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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사랑하면 할수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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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가은 자매(대현교회, 교사, 찬양/율동, 반주)

(앞 글에서 계속)

10월 25일, 고등학교 때 무척이나 친했던 친구가 나를 만나러 신촌에 왔다. 1년 만에 만났기에 너무 반갑고 즐거웠다. 친구랑 신촌 이곳저곳 구경하다가 현대백화점에 들렀다. 한 시간이 넘도록 구경하다가 그곳에서 나왔을 때에서야 나에게 핸드폰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더니 통화음이 갔으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고, 배터리가 꽉 차있었지만 조금 뒤에 전화했을 때엔 핸드폰이 꺼져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되지 않았던 것은 핸드폰이 아주 안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산지 2년이 지났기 때문에 주우면 찾아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선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핸드폰 분실했다고 알리고 문자나 전화를 해줄 것을 부탁했다.

다음날, 룸메이트 언니에게 핸드폰 소지하고 있는 분의 연락처가 전달됐다. 내 핸드폰에 연락을 했던 한 사람에게 소지한 분이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 준 것이다. 나는 기뻐하며 그 분에게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으셔서 여유 있을  때 연락 주시라고 문자를 보냈다.  룸메이트 언니와 늘 함께 있을 수 없었기에 연락 여부에 신경을 쓰지 못한 채로 하루를 보내고 저녁 즈음 동아리 후배와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룸메이트 언니에게 후배의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다. 핸드폰 소지한 분이 언니에게 연락해서 핸드폰 안 찾을 거냐며 화를 냈다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있는 상황 같았으나 언니의 목소리를 보니 그 분이 좋지 않게 말하신 것 같아 내가 어찌할 바를 몰랐고 한 편으로는 황당했다. 그 분은 내가 연락을 했을 때엔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나에게 전달된 번호가 잘못된 번호였고 죄송한 마음으로 언니에게 번호를 다시 물어 연락을 취했다. 신촌에서 대학을 다니시는 분이고, 목소리가 앙칼지셨다. 핸드폰은 자신의 친구가 교회에서 주웠는데 자기가 대신 갖고 있었다면서 핸드폰 때문에 신경이 쓰여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 했다고 화를 냈다. 기분이 상하긴 했으나 시험기간이니 만큼 죄송한 마음에 사과를 드리고 핸드폰은 여유 있을 때 주시라고 했으나 그 다음 대답이 나를 놀라게 했다. “설마, 그냥 받아갈 건가요?”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감사한 마음에 자원하여 내가 드릴 생각은 마땅히 하더라도, 그 분이 받을 생각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핸드폰을 주운 곳이 교회라면 교회를 다니실 것 같은데 이런 반응에 너무 황당했다. 이에 질세라 “그거 팔면 5만원 정도 나온대요. 팔지 그래요 그냥?” 이라고 말했더니 여자 분은 농담이라면서 그날 밤 약속시간을 정했다. 사례비에 대한 생각은 이미 접었고 너무 화가 나서 약속 장소에 나가 면박을 줄 것을 상상했다. 핸드폰을 그 자리에서 던질까? 그러나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ㅠ 한참 짜증을 내다가 결국 그 사람이 어떻든 간에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할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나의 지갑을 가만히 봤다. 만 삼천 원 뿐이었다. 화를 내긴 했지만 돈을 드릴 생각을 하니 만원은 너무 적게 보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 이전에 사뒀던 예쁜 편지봉투에 만원과 내가 제일 좋아하는 C초콜릿, 그리고 쪽지를 넣었다. 그리스도인끼리 얼굴 붉히게 되어 부끄러웠다는, 아무튼 감사하다는 말을 적고 나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동안이어서 혹여나 무시(?)당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는 선배를 부를까 몇 번을 고민하다가 결국 혼자 약속 장소로 나갔다.

