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간증 작은 기도에도 주님은 흔쾌히 응답

첨부 1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전성원 한기총 여성위원장

열두살 때 당시 서울 무교동에 있던 중앙성결교회(담임목사 한기채) 교인들 사이에서 ‘감사 할머니’라고 불리시던 친척 할머니 전도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이 교회가 100주년이 되던 올 3월에 나는 장로 장립의 영광을 얻었다.

조부는 경북 선산에서 토지개혁 이전까지 대지주였다. 아버지는 창씨개명을 거부한 민족혼이 강한 분이었고, 서울에서 ‘중앙 전기제작소’란 큰 회사를 운영했다. 어릴 때 잊지 못할 가장 행복한 날은 기독교학교인 이화여중에 입학해 1학년 국반의 학생증과 학교 배지를 받던 날이었다.

그러나 1950년 북의 남침으로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전쟁의 포성과 함께 내 소녀 시절의 꿈도 사라져 버렸다. 휴전이후 서울에 와 보니 집과 공장은 잿더미가 돼 있었다(지금 소공동 ‘동양화학’ 건물이 들어선 자리 일부다).

1·4 후퇴 때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 온 친구들을 숭의여고에서 만났을 때 “우리가 오죽하면 집과 전토와 일가친척들을 다 버리고 남한으로 피난을 왔겠니? 너희 남한 사람들은 북한 공산당을 너무나 모르고 있어. 지금도 속고 있는거야!”라고 말했고, 50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1961년 10월. 남편(정웅 장로·당시 육군 소령)과 결혼한 나는 ‘불임’이라는 청천병력같은 진단을 받았다. 서울시내 유명한 병원의 산부인과는 거의 다 가 보았으나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동일한 진단뿐이었다.

나는 “진실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제게 아기를 주십시오. 제 모든 것을 다 바쳐 주님께 헌신하겠습니다”라고 서원하며 매일 울부짖었다.

당시 충무로에 신유의 능력이 강한 ‘변계단’ 권사님한테 많은 사람이 병고침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집회에 참석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들을 잉태케 해주신 것이다. 현재 경희대 교수(유전공학과)로 있는 정대균 안수 집사다. 어릴 적부터 신앙생활은 해 왔지만 이날 처음으로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큰아들 분만 때는 환상 중에 주님을 뵈었고, 십자가를 붙든 사람만이 구원을 받는 장면도 보았다.

둘째아들(정성균 신흥대 치위생과 교수)을 주실 때 불임을 극복케 해주셨음을 확인했다. 이후 나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특히 나라와 민족을 위한 삼각산 철야 기도를 많이 했다.

1980년 5월18일. 남편 정웅 장군(당시 31사단장)의 지휘 아래 있는 전남·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정 장군은 급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너 하나 죽으면 사태가 수습된다”는 응답을 받았다. 그리고 상부의 ‘강경 진압’ 명령을 ‘무혈 진압’하겠다며 항명했다. 이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많은 광주 시민들이 희생됐다.

남편은 이 항명으로 보직 해임됐다. 오직 조국 수호에서 삶의 보람을 찾겠다던 꿈을 접고 예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남편은 그 때의 참상을 괴로워한다. 우리 가족은 모두 5·18 이후 지금까지 희생된 사람과 그 가족들의 아픔을 같이 간직하고 살고 있다. 자아와 이념은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부부의 신념이다. 남편은 1988년 광주 민주화운동 국회 청문회에 나갈 때 40일간 죽기를 각오하고 금식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정웅 장군은 5·18 희생자 분들과 광주시민의 명예 회복을 걸고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이때 광주 시민들은 정 장군에게 헌정 사상 첫 3관왕(전국 최다 득표, 전국 최다 득표율, 전국 최다 득표차)의 국회의원이 되게 해주셨다. 우리 가족과 친지들은 1981년 5·18 선교장학회를 10여곳에 교회를 세우고 장학사업을 벌이고 있다.

자주 묵상하는 말씀이 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이다.“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나는 2006년 1월부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여성위원장을 맡아 2년째 섬기고 있다. 한국 교회 62개 교단의 기독 여성들의 대표라는 영광스런 자리다.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이유는 내 작은 음성에도 주님이 귀 기울여주심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내가 고난받을 때 언제나 함께해 주셨다. 내가 아플 때 치료해주시고 내가 가난할 때 부요하게 해 주신 내 생명이며 내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