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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사랑하면 할수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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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이가은 자매(대현교회, 주교사, 찬양/율동, 반주)

(앞 글에서 계속됩니다)

05년도, 나는 ‘새내기’라는 낯선 이름을 달고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풋풋한 마음 보다는 이 학교에서, 대학 생활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야 한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부모님께서는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하셨기에 우리 오빠가 방학동안 과외 5개를 한 돈으로 나의 등록금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3월, 학교 곳곳에는 동아리를 알리는 포스터로 가득했다. 고등학교 시절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던 나는 대학 내에 펼쳐있는 동아리 세상에 반했다. 연극, 밴드, 오케스트라, 뮤지컬, 합창 등등 나의 이목을 끄는 것들이 많이 있었으나 얼떨결에 친척오빠의 손에 이끌리어 ESF라는 기독교 연합 동아리에 들어왔다. 나는 언제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동아리 홍보 기간이 끝난 후에는 다른 곳에 가지 않으니 움직이지 않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10월 쯤 되자 고등학교 친구들이 하나 둘 자신의 동아리 활동을 뽐냈다. 어떤 아이는 연극 주인공을, 한 친구는 밴드부에서 일렉을 연주하고, 또 한 친구는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하기도 했다. 그 날도 친구의 공연에 갔다가 꽃이나 들어주는 들러리가 된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내 친구들이 저마다 대학에서 얻은 것을 뽐낼 때 나는 그저 서 있기만 해야 하는가. 친구들의 말도 그랬다. “넌 거기에서 뭐하는데?” 라는 질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허무한 마음을 안고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동아리 예배에 늦었다. 말씀 중이었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고 내 머리 속에선 친구들의 소리와 내 안의 소리가 교차했다. 억울한 마음에 속으로 물었다. “하나님 제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마음이 너무 아픈 가운데 하나님의 속삭임이 느껴졌다. “너의 친구가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연극을 할 때에 너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법을 배웠고, 네 친구가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악기를 배울 때 너는 나를 향해 찬양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이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이 아니더냐.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귀한 일이란다. 너를 내게 맡기렴. 너를 아름답게 빚어줄게.”  그분의 위로가 눈을 통해 얼굴로 흘러내렸다. 하나님은 또 말씀하셨다. “가은아, 나는 너에게 많은 달란트를 주었단다. 묵히지 말고 나를 위해 사용하렴.”

    나는 이렇게 ESFer 가 되었다. 모임과 예배를 기쁘게 참여했다. 위의 일이 있을 땐 전혀 알 수 없었던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율동”이었다. 초등학교 이후로 춤이라는 것은 춰본 적이 없었으나 나는 1학년 여름수양회 때 율동할 지체가 부족하니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임시율동부원이 되었다. 율동을 통해 기쁨으로 예배하는 도중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지 않는 것 또한 기대하심을 깨닫게 되었고 그 놀라운 은혜에 감사한다. 이것은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시는 하나님을 뜻하는 게 아니라 나조차도 기대하지 않는 곳에 씨앗을 뿌리시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말하는 것이다.

  2학년 1학기가 지나고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갑자기 1월에 하나님께 드렸던 헌금이 생각났다. 연초에 있었던 부흥회 때 특별헌금을 해야 했는데 나에게 있는 돈이 몇 천원뿐이었다. 그 돈을 봉투에 넣으며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하나님, 드릴 헌금이 없으니 이번 2006년을 당신께 드릴게요.”

  그러나 뭐 하나 달성한 것 없이 봄 학기는 빠르게 지나갔고 마음에 찔림이 있었던 나는 가을학기 율동부장으로 섬기기로 자원하고 매일 밤 10시 말씀과 기도의 경건생활을 확실히 하기로 다짐했다. 또한 어떤 일에 대해 결정할 때에 고민과 생각 대신 기도를 드리겠노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나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고3 때의 경험은 분명히 너무나 감사한 나의 간증이지만 그 후에 더 큰 도약과 경험이 없음을 보며 나의 신앙의 무미건조함을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큰 경험을 허락하사 당신의 영광을 다시 보게 해주시라고 기도했다.

  2학기 사역이 바쁘게 시작되는 가운데 동아리 친구가 인도 비젼트립을 제안했다. 인도는 영적으로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할 곳이니 지금부터 준비하여 겨울방학에 함께 귀한 사역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가고 싶었다. 내가 바라는 귀한 체험이 선교를 통한 것이라면 더욱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에게 그만한 재정이 없었다. 2학기를 당신께 드리기로 했고 진정 성장하기를 바라는 상황에서 단기 선교에 엄청난 계획과 비밀들이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어쩌면 갈 수 없는 상황이기에 가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재정을 채우기 위해서 교내 인턴쉽을 신청했으나 떨어졌고, 고심 끝에 아르바이트를 알아봤다. 내 적성에 너무 잘 맞을뿐더러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아르바이트에 자리가 나서 신청하려 하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가은아, 나한테 일하렴. 내가 채워줄게.”