  만났다. 다행하게 그 분도 혼자 나와 계셨고 나이는 나보다 한두 살 정도 많아보였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자 그 분은 가방에서 나의 핸드폰을 슬며시 꺼내어 보이셨다. 나는 자연스레 핸드폰을 가져가려고 했으나 그 분은 재빠르게 핸드폰을 가방에 다시 넣으시면서 “그냥 못 줘요.” 라고 말했다. 다시 한 번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어차피 드릴 것이었으니 맘을 가다듬고 편지봉투를 건넸다. 초콜릿 때문에 붕 뜬 봉투를 보고 “이게 뭐에요”라고 물으셨으나 나는 돈이라고 말하기가 너무 싫었다. 기쁨으로 주는 돈은 좋지만 친절(?)을 돈을 주고 사는 느낌이 들어 초콜릿이라고 말하자 화를 내시기에 나는 짜증을 내며 돈도 있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얼마냐고 묻는 게 아닌가? 본인은 이만 원 정도 생각했다면서 다음에 다시 거래하자는 거였다. 돈이 없다고 2000원 있는 지갑을 펼쳐 보이면서 주체할 수 없이 화를 내었다. 다툼이라고 하기엔 뭔가 어색하지만, 초등학교 때도 안 해본 말싸움을 추운 날 독수리약국 앞에서 했다. 이러지 않기로 했는데 정말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모든 말싸움 기술을 저장해뒀다가 풀어 놓는 것 같았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갑자기 100달러가 떠올랐다. 그 분의 마음이 못되고 성격이 좋지 않아서 그냥 한 번 해보는 장난이 아닌 것 같았고 힘든 상황이 있었기에 이 분도 만 원에 따듯한 마음을 바꿀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웃기지만, 그렇게 싸우던 도중 나는 “그럼 더 큰 돈을 드릴까요?” 라고 말했다. 사실 얼떨결에 나온 말이라 정말 줄 생각은 감히 하지 않았다. 그렇게 100달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돈 때문에  후배의 부탁도 외면했고 돈 때문에 십일조를 떼어 먹었으며 돈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어한 일도 많았지만 100달러만 바라보며 살다가 결국에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해서 이 돈을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고. 돈 때문에 고통 받기에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존재가 너무 값지며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는 말씀처럼 나는 아무 것도 없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든 것을 이미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분이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내가 그렇게 멋진 말을 했나 생각했으나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어느새 손을 잡고 울고 있었다. 언니의 친구가 교회에 다니는 것이며 당신은 어릴 적 한 번 가봤었다고. 요즘 너무 힘들어서 교회 가볼까 생각해봤었다고. 언니의 눈에 그동안 하나님 없이 겪었던 외로움과 슬픔이 가득했고, 나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 영혼도 구하지 못했다는 아픔으로 눈물이 가득했다. 아, 하나님은 이렇게 만남을 주도하셨던 것이다. 당신이 가장 필요한 사람을, 그리고 당신의 돈이 가장 아름답게 쓰일 곳을 예비하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돈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마구 주셔서 재빠르게 봉투에 넣었으나 언니는 자꾸 거절했다. 미안하다며, 좋지 않은 일이 있어서 정신이 없었고 이제라도 마음을 차려야 하니 제발 가져가라고 했다. 그렇지만 언니는 나의 기도응답이었고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아니 기도 응답 이상으로 언니에게 주고 싶었던 이유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빚진 자 되어 평생 주를 위해 살았듯이 언니 또한 사랑의 빚을 져서 하나님께 붙잡힌바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결국은 돈을 귀하게 드릴 수 있었고 언니는 하나님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얼마나 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남이라고 하기엔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혼이 만나는 시간이었다. 핸드폰을 찾으러 간 나는 잃어버린 영혼까지 찾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너무 기뻐서 춤추며 왔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며 이기적이고 아까워하는 나를 통해서도 일하신다는 것이 너무 너무 감사했다. 풀어 말하자면  나로 하여금 이 돈이 당신의 것임을 인정하게 하셔서 이기적인 나에게 물질적 손해 없이 값진 일을 체험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드렸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것으로 내어놓은 게 아닌 나의 모든 씀씀이가 당신의 손길이 되면 너무 행복하겠노라고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접하게 된 말씀이 마가복음 10장 말씀이었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39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 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예수님의 곁에서 능력과 권세를 체험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이 고난과 희생의 종이 되심을 알지 못 한 채 마냥 기대하는 마음으로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청했고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희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역사하심과 왕 되심을 체험하고 마냥 기뻐하며 “저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으로 쓰임받길 원해요.”라고 말하는 것은 감히 쉽게 마실 수 있는 잔이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이 고민은 다음날부터 직접적으로 부딪히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오빠가 사준 나이키 운동화를 올해에도 여전히 깨끗하게 신고 있었지만 지난 여름방학 때 수련회에 운동화를 고스란히 놓고 돌아왔다. 구두를 잘 신지 못 했던 나에게는 시급한 문제였지만 당장 운동화를 살만한 여유가 없었기에 중학교 때 신었던 스니커즈를 가져다가 신게 되었다. 신은 지 오래되어 운동화의 상태를 잘 몰랐었는데 신고 보니 바닥이 닳아서 신는 양말마다 하루 만에 구멍이 났다. 발 뒷꿈치 부분도 헤어져 구겨서 신고 다녀야 했다. 그리고 그 날, 십일조를 꾸준히 모아 선한 곳에 써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입금하기 위해 안 쓰는 카드를 ATM기에 넣었는데 출처를 알 수 없는 6만원을 발견했다. 순간 이것은 운동화 살 돈이라고 생각하고서는 기쁨을 이기지 못 했다.

