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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무심코 병원갔다 ‘대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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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이완우 교수(나사렛대학교)

나는 1943년 강원도 어느 두메산골의 가난한 농가에서 1남 5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세살 때 앓은 천연두 후유증으로 실명의 장애를 입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춘천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그곳으로 찾아가 입학을 하게 됐다. 열네 살 때였다.

처음엔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공부도 시키는 대로 해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시작한 공부였지만 다행히 취미가 붙었다. 학교 인근 교회에도 출석했지만 신앙심은 별로 없었다. 그것도 시키대로 해야 하는 것 중 하나였는데 불행히 취미가 안붙었다.

1966년 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나는 교사 자격증을 손에 들고 춘천으로 돌아갔다.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공부시켜준 모교의 선생님으로 금의환향한 것이다.

1975년까지 모교에서 10여년 간 근무한 후 사직하고 서울로 상경, 시각장애 안마사들의 권익옹호 운동에 앞장섰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연수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1989년 7월 정부투자기관인 장애인복지기관에 입사했다. 연구개발실 책임연구원으로 있는 동안 석사·박사학위까지 취득하게 됐다.

1996년 어느 여름날이었다. 동료 직원들과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중에 한 직원이 “오늘 점심값은 모두 제가 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모두들 그를 쳐다보는데 내가 “제목이 뭔가요?”하고 물었다.

그는 최근 어떤 증상으로 계속 시달리다가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오늘 ‘결과가 깨끗하다’는 병원측의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며칠간 죽었다가 새로 태어난 기분이라며 기뻐했다.

그의 말을 듣다가 “나도 유사한 증상이 많다”고 하자 그는 “찜찜해하지 말고 빨리 병원 가서 털어내라”고 조언했다.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검진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나는 아니었다. 검진결과가 나온 날 나는 어느새 대장암 말기의 중환자 신분으로 전락해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초고속으로 수술 날짜를 받았다.

1996년 9월2일 아침 9시30분. 수술실로 싣고 갈 침대가 입원실에 도착했다. 내 몸은 침대 위에 올려졌고, 왼쪽 손목에 번호표가 채워졌다. 침대가 움직이는 동안 굴복할 줄 모르고 억척스럽고 씩씩하게 살아왔던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수술실 앞에서 아내, 딸, 사위와 작별 인사를 하는 순간 나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수술실 안. 담당의가 척추마취 동의서에 사인하라고 했다. 나는 설명을 요구했다. 그는 대부분 코 마취를 하지만 내 경우는 상태가 너무 나빠 척추마취를 해야 하며, 후유증이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사인을 거부하자 담당의는 수술을 포기할 수도 있다며 윽박질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하나님 아버지를 찾았다. 교회만 쭐레쭐레 다녔지 믿음도 없었던 내가 다 죽게 되니까 하나님을 찾다니…내가 생각해도 참 염치가 없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까지 위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내가 정복할 목표로 설정한 경쟁자를 젖히기 위해서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한번만 더 살려주시면 앞으로는 아래만 보고 남을 도우며 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서원기도를 했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고,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9시간30분이 걸린 대수술이었다. 마취가 풀려 두 차례나 더 마취를 했다고 한다.

2개월 뒤 퇴원해 집에 돌아와서 평소 습관처럼 서재에 들어가서 책장의 책들을 어루만지며 감회에 휩싸였다. 그러다가 문득 손길이 멈추는 데서 점자책을 꺼내들었다. ‘에베소서’였다.

빠르게 읽어내려가던 점독의 속도가 느려지더니 “곧 창세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4절)…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6절)”에서 손이 멈췄다. 그 부분을 반복해서 읽었다.

나는 깨달았다. 주님은 나를 쓰시려고 창세 전에 택하시고, 윽박질러 공부시키시고, 직장도 주시고, 박사학위까지 주셨구나. 그런데도 내가 그걸 깨닫지 못하고 다 내가 잘나서 된 것으로 알고 점점 교만해지는 것을 보다 못해서 치셨구나. 깨달음이 눈물로 변했다. 나는 그 눈물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생애 처음으로 진정으로 영광과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2004년 3월1일 나사렛대로 자리를 옮겼다. 2007년에 시각장애 영역에 특성화의 일환으로 ‘점자문헌정보학과’를 설치했다. 나는 헬렌 켈러처럼 ‘시청각 중복장애’로 특수학교에서도 적응을 못한 학생을 입학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학생은 교수님들의 남다른 열성과 지도로 이제 첫학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로마서 8장28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처럼 우리 나사렛대 구성원들이 합력해 선을 이루게 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누구인가

1943년 강원도 횡성 출생. 천연두로 실명. 시각장애인 학교인 강원 명진학교와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한성대 교육대학원 졸업. 대구대에서 특수 교육으로 문학박사 학위. 2004년부터 나사렛대 점자문헌정보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강원 명진학교 교사, 국립중앙도서관 특수도서관 전문위원,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책임연구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상임이사, 대한안마사협회장 등 역임. 서울 신길동 삼성교회 장로로 시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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