  알바를 하면 시간이 겹쳐서 ESF 훈련에 잘 참여하지 못 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비젼트립이 성장하기엔 더 크고 멋져 보였기에 훈련은 뒤로 하려고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더 훈련받기를 원하시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도대체 그 재정을 어디서 채워주신다는 것일까? 지난 학기 나의 성적을 되돌아봤을 때엔 이번 학기라고 뛰어나게 향상하지 못할 것 같았고, 내 주위를 둘러 봤을 때에도 그 돈을 줄만 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그리 잦게 들리는 것이 아닌 만큼 하나님 뜻에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2학기가 시작되고, 마음이 너무 풍성했다. 아침마다 점심마다 저녁마다 먹는 영의 양식이 꿀같이 달았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눈에 밟히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나의 생활은 궁핍해져만 갔다. 분명히 하나님 당신께서 채워주신다고 한 것 같은데 부모님께서 애써 보내주시는 용돈으로는 세 끼 식사를 모두 밖에서 하는 나에게 식비를 다 대기에도 힘이 들었고 나중엔 굶는 것도 습관이 되었다. 생활이 점점 힘들어지자 급기야 십일조를 내지 않게 되었다. 사실 이 전에도 십일조를 깜빡 잊고 내지 못하기도 했고 그것을 알게 된 후에도 내지 않았지만, 고의로 내지 않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하나님도 내가 굶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밤 10시가 되어 기도를 하러 동아리 회관에 가려는데 학교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그 아이의 목소리는 힘이 없어보였고 나에게 상담을 요청해왔다. 하지만 10시는 하나님과의 약속이라며 거절을 하고 회관으로 향했다. 기도실에 들어가 기도를 하려는데 마음이 아파왔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가장 우선된 것이 사실이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말했다. 사랑은 직접 행하는 것이라고. 한참 우는 중에 나의 진짜 모습이 보였다. 사실은 후배를 만나 돈을 쓸 게 걱정이 되어 그 아이의 요청을 저버린 것이다.
"아! 하나님 저는 이만큼의 그릇밖에 되지 못하나 봅니다.” 나의 모습이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고린도 후서를 읽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1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8:9)
 
  눈물이 다시 마구 쏟아졌다. 그리고 하나님께 말했다. “하나님 어떻게 제가 이렇게 가난한데 다른 사람을 섬길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궁핍한데 어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겠습니까? 저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그렇게 하셨습니까? 저는 정말 못 하겠습니다. 하나님 이 만큼 아팠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저를 부요하게 하시면 안 됩니까?”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다시 바라본 성경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7-8)

  하나님께서는 내게 답을 주시려 한 것 같았으나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앞에서는 가난한 상태에서 남을 부요하게 한다 하시고 이제는 넉넉하게 해주신다니 모순처럼 느껴졌다. 그럼 나에게 부요를 주신다는 것인가?
시간이 흐르자 위의 사건은 해결이 되지 않은 채 마음에 담아뒀다. 시간이 지나고 10월 이 되었으나 부모님께서는 용돈을 보내주지 못 하셨기에 나는 무일푼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 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 하냐 (마 6:25-26)

  감사하게도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았는데도 여기저기서 밥 사주겠다고 줄을 섰다. 정말 그 만남 하나하나가 너무 놀랍고 신기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을 알지 못하는 친구, 나의 동역자, 동아리 간사님, 연락 없던 친구, 교회 목사님 등 사람을 통해 나타났다. 그리하여! 일주일동안 한 끼도 빼놓지 않고 화려한 식사를 대접받았다. 평소에 못 먹던 아침까지도 챙겨주시는 그분을 보며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영적으로 육적으로 너무나 많은 영양을 공급받았다. 그리고는 나의 지갑을 보았다. 사실 나는 무일푼이 아니었다. 지난 여름방학에 부모님 친구 분 댁에 갔다가 100달러를 받았고 그 돈은 하나님 보다 더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나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빽’이었다. 소유욕이라 했던가. 정말 먹고 싶은 것이 생길 때, 정말 사고 싶은 옷이 생길 때 그 돈을 쓰고 말겠다는 나의 마음은, 언뜻 볼 때 소비 욕구를 잠재워주는 것으로 보였으나 무엇에 쓸까 고민하는 마음은 오히려 나를 궁핍하고 강팍하게 만들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하신 말씀을 바탕으로 볼 때에 나는 하나님보다 100달러를 더 의지했던 것이다.

이에 나는 이 돈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다. 십일조를 범한 죄의 값, 하나님보다 재물을 섬긴 죄의 값으로 헌금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엔 정말 아까운 마음이 들었으나 후에는 오히려 마음이 평안하고 여유로워졌다. 100달러는 예전처럼 지갑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나의 돈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돈을 어디에 헌금하면 되는가? 마침 동아리 찬양부에서 악기 마련할 재정이 부족하여 헌금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서 내버리고 싶었다. 빨리 나의 죄의 값만 치르면 된다는 심보였다. 그런데 아무리 100달러라 한들 떼우기식의 제물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 친구에게 선물 받은 ‘내 신을 벗으라’ 라는 책에서 사람을 통해서 재정을 채우시는 하나님을 발견했다. 내 마음에 새겨진 이야기는 책의 저자인 로렌 커닝햄과 제니스 로저스가 선교를 나가려는데 꼭 100달러가 모자랐으나 전혀 모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은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고 소망이 생겼다. 이 돈도 하나님이 진정 바라시는 곳, 정말 필요로 하시는 곳에 쓰였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니, 나는 기도로 준비하여 감사함으로 드리고 또 이런 나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게 된다면 너무나 큰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을 기도제목으로 삼고 꾸준히 기도했다. 과연 어떻게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기에 눈을 크게 뜨고 다녔다. 그러자 이전보다 노숙하시는 분들, 떡이나 뻥튀기를 파시는 나이 많으신 분들이 더 많이 보였다. 그렇지만 그 분들에게 드릴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나의 기도는 잊혀져가는 듯 했고 그래도 내 맘과 내 지갑이 편안한 건 사실이었다. 언제든 쓰여 질 하나님의 지갑이니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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