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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롱거버거사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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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충영 교수(경북대학교 명예교수, 대구도시가스 사장)

롱거버거사(社)는 고급 바구니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2000년을 기준으로 바구니 기술자 3천 명을 포함해 8천7백 명의 직원과 7만 명의 세일즈맨, 그리고 수백만 명의 고정 수집가와 고객을 둔 연간 매출 10억 달러 이상의 미국에서 가장 큰 바구니 생산 회사입니다. 이 회사가 이제까지 판매한 바구니는 1천만 개에 가깝고, 바구니 외에 도자기나 패브릭 관련 제품들도 거의 3천만 개나 팔려나갔습니다. 지금도 매일 4만 개의 바구니가 이 회사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업자 데이브 롱거버거(Dave Longaberger: 1934~1999)는 다른 학생들의 조롱을 받던 열등생이었습니다. 그는 미국 오하이오 주의 시골 마을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대대로 바구니 짜는 일을 해 온 가난한 집안의 열두 남매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간질이 있었고 글씨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난독증 환자에다 말도 더듬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데 7년이나 걸릴 정도로 열등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을에서 ‘가장 성공할 가능성이 낮은 아이’라는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자기가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사람이 모든 일을 다 잘 할 수는 없을 거야.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눈을 더 잘 치우고, 잔디도 더 멋지게 깎을 수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바구니를 만드는 데 나를 따라올 사람은 없어.”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생필품 영업사원으로 간신히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그의 유년기와 청년기는 절망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성실과 신뢰를 밑거름 삼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자기의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 바구니 만드는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와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롱거버거사를 세웠습니다. 미국인들은 그가 만드는 아름다운 수공예 바구니에 열광했습니다.

1972년에 파트타임 직원 몇 명으로 시작한 롱거버거사는 사세가 크게 확장됐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처음 시작됐던 그 시골 마을을 떠나지 않고 그 곳에 바구니와 똑같은 모양의 본사 건물을 짓고 바구니 만드는 것을 견학할 수 있는 기술자들의 작업장을 비롯해, 골프장, 레스토랑, 각종 편의시설들을 조성해 이름 없던 조용한 시골 마을을 관광 명소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롱거버거사는 이제는 연간 매출 10억 달러에 달하는 유명 수공예 바구니 제작 회사가 됐고, 성공 신화의 본보기가 됐습니다. 그는 1999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가장 뛰어난 사업가 중 한 명이자 가장 서민적인 CEO였다고 칭송받고 있습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개정 마 25:15]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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