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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0.1%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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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95년전인 1899년3월1일자 <대한 그리스도인 회보>에 이런 기사가 실려있습니다.

"이번에 새로난 북도 군수중에 유력한 양반 한 사람이 말하되 예수교 있는 고을에 갈 수 없으니 영남 고을로 옮겨 달란다니, 어찌하여 예수교 있는 마을에 갈 수 없나뇨?  우리 교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도라 교를 참 믿는 사람은 추호나 그른 일을 행치 아니하며 관장의 말을 거역하지 아니하는데 그러나 관장이 만약 무단히 백성의 재물을 빼앗을 지경이면 그것을 쉽게 빼앗기지 아니 할 터이니 그 양반이 갈 수 없다는 말이 그 까닭인 즉"

당시 기독교인은 초교파적으로 단지 1만명 가량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의 인구가 1500만명이었으니 0.1%도 안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있는 곳에는 부정과 부패가 있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부정부패를 좋아하는 탐관오리는 기독교인들이 있는 평안도 함경도 지역은 가기를 꺼려하였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없는 곳으로 가려고 애를 썼다는 기록입니다.

우나라 초대교인들은 정직을 생명으로 여기고 살았음이 분명합니다.
정직은 생명이었습니다.

- 겨자씨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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