그런데 다시 돌아보니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분명 어제는 하나님께 나의 씀씀이를 드린다고 하였는데 생각지도 못한 돈을 보고 바로 하는 생각이 날 위한 것이라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금요예배 말씀이 약대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청빈하게 살아가는 세례요한에 대한 것이었기에 이에 대한 부담도 컸다. 하나님이 주시는 나눔의 기쁨으로 인해 그 잔을 나도 들고 싶다 말했지만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를 생각해보지 못 했기에 혼란스러웠다. 운동화마저도 포기하고 살아야하는 것인가, 혹 지금 이것을 포기한다고 하면 이게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나눔의 시작과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인데 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끝까지 다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나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이리저리 고민하던 중 언니를 만났던 이야기와 나의 다짐과 6만원에 대한 고민을 성실이에게 털어 놓았다. 성실이는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이끄심에 대해 큰 은혜를 받았고 나에게 뜬금없이 발 사이즈를 물었다. 서로가 어려운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별 다른 생각 없이 대답을 해주었고, 나 또한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위한 기쁨의 면류관으로서의 운동화를 신어보겠노라고 대답을 했다. 다음날 성실이에게 운동화를 선물로 받았다. 운동화를 고르면서 너무나 행복했다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거라고 말하며 건네더니 부끄러운 듯 달아나버렸다.

원피스가 사고 싶어 그동안 명절마다 받은 백화점 상품권을 모아두고 있었는데 내 운동화를 사고도 너무 맘에 드는 원피스를 살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 당황했다. 처음에는 성실이가 사주면 내가 돈을 쓰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우리 안에 주시는 마음이 너무 기쁘고 아름다워서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샀으면 나의 만족으로만 끝났을 것이 나에게 하나님과 성실이의 사랑을 느끼게 하시고 성실이 또한 나눔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정말 머리가 하늘까지 닿을 만큼 하나님이 주신 이 선물이 너무너무 기쁘고 즐거웠다.

며칠 후 성실이와 나는 동아리 회관에서 신약배경사 쪽지시험을 공부하고 밤이 늦어서야 수면을 취했다. 늦잠을 잔 우리는 집에 들를 새도 없이 허겁지겁 연대로 향했다. 새벽부터 내리는 비로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고 우리의 무심한 옷은 아직도 포근한 어제를 살고 있었다. 수업시간 내내 추워 떨다가 마치고 나가려는데 김정주 교수님께서 우리를 보시더니 추운 날 빌려주기 위해 마련해 놓은 옷이 있다고 하시면서 연구실로 오라하셨다. 나는 올라가던 중에 성실이의 바지와 운동화가 흠뻑 젖은 것을 보았다. 성실이의 운동화에 구멍이 있어 비가 새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순간 기쁨과 화가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성실이는 자신의 뚫린 운동화는 신경쓰지도 않고 나에게 오히려 선물하다니 미안하고 감사하고 아름다웠다.

교수님께서는 성실이에게 운동화를 선물해주셨다. 나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사랑을 내밀었더니 이 사랑이 자꾸 전해지고 커져가는 것이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일 4:12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 분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더 깊이 알고 체험하게 하셨다. 정말 사랑은 쥐는 것이 아니라 쓸 때에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랑 자체가 하나님이라는 것은 나의 맘을 너무 설레게 했다. 나는 분명 가난하지만 나의 마음은 너무나도 풍요하였고, 작은 사랑하나가 너무나 크고 널리 퍼진 모양으로 다가오니 그 기쁨은 배가 되었다.

후에 나도 모르던 사이에 입금된 120만원의 장학금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기 중에 과에 갑작스레 다섯 개의 장학금이 들어왔는데 좋지 않았던 성적을 감안하여 정말로 아무런 기대 없이 신청을 했었다. 그렇지만 장학금 신청 기간이 이틀밖에 되지 않았던 것과 2학기 시험도 마치기 전에, 성적 확인도 없이 장학금을 준다니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또 그 장학금이 다른 네 개와는 비교되는 명예로운 것이기에 내심 내가 받은 것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하셨다. 이리하여 나는 또 다시 하나님의 아름다운 지갑을 쥐게 된 것이다.

또한 장학금을 신청할 여건과 기회가 생겨 다음 학기 장학금을 두 개나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내가 그 100달러를 나의 것이라고 우기고 손에 쥐었더라면 하나님께서 과연 나에게 장학금을 주셨을 것이며 장학금보다도 더 귀한 사랑의 체험을 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것을 뺏기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게 하여 더욱 풍성하게 누리게 하려 하심인 것이었다.

즉,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순간 “아무 것도 없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이를 부요하게 한다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항상 부요한 자이지만 마음은 언제나 가난해야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 됨의 특권을 누리되 그것이 나의 안위와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겸손히 낮은 자리에서 스스로 가난하여 질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한 일을 위해 넉넉하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내 안에 뿌리 깊게 박혀 있던 재정에 관한 피해의식과 상처를 나도 모르는 사이 차근차근 치유해주셨음을 느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게 될 때에는 내가 갖지 못 해도 모든 것이 그 분의 것이기에, 내가 가졌더라도 역시 그 분의 것이기에 나의 있고 없음은 부끄러움이나 자랑이 될 수 없는 것을 알았다. 다만,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섬김을 향한 열정이, 나의 씀씀이가 아닌 하나님의 필요에 대한 관심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갑의 두께를 결정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또 다시 하나님의 사랑의 불어남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씀씀이에 귀 기울이려 한다. 사랑하면 할수록, 나누면 나눌수록 풍성해지는 이 비밀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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