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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하나님이 주신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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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유재건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온누리교회 협동장로)

“하나님이 주신 소명”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수없이 자문해봤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에 크리스천이 됐다는 말 외에는 다른 답이 없는 것 같다.

무신론자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생이 될 때까지 교회나 예수라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중학교 1학년 때 6?25전쟁이 터져 아버지는 강제 납북되셨고,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천안으로 피란을 가야 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교회에 가보게 됐다. 주막으로 쓰이던 허름한 교회에서 어머니와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 후의 삶은 내가 하나님의 어떤 자식이어야 하는가를 깨달아가는 여정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뒤 미아동 감리교회에서 중등부 회장, 유년교회학교 반사로 헌신했다. 길거리 전도를 통해 중등부 회원을 100여명으로 늘렸다. 그 무렵 어머니를 모시고 참석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 부흥회’에서 엄청난 은혜를 받은 나는 부흥 강사가 되겠다고 결심하기도 했다.

고교 재학 때 각종 웅변대회를 휩쓸고 다니자 담임 목사께서는 감리교신학대에 진학, 훌륭한 부흥 강사가 돼라고 당부하셨다. 나도 그것이 나의 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진학상담을 하시던 교감 선생님께서 내 적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야 한다고 권하는 바람에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시며 주인이신 주님, 제가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까. 저는 홀어머니를 모셔야 하고 어머니께 꼭 기쁨의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새벽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께 간구했다. 한참 기도하자 정치외교학을 공부해 적성을 살려보라는 하나님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무난하게 대학을 마치고 공군 장교로 4년간 근무한 뒤 한국 유네스코의 직원이 되었다가 단돈 50달러를 들고 미국 유학길에 나섰다. 유학 생활은 그래도 성공적이었으나 법대를 마칠 무렵 동포 청년 사형수 이철수 구명운동에 많은 시간을 쓰다보니 변호사 시험 준비에 소홀해 거듭 낙방하고 말았다.

변호사의 꿈도, 이철수 구명운동도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하고 피조물들이 죄 짓지 않고 잘사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명예나 자랑을 위한 일은 결코 이루어주시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

아내와 나는 계속 열심히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결국 변호사 시험 합격은 물론 6년여 무료 변론의 결실로 이철수씨가 석방되도록 허락해주셨다.

변호사 개업을 한 뒤 동포 사회에서 잘나가는 변호사로서 경력을 쌓아갔다. 하지만 일에 쫓기다보니 3남매에게는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당시 미국에는 동포도 별로 없었고 인종적인 편견도 아주 심했다. 그런 환경에서 모범적이던 아이들까지 많은 좌절을 겪어야 했다. 특히 큰아들의 좌절감이 심했고 일탈 행동도 많았다. 뒤늦게 우리 방식으로 애써보았지만 아들과의 대화는 단절되고 상황은 나빠져만 갔다. 아들의 생각은 무시하고 우리 마음대로 만들려다 결국 아들을 잃게 된 것이다.

결국 우리는 손을 들고 주님께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주님께서 우리 가정에 장남을 선물로 주실 때에는 이 땅에서 잠시 잘 양육하라는 뜻이었는데 그런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제발 다시 아들을 주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게 해달라고 기도 드렸다. 이런 우리 부부의 새벽기도를 주님은 결국 들어주셨다. 그 아들이 지금은 목사님의 사위가 되어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있으니 이 또한 내가 크리스천임을 감사해야 할 이유다.

나는 매월 첫째 수요일 아침 국회조찬기도회에서 여야 기독의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이 모임의 회장으로서 기도회를 주재할 때마다 부족하기만한 나를 아들로 삼아 이 땅에서 이룩하고 싶으신 주님의 일에 동역자로 택해주신 데 대해 거듭 감사를 드린다.

나는 세상의 인기보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한다. 하늘 나라의 의를 이 땅에 실현시키는 것이 주님이 내게 주신 소명이며 그래서 나는 크리스천인 것이다.

◇ 누구인가

1937년 서울에서 출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 워싱턴대에서 사회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아 변호사로 활동했다. 90년에 귀국해서 ㈜영풍 대표, 경원대학장을 거쳐 15∼17대 국회의원으로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열린정책연구원장과 국회조찬기도회장, 국제의원연맹 제3분과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온누리교회 협동 장로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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