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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시련겪다 ‘내 삶 지배하는 큰 힘’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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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금진호 전 상공부장관

금진호 전 상공부장관(75)이 뒤늦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변 사람들을 전도하며 성령 충만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금 전 장관은 지난 6개월간 본보의 인터뷰 요청을 사양해오다가 창간 19주년에 맞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야기와 그 이후의 근황을 글로 보내왔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경우에서도 보듯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폭넓은 사회생활을 경험한 끝에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사람은 왜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가. 평온함이 가득한 금 전 장관의 글을 공개한다.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에 글을 쓴 몇 분 인사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그 대상이 된 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 사회인으로서나 기독교인으로서나 들어볼 만한 고백도 자격도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감히 글을 쓰기로 한 것은, 예술품 전시장에도 대상 특선 입선작 외에도 가끔 가작품이 함께 전시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또 성령 충만하시고 믿음 강하신 분들의 깊은 신앙고백만 아니라, 주님의 전지전능하심에 가끔 회의도 들면서 신앙수련을 쌓고 있는 초신자의 불완전한 고백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경북 북부 지방의 유림의 본고장에서 태어나 그렇게 성장했다. 우리 집은 전통적 유가(儒家)에 속하기 때문에 ‘야소교’(우리 지방에서는 기독교를 그렇게 불렀다) 신자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이단자 중의 이단자가 되는 것이었다.

조부는 한말에 과거를 준비하다가 경술늑약으로 꿈을 접으신 유생이셨다. 그래서 내가 고향으로 내려갈 때마다 조부는 되풀이해서 강조하셨다.

“신식 공부는 얼마든지 해도 괜찮다. 하지만 야소교는 안된다. 야소교는 조상의 기일에 제례를 올리지 않는다. 조상 숭모의 미덕도 안지키고, 삼강오륜도 무시하는 옳지 못한 종교다.”

내 고장을 기준으로 보면, 초기 교회들은 이른바 우리 반촌(班村)에는 발도 들이지 못했고 그저 상민(常民)들 속으로만 조금씩 파고들었을 뿐이었다.

내가 교회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아내와 결혼한 직후인 1960년대 초였다. 아내는 이화여대에 다녔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주일예배에 참석했고, 기독교 과목들을 필수로 이수했으며, 성경공부와 찬송도 게을리하지 않은, 어쨌든 세례교인이었다.

아내는 주일 아침마다 나를 불광동에 있는 은광교회로 인도해 갔다. 아내는 “신혼 초의 로맨틱한 데이트도 할겸, 당신을 오늘 하루만이라도 ‘마귀가 득실거리는 오염된 세상’에서 격리시켜 정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 첫 신앙생활은 그리 오래지 않아 막을 내렸다. 교회보다는 친구들과 등산, 테니스를 하는 게 훨씬 더 좋았고, 국장시절부터는 골프의 재미에 푹 빠져 주말을 대부분 골프장에서 보냈다. 어쨌든 나는 수많은 제사, 명절 차례 등을 책임져야 하는 유교 집안 장남이었다. 이런 게으르고, 교회에 못나갈 핑계라면 얼마든지 끌어댈 수 있었던 불쌍한 죄인을 주님이 다 용서하시고 품으로 다시 불러주시는 데는 정치적 사건이 계기가 됐다.

1993년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2년 뒤 소급법을 제정, 12.12 사건을 내란죄로 단죄했다. 그리고 전 ·노 대통령을 기업체로부터 받은 일체의 정치헌금에 뇌물 수수죄를 적용, 구속 수감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두 정권에서 대통령과 지근거리에 있던 많은 인사들도 조사받고 형사소추를 받게 됐다가 대통령의 사면에 의해 없던 일로 됐던 일이 있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내가 고문으로 있던 기관의 장이 대통령께 전달을 부탁한 돈봉투를 전달한 것이 뇌물 전달죄에 해당된 것이다. 사실이었다. 면회를 신청하는 것도 번잡하니 수시로 청와대를 출입하는 당신 편에 전달해 줬으면 한다는 부탁을 거절해야 할 이유가 당시에는 없었던 것이다.

공직생활 30년 동안 결코 청백리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성실히 공직을 수행했다고 생각한 사람으로서 그 정신적 충격은 참으로 큰 것이었다. 식욕을 잃었고 불면에 시달렸으며, 우울증, 실어증까지 나타났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냐는 반발심도 있었지만, 내가 지배하고 있는 줄 알았던 내 삶이 뭔가 큰 힘을 가진 존재의 계획대로 끌려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아마도 그때 비로소 절대자의 존재를 의식한 것 같다.

이 무렵 C회장과 L의원이 찾아왔다. 평소 믿음 좋은 기독교인으로 복음 전파에도 열성적이었던 그 분들은 “교회에 나가서 신앙생활을 이어보자. 그러면 주님의 은혜로우신 사랑으로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며 내게 교회에 다시 나갈 것을 권했다.

지나치게 떠들썩하지 않은 교회, 초신자가 서서히 믿음을 키워갈 수 있는 분위기, 훌륭한 목사님, 집에서 멀지않은 교회,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형 교회…. 이런 내 희망을 귀담아서 C회장이 추천하고 인도한 교회가 내가 지금 섬기고, 내가 사랑하고, 내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성북동 덕수교회이다. 이곳에서 나는 비로소 지금의 내가 믿음과 행동을 같이 하는 크리스천으로 자부하면서 살아가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곳이다.

교회 출석과 동시에 기독실업인회(CBMC)에도 가입해 지금까지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CBMC에서 천안으로 야외예배를 갔다가 느닷없이 간증을 하게 된 적이 있다. 그때 다음과 같은 우스개로 끝을 맺었다.

“주일예배를 보는 일에 네 가지 매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첫째, 책을 읽으려면 눈도 아프고 졸음도 오는데, 목사님 설교는 편하게 앉아서 좋은 책 읽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얻게 된다. 둘째, 개회찬송부터 네 번 찬송을 하니 노래방에 안 가고도 목청껏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어 좋다. 셋째,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배경으로 한주 간의 잘못을 회개하는 순서가 참 매력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한 주를 되돌아보는 일이 인생에 얼마나 유익한가. 넷째,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데이트를 해서 좋다. 예배 후 갖는 검소한 오찬모임이 우리 가족을 사랑과 화목으로 다져주니 이 또한 매력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100세에 얻은 귀한 독자 이삭으로 번제 드리라 하니, 그는 말씀에 순종했고,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신뢰하시고 이삭을 대신할 숫양을 보내셨다. 나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삶과 죽음,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으며 더 칭찬받는 하늘나라 일꾼이 되려고 열심히 기도한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요, 나를 건지시는지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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