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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하나님의 경제학 평생토록 연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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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욱 안수집사(국군중앙교회. 중앙대교수)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하나님의 경제학을 연구하겠다는 꿈을 품고 기도했다.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는 예쁘게 보시고 지난 30여년 동안 그 길로 나를 인도하셨다. 이 글을 통해 어떻게 그런 꿈을 갖게 됐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며 함께 나누고자 한다.

나는 4대째 기독교 가정에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00여년 전 증조부 형제분께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찬송 소리에 아침잠을 깨셨다고 한다. 우리 삼형제도 새벽기도를 다녀와 곤히 자다가도 가정예배를 드리며 ‘복의 근원 강림하사’를 부르시는 아버지의 찬송 소리에 눈을 떴다.

이런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지만 중학교 때 기독교 교리도 인간이 만들었다는 사회 선생님의 한 마디에 신앙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왜 부모가 믿는 종교만 옳은 종교인가’라는 회의가 싹튼 것이다. 그러나 내 방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고등부 수양회에서 밤새 눈물을 흘리며 회개한 뒤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 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는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가’란 주제로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나는 가난한 사람을 돕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경제학을 연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경제학의 개념도 모르면서 입만 열면 하나님의 경제학을 공부하겠다고 호언했다. 그러다가 2학년 세계사 시간에 중학교 때의 회의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오래 갔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왜 기독교만 진리인가’라는 의문이 해결되지 않아 철학과 변증학에 관심을 가졌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려고 목사 사모인 고모를 따라 이천석 목사님이 세운 한얼산기도원에 갔다. 줄을 서서 안수기도도 받고 밤 12시에 집회가 끝나면 방석을 들고 눈 덮인 나무 밑에 무릎 꿇고 하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1주일 동안 열심히 하나님을 찾았지만 못 만났다. 개도 방언을 하고 내려온다는 한얼산기도원에서 나만 방언을 못한 것 같았다. 목이 쉬어 기도원을 내려오면서 마음이 허탈했다.

졸업 후 임관,백골부대 보병 소대장으로 부임했다. 도착해보니 얼마 전 총기 사고도 발생했던 문제가 많은 소대였다. 그렇게 전방부대 소대장으로 바삐 근무하던 몇 개월 후 하나님께서는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내게 나타나셔서 기도원에서 드렸던 내 기도에 응답하셨다. 그동안의 모든 의심이 봄눈 녹듯 사라졌고 내 생활도 완전히 달라졌다.

제대 후 하나님의 경제학을 공부하겠다는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유학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사랑의교회 청년부에서 제자훈련을 받고 리더로 섬겼다. 그리고 1984년 기독교 학문에 뜻을 가진 젊은이들이 모여 수련회를 열었다. 이 때 한국의 기독교 지성 운동의 큰 기둥이 된 양승훈 김헌수 유해신 양성만 등을 만났다. 이 모임이 올해로 23회를 맞는 기독교학문학회의 시작이었다.

그 때는 자비 유학이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미국 조지아 대학에서 장학금을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그것이 비전을 실천하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믿고 두 돌도 안된 아들 형락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탔다.

태평양을 건너면서 나는 유학생활 4년을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 40년처럼 연단의 기간으로 만들어달라고 기도했다. 이 기도대로 나는 유학생활 중에 전력을 다해 교회 봉사를 했다. 대표 집사를 하며 목사 청빙도 하고 미국 노회에 참석도 했다. 주위에서 “공부하러 왔느냐,교회일 하러 왔느냐”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런 과정에서 분쟁도 많이 겪었지만 보람이 매우 컸다. 당시 학생 집사 중에 7명이 후에 목사가 됐다. 그리고 지금 온누리교회의 손기철 장로,강영재 장로,한정화 피택장로,박은영 목사 등이 당시 함께 유학생 교회를 섬기던 교우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유학을 가라고 하셨기 때문에 직장도 책임져주실 것으로 믿고 학위를 마치자마자 88년 12월 귀국했다. 믿음대로 이듬해 3월 중앙대 조교수로 임용됐다.

그리고 그 해 겨울,웨슬리 선교사의 주선으로 손봉호 강영안 윤완철 조무성 등 10여명의 교수와 여전도회관에 모여 기독교학문연구회(이하 기학연)를 결성했다. 나는 총무와 부회장 등을 거쳐 지금 회장으로 섬기고 있다. 올해로 창간 10년이 된 학술지 ‘신앙과 학문’이 지난해 학술진흥재단의 등재 후보지가 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기학연은 교수 중심으로 주로 연구활동을 하는 ‘연구회’와 연구 결과를 교회를 통해 전파하는 ‘연구소’(소장 김성수 고신대 총장)로 나뉘어 일하고 있다. 앞으로 나의 비전은 기학연을 ‘기독교학술진흥재단’으로 키우는 일이다. 한국 교회는 이제 전문가들을 활용하여 성경적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재단을 통해 한국의 기독 전문인들의 성경적 연구를 독려하고 그 연구 결과를 목회자들에게 보급,설교자와 전문가가 동역하게 하려는 비전을 키워가고 있다.

◇필자 약력

1957년 서울 출생. 중앙대 경제학과와 미국 조지아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 현 중앙대 교수. 경제사학회 감사,기독교학문연구회 회장,기독교사회책임 정책위원장,서울바하합창단 운영위원장 등 역임. 저서로는 ‘그리스도인의 기업 이해:기업이란 무엇인가’(공저) ‘시장인가 정부인가’(공저) 등 다수. 서울 용산동 국군중앙교회 안수집사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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