회장으로서 현재까지 섬기고 있다. 산하에는 현재 총 61개 지부가 있다. 세계의 수많은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밀알을 통해 위로를 받고 복음을 듣기도 하며 이런 저런 혜택들을 받는다. 매년 국내·외 장애인들에게 1억50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하고,복지관,그룹홈 등 많은 시설들을 국내외 여러 지역에서 운영한다. 다양한 세미나,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을 국내·외 여러 곳에서 매년 실시하고 있다. 분단 이후 최초로 북한 장애인을 위해 휠체어,흰지팡이,의약품 등 4차례에 걸쳐 80억원어치의 지원 물품을 보냈고 두 번은 내가 직접 평양에 가서 전달했다

하나님께 늘 감사할 뿐이다. 나는 밀알 운동을 통해 실질적으로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다. 동시에 그들에게 복음이 전해져 그들이 천국의 소망을 갖고 살도록 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대학 교수와 밀알 사역,나는 그 사역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출발시킨 실명에 대해 늘 감사한다. 좌우명이랄 것은 없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살아온 삶의 원칙이 있다. 그것은 ‘나의 위치에서,내가 가진 것을 가지고,최선을 다하자’이다.

무엇을 가졌고 어떤 위치에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최선을 다하느냐가 문제라고 여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바로 그것이라 믿는다.

△이재서는 누구인가.

1953년 전남 순천에서 출생했다. 총신대와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에서 석사학위,럿거스대에서 사회복지 정책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총신대 교수이자 세계밀알연합회 회장 등으로 섬기고 있다. 수원 창훈대교회 협동 목사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아름다움은 마음의 눈으로 보인다’ ‘밀알의 마음 강물로 흐르면’ ‘사회봉사의 성서 신학적 이해’ 등이 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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