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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바울처럼 죽자” 결심하니 믿음 더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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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김일수 교수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공동대표 등)

내가 예수를 믿기 시작한 것은 20대 초반 책가방을 들고 대학의 교정을 드나들던 시기였다. 그러나 나는 머리와 의지로만 하나님을 믿었을 뿐 그분을 실제 내 삶의 중심에 모신 것은 아니었다. 아직 껍데기만 신앙인이었던 셈이다.

독일에 유학 중이던 1980년대 초,내 나이 3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성령이 내 영혼 깊숙한 곳까지 만지시고 흔드셨다. 나는 그 순간의 감격을 아직도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껍질이 벗겨지고 속사람이 새로운 감동에 휩싸이던 그 순간을 아직도 그날처럼 생생히 느끼고 있으니 얼마나 큰 은총인가. 그 후 나는 성령 안에서 고상한 크리스천의 이미지를 갖고 살겠노라 늘 다짐하곤 했다. 때로는 넘어질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덧입어 일관된 믿음의 삶을 수놓아올 수 있었다.

40대 후반에 섬기는 교회의 장로로 안수받았다. 평온한 교회생활,단순한 연구와 교수생활 때문에 신앙의 굴곡이 별로 없이 5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시련은 이때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38년간 목회하던 담임 목사님이 정년으로 은퇴한 후 후임 목사님을 청빙하지 못한 채 무려 2년간이나 아픈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첫번째 청빙 절차는 열매 없이 끝났다. 선임 장로님이 청빙위원장,나는 서기로 봉사하면서 6개월 만에 한 분 후보를 택하여 공동의회에 올렸지만 부결됐다. 후보군에 출중한 인물이 없다는 이유로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편 교회 일꾼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 아팠다. 아쉬움과 미련이 교차하는 순간들이었지만 잊어버리고 다시 청빙 절차를 진행키로 했다.

두번째 청빙 절차는 선임 장로님이 미국으로 떠나셔서 내게 그 짐이 맡겨졌다. 앞의 실패를 거울삼았지만 이번엔 일부 교회 일꾼들이 교회의 부목사님 한 분을 담임 목사님으로 모시자고 팔을 걷어올렸다. 그 바람에 휘말려 두번째 청빙 절차도 열매를 거두지 못했다. 교회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마음에 큰 상처가 남았다. 미움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성령님께서는 나를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으로 인도해주셨고 큰 은혜로 깨우쳐주셨다.

‘나도 바울처럼 죽자’고 결심하니 청빙 절차로 인해 시달린 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미움의 뿌리도 뽑힌 채 사라져버렸다. 50대 말에 들어서서 느껴보는 또 다른 평안이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메마른 가슴을 건드리시고 반석에 샘물 흘러나듯 눈물샘이 솟아나게 하셨다. 대표기도 하러 강단에 올라서서 성도들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기도할 수 없는 순간들이 2년여 계속된 채 나는 이제 환갑에 접어들었다. 눈물도 은사인지,성도들의 마음에도 변화가 일어나 지난 2월 세번째 공동의회에서 39세의 젊은 일꾼 조윤 목사님을 청빙하는 절차는 90%가 넘는 찬성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10%의 냉담한 성도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걸어가는 숙제는 남아 있었다. 내게는 인자와 진리,온유와 인내로써 훈련받는 기간이었다. 회복의 시간이 흘러 지난 9월 초 담임목사 위임식을 은혜 중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생각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뜻이었다.

얼마 전 친구 박찬권 목사님으로부터 가나안 여자의 믿음(마 15:21∼28)을 묵상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그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러셀은 ‘나는 왜 크리스천이 아닌가?’라는 책에서 이 가나안 여인을 개에 비유한 예수님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밝히고 그것이 자신이 예수를 믿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묵상하던 중 나는 내가 크리스천인 까닭을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수없이 이 말씀을 읽고 지나치면서도 예수님은 나를 고상한 신자로 여기실 거라 생각했고 결단코 나를 그 가나안 여인과 같은 당혹스러운 처지로 몰고가지는 않으리라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실로 나는 그 가나안 여인 축에 끼기도 어려운 먼발치 신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처지에서 “주여,옳소이다마는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어먹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주님 앞에 기꺼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내면의 용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새 나는 그렇게 크리스천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그것도 말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요 넘치는 은총이라 여겨졌다.

그러면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주님이 내 안에 가장 사랑스러운 분으로 계시기 때문에 나는 크리스천이다. 그분이 가라고 하면 가고,그분이 멈추라고 하면 멈춰 설 준비가 항상 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크리스천이다. 그분은 이 나이에 이르도록 나를 아프리카의 오지나 중동의 사막,티베트의 고원지대로 가라 명하시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나를 학원으로 보내셨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도록 이끄셨다. 그래서 나는 크리스천이다. 앞으로도 내 인생이 다 저무는 순간까지 주님은 나를 겸손히 사랑하고 섬기면서 살라고 이끄실 줄 확신하기 때문에 나는 바로 크리스천이다.

내 나이 60이 되어 이제 꿈꾼다. 나는 대학교수로서 이 일자리에서 농사를 끝마친 뒤 갇힌 자 된 이웃과 형제들을 찾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정의와 공의로운 사랑의 빛을 형제들에게 비추고 나누어주는 삶을 누리고 싶다.

김일수 교수는

1946년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했다. 강릉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독일 뮌헨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고려대 교수로 재직해오며 고려대 법대학장,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 교정법인 아가페 부이사장, 기독교 사형폐지운동협의회 공동대표,세계갱보협회 이사, 한국리더십학교 이사, 활개혁단체협의회 상임이사, 법무부 정책위원장 등을 거쳤다. 저서로는 ‘새벽을 여는 가슴으로’ ‘사랑의 희망의 법’ ‘법 인간 인권’ 등이 있다.
김일수 (고대 법대 교수)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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