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간증 받은 사랑 나누는 삶을 살고 싶어...

첨부 1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이명덕 강남성모병원 소아외과 교수

전도를 몇 사람 했느냐고 물을 때면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내 손으로 직접 주님께 데려온 사람은 지금까지 아내 한 명뿐인 것 같다.

유교와 불교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내에게 결혼을 빙자(?)해 ‘예수 믿겠다’는 약속을 받았고, 결혼 후엔 세례도 받게 했다. 그런 아내가 더 많이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했다. 교회에 냉담하던 장인도 교묘한 방법으로 교회로 모셔다 놓더니 장로까지 되시게 했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즈음부터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새벽기도를 다녔다. 중학교는 미션스쿨인 대구계성학교와 신명학교 외에 다른 선택이란 우리 식구에겐 아예 없었다.

부모님은 어려운 살림살이의 고비 때마다 기도로 주님께 매달리는 분들이었다. 당신들에게 믿음은 만사를 해결하는 비장의 무기였다. 우리집 형편을 잘 아는 분들은 우리 형제가 학업을 마친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했다. 나는 봉사하는 전문인을 꿈꾸면서 의대에 진학했다. 나는 의사가 된 후에도 찬양대(후암교회), 주말 진료, 선교합창단(대학합창단) 등 교회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유능한 의사, 유능한 교수가 내 목표, 내 우상이 되면서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게 됐다. 적당한 세속주의와 최소한의 교회생활―그게 당시의 내 모습이었다. 그때의 나를 회고해 보면 참 끔찍하다. 참 깐깐하고, 화 잘내고, 소리 잘 지르고, 잘난 체까지 하는 참으로 밥맛 떨어지는 인간이었다.

학자금뿐 아니라 김유덕 권사님의 사랑, 양영장학회, 결혼 후의 장인, 유학시절 피츠버그대 박상종 교수님 등으로 끊임없이 이어진 후원과 사랑이 필요에 따라 차례로 채워주신 하나님의 선물인지도 몰랐다. 그저 내가 잘나서 받은 상이라고 생각했다.

불타는 경쟁심으로 열심히 연구하고, 수술하고, 강의 잘하고, 환자 열심히 돌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반성도 회개도 없이 끝까지 잘나갈 줄만 알았다. 그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이 시원찮은 인간의 영혼을 건져 쓸 만한 도구로 준비시키고자 갖가지 고비, 좌절, 상처와 함께 경고 메시지도 보내셨다. 물론 나는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수술 잘해놓은 환자가 죽기도 하고, 정확한 양심적 진료라 자만했지만 환자나 가족으로부터 아주 못된 의사로 매도 당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분해서 분노와 회의가 끊이지 않았다.

내 교만으로 곁에 있던 많은 이들이 나를 떠났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에야 비로소 광야에 홀로 서 있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의 내 소망과 다르게 돼 버린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는 나를 다시 기도의 길로 이끄셨다. 이때를 대비해 아내를 준비시키신 것이다.

두번씩이나 분규에 말린 교회에서 나와 충신교회에 정착한 후 아내의 믿음은 급성장했다. 나는 아내 손에 끌려 한발 늦게 새벽기도에 나가면서 차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주님의 은사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 수술이나 처방은 이 손으로 하지만 치유하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소관 사항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세상에 깊이 빠져 있던 내 죄를 고백하며 눈물 콧물로 기도를 잇게 됐다. 아내의 입에서 “찬양대 봉사해 볼까”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찬양대로 찾아갔다.

기도와 찬양이 내게 새 힘과 새 기회를 주었다. 20년 연구생활의 숙원이던 소장이식의 대성공. 목사님, 장로님, 병원 수녀님, 교우들의 기도가 없었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식환자의 급성거부반응(거부반응이 나타나면 90%이상 치명적이다)도 이 분들의 중보기도로 극복할 수 있었다.

외과 영양학을 공부할 때 영양소 필요량이 ‘하루 권장량’으로 규정되는 것에 나는 ‘일용할 양식’의 놀라운 뜻을 깨닫게 됐다. 정말 큰 은사였다. 즉 우리는 한달분을 미리 먹을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나는 드디어 나를 평생 몰고 다니던 ‘욕심’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2005년 아시아영양학회를 개최하면서 이 은사에 감사해 책 표지에 ‘Daily Bread’를 새겨넣었다. 그리고 행사는 학회 역사 이래 최고의 성공으로 기록됐다.

나는 대중기도 때 자주 울먹인다. 안 그러려고 애를 쓰지만 영 안된다. 이렇게 지은 죄가 많은 나, 그런데도 이렇게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많았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너무 많이 진 자로서 나는 빚 갚는 하루하루를 살려고 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