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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어느 죄인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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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김형광(청암교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17]

저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아주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제외하고 온가족이 다니는 교회를 다녔습니다. 제가 열살 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 데 그 때는 저도 같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들었던 생각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훨씬 많이 살아야 할텐데 그렇게 오랫동안 살면서 이런저런 고생하느니 빨리 죽어서 돌아가신 할머니랑 예수님이랑 천국에서 즐겁게 살고싶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저는 정말 아무 의심 없이 순수하게 예수님을 믿던 아이였습니다

그렇게 교회에 다니면서 저는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이것저것 들은 것도 많아지고 읽은 것도 많아져서 어설픈 성경적 지식은 쌓여만 갔지만 저는 오히려 더욱 갈급함과 목마름에 허덕여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갈증은 제 믿음에 대한 회의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물의 주관자이시며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면 내가 주님을 믿는 믿음이 믿을 수 밖에 없는 믿음이어야 마땅할 것인데 저의 믿음은 습관처럼 교회 다니며 믿고 있는 억지로 믿는 믿음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하면 응답해주시지도 않는 것 같았습니다. 교회에서는 거룩한 얼굴로 찬양하는 분들이 교회밖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아무 차이도 없이 살아가는 것을 보고 심한 혼란을 느꼈습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믿고 있으며 왜 믿어야 하는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의 제 앞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셨다 해도 도마가 그랬던 것처럼 제 손으로 직접 주님의 옆구리와 손바닥을 만져보기 전에는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저는 고등학교 중반 무렵 심한 고민끝에 교회를 떠났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그렇게 믿음의 방황의 시간을 보낸 저는 대학에 들어와서 전공 공부보다 철학과 여러가지 종교에 더 몰두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시고 참 진리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 진리로 갈 수 있는 길은 분명 무수히 많을 것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에 틀어 박혀 진리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해 접근해 가려던 많은 시도들을 봤습니다. 하지만 역시 그곳에서도 저의 갈급함을 채워줄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단지 어렴풋하게나마 제가 본 것은 인문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그 궁극에 가서는 사람을 포함한 이 우주 전체를 하나로 통하게 하여 지배하는 큰 형상에 대해 알기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형상은 질서, 힘, 신과 같은 말로 표현되고 있었고 그게 무엇이든간에 분명 존재하고 있다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존재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제 갈증을 풀어주기는 커녕 더 심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디모데전서 1:13-17]

