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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고통없는 천국으로 남편을 떠나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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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 한현정 권사(금현교회)

저는 이모님의 중매로, 남편은 29살 저는 25살에 결혼하여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보금자리를 폈습니다.
결혼한 지 1년 만에 장손이라는 멍에 때문에 시부모님들이 계신 남편의 고향인 이곳 여주로 오게 된 것입니다.
내려올 때에는 3년이나, 늦으면 5년 안에 집안정리를 해 놓고 다시 서울로 가기로 약속하고 내려왔는데 3년이 30년이 되고 5년이 50년이 됬네요.

저희 남편은 인정 많고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고 헤아릴 줄 아는 분별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고향으로 내려온 남편은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누에도 치고 소도 키우며 특수작물 보리, 벼농사에서 다수확상도 여러 번 탔습니다. 저희는 평범한 생활 가운데서 3형제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부터 남편은 소화가 안 된다며 주치 의사처럼 믿고 있는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으나 효험이 없어 재검사를 했습니다. 역시 똑같이 신경성으로 나왔습니다. 왠지 저는 예감이 좋지 않아 남편한테 딱 한번만 더 검사를 받아보자고 요구했습니다. 다행이도 순순히 응해 진단을 쉽게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단결과가 암말기라며 하루속히 입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혼이 빠져 멍한 상태로 주저앉아 버릴 수밖에 없었지요. 남편이 화장실에서 돌아왔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암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눈치챌까봐 얼른 얼버무렸습니다.
“신경성이라는데 돈만 내 버렸네 입원해서 안정하면 된데” 저는 혼자 중얼거리며 집에 갈 차시간이 늦겠다고 재촉하며 병원 문을 나섰으나 발이 허공을 딛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모릅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입원준비를 하며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 말을 듣고 목사님은 목사님이 친히 저희들을 병원에 데려다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저는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사랑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것을요.

그 다음날 목사님과 저희들은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주치 의사 민 박사님을 찾아보니 출장가시고 없었으며 그분을 만나려면 예약환자들이 밀려 있기 때문에 20일이 넘어야 치료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입원실도 없었구요.
저희들은 우선 국립의료원에 입원하기로 했습니다. 국립의료원에는 집안 아저씨 덕분에 절차를 받지 않고도 쉽게 입원실로 들어 갈 수가 있었습니다. 다시 또 검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매일 피검사에 조직검사, 굶으면서 검사만 하니 남편은 점점 더 쇠약해져만 갔습니다. 검사가 끝나고 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약의 부작용으로 혈압이 떨어지고 고열이 나기 시작하고 토하고 설사하고 도저히 눈뜨고는 남편의 아픔과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힘들었기에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욕심 없고 아픔을 나눌 줄 아는 그런 사람에게 이런 고통이 어디 있으며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가슴에는 큰 돌멩이가 누르고 있고 기도도 말씀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병원생활 5주가 지나도 여전히 아무 호전이 없었고 의사는 약의 부작용으로 생명이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심한 고열과 심한 설사로 인하여 엎드려 괴로워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화장실에 가서 물을 틀어 놓고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 남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하나님이시여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하나님이시여 고통만이로도 멏게 해 주세요”라고 울며 기도하는데 한 병실에 같이 입원하고 있는 아주머니가 들어오셔서 제 등을 쓰다듬으면서 “애기엄마 아저씨가 잠들었어”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나가보니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린아이처럼 편안하게 잠들어있었습니다. 저는 남편의 잠든 모습을 보고 동생한테 남편을 맡겨 놓고 집으로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손에 일이 잡히지를 않았습니다.

애들 도시락 만해도 만만치가 않고 엎친데 덮친다고 시아버지는 뇌경색증과 치매로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반쪽이 마비가 와서 그냥 흘러내리는 소 대변을 받아내야만 했습니다. 서울 한의원에서는 어려우니 모시고 가라고 했습니다.
드라마에서 연속극으로만 보아오던 비극이 제 앞에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남편이 독한 치료를 받을 때는 체력이 떨어져 실패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이럴 때면 남편은 집으로 가겠다고 데려다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갈수록 투병생활이 힘들었습니다. 1차 항암치료가 끝나 퇴원을 해서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2차 치료를 위해서 좋다는 것은 다 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병 증세는 급속도로 빨랐습니다. 병원에서도 이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복수가 차서 눕지도 못하고 엎드려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때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아무런 대책 없이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합니다.

“주님 앞에 이방인이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하여 그 여인의 기도를 들어주셨던 것처럼 저희 남편에게도 부스러기라도 좋으니 주님의 은혜를 달라구요” 이렇게 기도하다보면 남편은 편안하게 잠들곤 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과 집사님들이 오셔서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어떻게 아셨는지 장암리에 사시는 김 집사님도 찾아오셔서 시아버지와 남편에게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남편은 효자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하나님 데려가시려면 저를 데려가시지 왜 남편을 데려가려 하십니까?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남편을 할 일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하구요 이렇게 부엌에서 하나님과 따지고 있는데 남편이 “오늘이 수요일인데 교회에 안 갈거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없어도 되겠어”하고 물으니까 남편은 웃으면서 “내가 어린앤가 뭐” 했습니다.

저는 성경책을 들고 교회를 가려고 문밖을 나섰으나 예감이 석연치가 않았습니다. 마당에 서서 망설이다 들어가 보니 순간 저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일어서지도 못하는 남편이 문밖에 나와 마루기둥을 붙들고 비틀거리며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나와 섰는 줄 알았습니다만 남편은 화장실이 아니라 제가 시아버지 방에 연탄불 가는 것을 잊어버리고 교회 간 줄 알고 연탄불 보러 나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화도 나고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죽어가면서도 부모를 생각하는 갸륵한 마음씨 저는 또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보고 계십니까? 여기서 한 발짝만 내디디면 쓰러져 죽을지도 모르는데 아버지가 추워하실까봐 걱정하는 이 효성스런 아들의 모습을” 저는 끌어안고 방으로 들어와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 왕이 벽을 향해 울며 기도한 것처럼 저도 울며 회개했습니다. 그때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이 떠올라 용기를 얻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 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남편은 살포시 잠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날 저녁 12시 10분에 남편은 기도소리를 들으며 고통과 괴로움마저 잠재우고 영원히 잠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하나님이 값없이 건져주신 구원의 선물을 받고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그야말로 남편의 영혼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드신 후 하늘나라로 데려가신 것이었습니다.

이같이 시련과 슬픔 속에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비록 사랑하는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에 슬픔과 놀라움이 컸지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요 거두시는 이도 하나님이라는 생각에 좌절하거나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 번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한 번도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마음이 있습니다. 저 역시 잃어보고 아파본 후에야 알게 되었으니까요. 눈물만이 눈물을 닦아 줄 수 있고 아픔만이 아픔을 안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이미 저보다 먼저 가셨던 그 고난의 길이, 이 세상 어떤 것도 보상해 줄 수 없었던 이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이 흘렸던 피와 눈물이 내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 저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믿음의 시련은 누구에게나 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다 같이 내 아픔으로 인해 다른 이의 아픔을 더 깊이 이해하고 안아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남편을 고통 없는 그 곳으로 보내던 날을 기억하며 한자 적어봅니다.

  당신이 떠나던 날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산천초목도 슬퍼하던 날
  당신 가시는 길을
  어찌 막으리오
  가시는 님에 길을 막을 길 없으니
  부디부디 잘 가시오
  편안히 가시오
  아픔이 없고
  고통이 없는
  하나님의 품 본향의 집으로
  사랑이 있고
  행복이 있는
  하나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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