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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축복 증거’ 보이려 금의환향 이끄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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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허정옥 대표 (법환교회)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두 장면이 떠오른다. 하나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과거의 그림이다. 어느 날 저녁, 증조부는 당신의 세 아들을 좌우에 좌정시킨 가운데 손자인 아버지를 마당에 꿇어앉히셨다. “네가 예수를 믿어 이 집에서 쫓겨나겠느냐. 아니면 종손의 도리를 다해 조상을 섬기겠느냐?” 증조부의 추상 같은 호통에 아버지는 “예수를 믿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마당을 에워싸고 있던 친척들의 발길질과 함께 아버지는 가문에서 내쳐졌다. 그날 밤 아버지는 7명의 가족을 데리고 남의 집 헛간에서 밤을 지새우며 숟가락 7개를 세워놓고 눈물로 기도했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신 하나님은 “네가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은즉, 내가 너를 위하여 백배로 축복하리라”고 약속하셨다.

그 후 나는 아버지의 일곱번째 딸로 태어났고 2남7녀를 포함한 11명의 가족은 마을의 교회를 지키는 하나님 가문의 자녀가 되었다. 아버지는 항상 “우리가 무지하고 가난하면 ‘저 예수쟁이들 봐라’며 손가락질당할 터이니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더 많이 공부하고 부요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어른들은 잠을 자지 않는 줄 알았다. 아침에 눈을 떠도 부모님이 보이지 않고 저녁에 잠들 때에도 부모님은 안 계셨다. 남의 땅을 빌려 소작을 했으므로 밤을 낮 삼아 남보다 배로 땀을 흘려야만 했다. 우리는 일곱살이 되면 모두 밭고랑에 앉아서 김을 맸다.

어머니는 항상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강조하셨고 우리는 먹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동이 트면 밭으로 나가 일하다 학교종이 울리면 학교로 달려갔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밭에 나가 일을 하다 해가 진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식사나 청소는 순번제로 해결했다. 물론 소풍이나 수학여행처럼 수업이 없는 날에도 밭으로 향했다. 특히 ‘밤바르’가 시작되는 겨울철이 되면 시장뿐 아니라 여관과 음식점을 순회하며 행상을 했다. 밤바르란 썰물이 유난히 잘 나가는 겨울철 새벽에 횃불을 들고 개펄에 나가 소라와 해삼 등을 채취하는 일이다. 지금도 눈이 하얗게 쌓인 밤길을 걷던 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저린다. 달빛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귀신인가 싶어 종종걸음을 치면 어머니는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귀신이 못 붙는다”며 더 당당하게 걸음을 옮기셨다. 미역철이 되면 나와 언니가 시장에 전을 펼치고 앉아 있는 사이에 어머니는 등짐을 지고 가가호호 방문해 미역을 팔았다.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기에는 어머니의 하루 해가 너무 짧았던 것이다. 장사가 끝나면 어머니는 물질을 위해 바다로 내달리셨고 점심도 못 드신 어머니 생각에 우리는 그저 숟가락만 달그락거렸다.

또 하나의 그림은 구약성경에서 아하수에로 왕 앞에 선 에스더의 모습이다.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니냐”라는 모르드개의 권고에 “죽으면 죽으리라”며 민족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왕 앞에 나선 에스더. 고아에서 왕후가 되기까지 에스더가 걸었던 고난의 길도 눈시울을 뜨겁게 했지만 그 뒤 대목이 특히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 즉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홀을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홀을 만진지라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에 5:2∼3) 이 장면을 떠올리면 왠지 모를 비장한 각오와 알 수 없는 용기가 솟구쳐 어려움 앞에서도 의연해진다.

지난해 3월말, 나는 우연히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 대표로 임명되었다. 연간 적자가 20억∼30억원이나 발생하는 문제의 사업장에 조그마한 대학의 여자 교수가 파견된 것이다. 많은 도민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당연지사였지만 정작 내 마음은 ‘왜 이 어려운 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알 것 같아 담대해졌다. 그동안 지나온 역경의 순간들이 오버랩되면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 깨달아졌기 때문이다.

‘ICC 제주’가 위치한 곳은 어렸을 때 우리가 농사를 짓던 곳이다. 그래서 대표로 취임하던 날, 마을 어른들을 식장으로 초대했다. 인사말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섰는데 문득 아하수에로왕 앞에 선 에스더가 떠올랐다. 비장하고 담대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당당한 목소리로 하늘에 계신 두 아버지께 감사하고 ‘이 자리가 축복의 증거’임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주인정신으로 열심히 일할 것과 창대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경영 현안을 해결하리라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나는 아침마다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어려운 곳의 사장으로 보내주셨으니 아버지는 이곳의 회장님이십니다. 이곳에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고 찬양코자 하는 성도들이 줄을 잇게 하시고 그로 인해 이곳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엊그제 나는 서귀포 지역 종친회에 초대받았다. ‘가문을 빛내는 후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 생각으로 목이 메었다. 아버지의 선택대로 내가 ‘축복의 증거가 된 것일까’라고 자문하는데 하늘에서 흰눈이 나풀나풀 내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보낸 응답 같았다.

누구인가

1960년 제주도 서귀포시 대포동에서 태어나 부산대를 졸업하고 국민은행에 입사했다. 휴직해서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한 뒤 복직하고 부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서귀포시 탐라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귀포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 3월 ‘ICC 제주’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됐으며 제주컨벤션뷰로 이사장을 겸하고 있다. 모태신앙으로서 현재 월드컵기념교회인 법환교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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