사색과 방황속에 이십대를 보내는 동안 참으로 많은 분들이 저에게 전도를 시도해왔습니다. 캠퍼스 안에서,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심지어는 자취방에 속옷바람으로 드러누워 있는 순간에도 전도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 때마다 제 어설픈 성경적 지식과 제가 공부해가며 깨달은 것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철학 등으로 그들을 공격하며 오히려 그들에게 신앙을 버릴 것을 권유했습니다. 때로는 무시했고 심지어는 무서운 말과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쫓아버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분들 중에 십여년동안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저에게 복음을 전하신 분이 있는데 그분은 바로 제 어머님이십니다. 그것때문에 집에 갈 때마다 어머니와 싸웠습니다. 짜증을 내는 저에게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싫은 내색 안하시고 꾸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제가 교회를 박차고 떠난 그 후로 십여년동안 어머니는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시면서 안믿는 저와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십년동안의 새벽기도에 주님 응답하셨는지 올해초 제가 십년동안 피우던 담'배를 갑자기 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루 걸러 하루 마시던 술도 거의 안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최재빈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다시는 교회에 안나가겠다던 저였는데, 권사님은 저에게 확신있게 복음을 전하셨고 저는 망설이긴 했지만 어머님이 떠올라 그냥 권사님을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올해 초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저는 한 가지 기도 제목만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십년만에 다시 당신 앞에 왔습니다. 당신을 떠나 채워보겠다던 저의 갈증을 조금도 해결하지 못한채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제 마지막의 심정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당신이 참 진리이시라니 당신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알고싶습니다. 머리로만 아는게 아니라 영이 있다면 영으로, 혼이 있다면 혼으로, 내 몸으로조차 알게 해주십시오. 어설프게 대충대충 알게 하지 마시고 당신이 말씀하시는 진리를 진실로 진실로 알고 싶습니다.' 주일마다 드리는 예배는 물론이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기도 저녁에 잠들기 전에 하는 기도, 밥 먹기 전에 하는 기도도 전부 이 제목 하나만 가지고 했습니다. 죽자살자 이 기도 제목 하나만 가지고 몇 개월을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묵묵부답의 몇 개월 시간이 흘러가자 이번에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나가는 것을 그만둘까도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매주 친절히 맞아주시는 최재빈 권사님과 늘 따뜻하게 챙겨주시는 권사님의 어머님을 비롯한 가족분들이 너무나도 고마워서 쉽게 뛰쳐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칠월의 어느날 기도하다가 제 머릿속에 들린 '음성'인지 '생각'인지 모를 무언가가 들려왔습니다. '주님 오늘도 기도합니다. 제발 당신이 말씀하시는 진리를 좀 알게 해주세요.' 그러자 '네가 나를 정녕코 알고자 하느냐. 내가 이미 다 말하지 않았느냐. 말씀을 보아라. 그리고 기도해라.' 짧은 응답이었지만 그 몇 마디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말씀보고 기도하라. 그리하면 알게 될것이다. 저는 그 때 그게 응답인지 아닌지도 몰랐습니다. 다만 지푸라기라도 잡았다는 심정으로 그 방법대로 해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슷한 무렵 나가기 시작한 학교 성경공부 모임에서 저는 열심히 성경을 읽었고 여러 형제 자매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말씀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고 묵상하며 주님과의 교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고린도후서 5:7]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모든 진리의 시작은 믿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믿어지는 믿음이든 믿고자 하여 믿는 믿음이든 예수님과 그 분이 하신 말씀을 믿는 방법 외에는 그 길에 다가갈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이왕 아는 거 제대로 알고 싶어하던 저는 억지로라도 좋으니까 확실하게 믿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 전적으로 의지하고자 하였습니다. 열심히 성경 읽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는 주님과 온전한 교제를 할 수 없음을 배우고 회개의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유창하게 잘 하는 것도 오래 할 줄 아는 것도 아니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라는 분에 대해 알아갈 수록 저는 제가 얼마나 교만하고 어리석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을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부정하고 당신 가슴에 못박을 말도 서슴치 않으며 복음 전하던 자들을 박해하였습니다. 그런 저를 주님은 기다려 주셨습니다. 기도해주셨습니다. 저를 위해 눈물 흘려주셨습니다. 너무도 저를 사랑하셔서 죽기까지 하며 저의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웬만해선 잘 울지 않는 저인데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회개를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었고 찬양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복음 16:24]

그러던 와중에 중보기도학교를 신청하고 중보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새신자 교육시간과 중보기도학교에서 남상순 사모님께 배우기를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주시는데 그 형태는 'yes', 'no', 'wait'의 세 가지라고 배웠습니다. yes면 들어주셔서 좋고 no면 확실하게 미련 버려서 좋고 'wait'면 기도하며 기다리다 보면 결국에는 응답해주실 것이니 기도하는 것이 어찌 안좋을 수 있냐는 가르침을 떠올리며 몇가지 제목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정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육십년동안 기독교인들을 욕하면서 살아오신 아버지가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먼 타지에 살지만 십년동안 저와 동거동락하며 술 담'배에 찌들어 살던 친구들이 제가 전도한 것도 아닌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껄끄러운 행정적인 문제가 있어 광주에 내려갔는데 신기하게도 올해 초에 전주에서 만났던 분이 얼마 전에 그 곳으로 발령이 났고 광주에서 그 분을 만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단 오분만에 처리하게끔 해주셨습니다. 신앙적으로 고민하는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갈 때마다 주님은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해결책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최근에는 제 진로를 가지고 기도를 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도 깔끔하게 정리해주시고 아무 걱정 없이 그 길을 바라보고 갈 수 있게 응답해주셨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구하면 받으리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얼마전 작은 연못위의 소금쟁이를 보았습니다. 문득 그 소금쟁이가 여기저기로 미끄러지며 헤메이는 모습이 저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금쟁이는 물이 가득 담긴 연못을 찾아 열심히 헤엄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실 소금쟁이는 이미 연못안에 있었던 것이지요. 제가 그토록 찾던 참 진리는 노력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진리는 말씀과 뜻으로 태초 전부터 온 우주에 가득차 있었고 저는 이미 그 속에서 태어났고 살아왔던 것이었습니다. 죄에 가리워진 눈은 그 진리되신 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 분은 언제나 제 마음문을 두드리고 계셨지만 제가 완악하여 문을 열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제가 먼저 그분을 배신하여 떠났고 미워했으며 원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오래참음과 사랑하심의 본보기가 되어 저를 기다려주셨습니다. 그런 주님께 이제 이 죄인이 회개하며 돌아왔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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