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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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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박선영 자매(안동교회)

나는1972년 9월 1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년 뒤 세상에 나온 남동생과 함께 사랑 많으신 부모님 밑에서 평범하지만 단란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유교적인 집안에서 성장하신 분이었고, 어머니 또한 친가의 종교가 불교였기 때문에 원래 우리 집은 기독교와는 관련이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일곱 살 때, 동네 소꿉친구를 따라 교회라는 곳에 처음 가 보게 되었다. 그 때는 친구들을 만나서 율동하며 찬양하는 재미에 그저 왔다 갔다만 했을 뿐이었고 꾸준하게 다닌 것도 아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3학년이 되자 나는 동생과 함께 우리 집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교회에 등록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간 꾸준히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부슬비가 내리던 초여름의 주일 아침, 걸어서 교회에 가던 나는 10차선 도로의 신호등 없는 횡단 보도에서 시속 80킬로미터로 내리달리던 봉고차에 그만 치이고 말았다. 너무나 순식간의 사고였기 때문에 나는 사고 당시의 기억이나 아픔 따위는 이상하리만치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나는 봉고차와 충돌 직후, 10미터 가량을 새처럼 날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그대로 추락하였다고 한다.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이틀 동안 혼수상태로 누워 있어야 될만큼 사고는 만만치 않은 것이었음에도 일단 의식을 되찾자 나는 놀라운 속도로 회복되어 갔고 몇 군데의 찰과상과 타박상을 제외하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친 데가 없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교회의 많은 어른들께서 병실에 친히 오셔서 기도해 주셨고,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내가 빠르게 완쾌되어 간다고들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저 밋밋하게 교회를 다니던 어린 내게 아주 강렬한 방법으로 다가오셔서 하나님과 내가 최초로 일대일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체험을 하게 하신 것 같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나는 꾸준히 교회에 다니진 않았다. 마치 무슨 취미 생활이라고 하듯이 기분 내킬 때에만 교회에 나가곤 했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중2 때에는 거의 일년 내내 중등부 예배에 출석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믿음의 진전은 없었던 것 같다. 사춘기 적의 나는 성경책을 읽기보다는 다른 문학 작품을 읽는데 바빴으며, 찬송가를 부르는 것보다는 클래식 음악에 빠져 있었다. 어릴 때부터 단지 취미 삼아 피아노를 쳐 왔던 내게, 당시 연대 작곡과에 다니던 나의 피아노 선생님께서는 나더러 음악을 전공할 것을 권유하셨고, 그로 인해 내 인생의 방향이 결정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친언니 같은 그 선생님의 격려와 자상한 배려에 고무되어 친구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하던 나는 공부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고, 음악에도 커다란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중3이 되면서부터는 아예 나 스스로 교회에 발을 끊고 더욱 더 공부에만 매달렸다. 이왕 음악을 전공해 보기로 한 이상, 나는 선생님의 권유로 예고에 진학하기로 마음 먹고 선화 예고 작곡과에 입학하였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여전히 교회를 다니지 않았고, 오로지 나의 목표는 열심히 노력하여 일류 대학에 진학하고 계속 공부하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을 떠나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께서 나를 그대로 내 버려두시지 않았다. 대학 입시에 떨어져 나는 결국 다시 하나님과 만났다. 그렇다고 교회에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내 방에서 조용한 가운데 그분께 기도하곤 했다. 그 동안 하나님을 잊고 지냈음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대학만 붙여 주시면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성가대 활동이든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주님 위해 봉사하겠노라고 기도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되뇌곤 했다.

결국 주님의 도우심으로 연년생 동생과 나란히 연세대학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하고 연약한지 나는 재수 시절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드렸던 약속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곧 까맣게 잊어 버리고 말았다. 대학 시절 나는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도 하고 내가 꿈꿔 왔던 대학의 모습이 아닌 것에 실망도 하며 그럼에도 끊임없이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모색해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나는 여성이라는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고 무언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끝내 내가 돌아오지 않자 마침내 큰 시련을 주셨다.

