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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은밀히 주신 물맷돌에 반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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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최문자 시인 · 협성대학교 총장

만일 다윗에게 주머니에 감춰진 물맷돌 몇 개가 없었다면 거대한 골리앗과의 대결에 위풍당당하게 나설 수 있었을까? 그 물맷돌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선물한 힘과 사랑의 상징이었다. 다윗은 이 힘을 굳게 믿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이렇게 물맷돌 몇 개를 주머니에 넣어주신다. 가끔 하나씩, 때로는 듬뿍. 그러나 이 돌의 위력을 많은 크리스천이 믿지 못한다.

나는 일찍이 이 물맷돌의 위력을 체감한 바 있다. 미숙했던 여섯살 나이에 맡은 성모 마리아 배역을 통해 나는 주님이 내 삶의 방향을 정해주셨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50여년 전 겨울, 크리스마스 연극 연습시간. 주일학교 선생님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으셨다. "마리아역을 맡은 정애가 폐렴 때문에 못 나오게 됐어요. 대신 누가 마리아역을 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 정애 대신 맡은 마리아 배역을 참 잘해냈을 때 내가 가진 거라고는 하나님이 내 주머니에 넣어주신 물맷돌 몇 개가 전부였다.

적잖은 크리스천들이 만인 앞에 크리스천인 것을 공포하기를 주저한다. 공인일 때 더욱 그렇다. 남녀가 만나서 결혼은 왜 하는가? 굳이 결혼 절차 없이 둘이 즐겁게 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나 사랑하는 남녀일수록 만인 앞에서 그 사랑을 공증받고 싶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는 가끔 예수님이 죽은 후의 제자들 행적을 생각해 본다. 호산나 호산나 외치며 종려나무를 흔들 때야 예수의 제자라는 신분이 얼마든지 자랑스러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은 예수의 제자였을 때도 만인 앞에 제자였음을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을까. 당시 '죽은 예수의 제자'라고 공포되는 순간 그가 누구이건간에 목숨까지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공의회 의원이었던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는 만인 앞에 크리스천임을 알리는 장례식장에 당당히 나타난다. 누구나 밤의 제자가 되고 싶어하던 은폐의 계절에 낮의 제자가 되어 당당히 나타난 것이다.

이 시대도 별반 다른 게 없다고 본다. 크리스천으로 사는 공인은 쉽게 밤의 제자가 된다. 나는 낮의 제자가 되게 해달라고 많은 기도를 했다. 밝은 낮에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인이 예수를 증거한다면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것이 될까를 생각하면서.

대학 총장이라는, 그리고 시인이라는 공인으로 살면서 작품으로 존경과 신뢰를 받다가도 크리스천이라는 사실 때문에 왕따당하거나 소외되고 평가절하될 수도 있다. 그러나 죽은 예수의 제자처럼 바위 속에 판 새 무덤, 자기 무덤을 예수께 드린 아리마데 요셉처럼 결단을 드리는 '드림의 정신'을 나는 사랑한다.

때로는 나도 기계적이 되고, 형식적이 되고, 은폐하게 되는 크리스천의 잘못된 모습을 남들 앞에 자주 드러낸다. 그때마다 나는 마리아역을 해보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을 때처럼 크리스천임을 외친다.

일상에서 늘 기적과 영광을 체험하면서도 낮의 제자가 되지 않는다면 정말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이 세상을 향한 나의 간절한 질문이다. 매일 손을 번쩍번쩍 들어주시는 주님께 붙들려, 나는 매일 아침 주머니에 감춰진 물맷돌 몇 개를 만지작거리며 출근한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이렇게 말해본다. 하나님을 만난 자만이 물맷돌의 기적을 믿으며 이 기적이 세상을 바꾸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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