96년 내 동생은 연대 총학생회장이 되었고, 그 6월에 나는 대학원에 합격하였다. 그런데 그해 8월에 연대에서 열렸던 범민족대회로 인해 학교는 쑥밭이 되었고, 안전 귀가를 요구하며 이과대와 종합관에서 굶주림과 최루 가스 속에서 한총련 대학생들 몇 천명이 열흘 가량을 갇혀 있었다. 물론 동생도 그 안에 있었다. 정부는 그들을 적을 이롭게 하는 단체라고 규정 짓고 언론은 한결같이 그들을 폭도들이라고 매도하였다. 부모님과 나는 너무나 갑작스런 사태에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망연자실 가슴 아프게 TV를 통해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내 동생이 폭도라니, 동생은 그저 이 땅의 평범한 젊은이일 뿐인데, 다만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슬퍼했다는 것뿐인데, 오히려 흥청망청 먹고 마시면서 젊음을 표류하고 있는 이들보다는 훨씬 더 건강한 젊음일텐데.

나는 대화와 토론의 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권위만 득실거리는 이 사회에 염증을 느꼈고, 깊은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용케 연대를 탈출한 동생이 어디서 지내고 있는 지도 모른 채 그렇게 나의 대학원 첫학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공부할 의욕을 잃은 채 간신히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지하철 역에서건 은행에서건 동생의 얼굴이 붙어 있는 지명 수배자 포스터가 눈에 띄는 것도 괴로웠고, 귀가 길엔 사복 경찰이 나를 미행하였다. 전화는 물론 도청 당했고, 집 주변엔 늘 형사들이 배회하곤 하였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주님은 나를 부르셨다.

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계시는 우리과의 윤 교수님께서 어느 날 조교실에 오셨다가 내게 성가대 알토 파트에 나와 보라고 하셨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안동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처음엔 그냥 조용히 기도하고 말씀만 듣다 오는 교회 생활을 하고 싶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재수 시절에 기도하며 드린 약속을 잊지 않고 계셨다. 아름다운 색유리가 예쁘게 빛나는 교회 예배당 안에서 나는 나를 위로하시는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었고 나는 마치 돌아온 탕자와 같은 심정이 되어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멋대로 하나님을 떠나 있을 때조차도 나를 사랑하셨던 하나님! 그리고 내가 당신 앞에 다시 서기까지 애태우시며 기다리셨던 아버지…. 내가 어두워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셨던 그분의 사랑과 인내하심을 깨닫는 순간, 나는 그저 감사하여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언제나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을 주시고 또한 그러한 연단 뒤에는 언제나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두고 계신 아버지의 놀랍고도 오묘한 섭리에 감탄할 따름이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보여주시고 절망 속에서 새 희망으로 인도하시는 분…. 동생은 조금 지나서 그만 경찰에 체포, 구속되었다. 나는 동생의 재판 기간동안 더더욱 하나님을 붙잡고 매어달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하나님의 응답으로 동생은 예상보다 훨씬 짧은 형을 언도받았고, 1년 6개월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돌보심 덕분이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98년 4월 5일, 나는 세례를 받았다. 주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정말 뜻깊은 날이었다. 더구나 우리 교회 성가대가 내가 작사, 작곡한 곡을 연주해 주었다. 나는 그날 목이 메어서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가 없었다.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는 동안에도 계속 눈물이 흘러 내렸다. 하나님의 이 사랑 어찌 다 갚을 수 있을까? 인간의 마음으로는 측량할 길 없는 완전한 사랑이다.

나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 맨 먼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의 신실한 관계를 스스로 깨뜨렸으며,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수시로 배신하는 우리들이며,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은 어리석은 우리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베푸셨다. 이것은 하나의 이론이나 학설이 아닌 의심할 수 없는 진리이다. 이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자유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부족한 내게 이 글을 쓰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내게 많은 도움과 용기와 사랑을 주었던 교회의 여러 성도님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정말로 나는 많은 훌륭한 분들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받은 것 같다.
앞으로 이 세상 살아 나가는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고, 때로는 어려움에 직면할 때도 있겠지만 사랑의 주님을 의지하면서 진리의 빛을 향해 하루하루 걸어나가는 나의 삶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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