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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교단분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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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입니다. 어디서 받았는지는 기억이.. ㅠ.ㅠ)

 

무슨측, 무슨파 하는 것은 한국 장로교회의 아픈 역사와 관련이 깊습니다. 혹 그와 관련된 한국교회사 자료를 찾아보셔도 좋습니다. 1951년에 장로교회는 첫번째 분열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출옥성도(신사참배를 반대하여 투옥되었던)"들이, '신사참배를 한 자들과 같은 교회에 있을 수 없다'는 이유를 내걸고, "고려파","고신파(고려신학교)"로 갈라져 나간 것인데, 이것이 장로교회의 첫번째 분열입니다.

그리고 장로고 총회 산하에는 직영으로 운영하던 신학교가 두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장로회신학교'였고, 다른 하나는 '조선신학교'였습니다. 그 학교의 설립동기는 생략합니다. 고려파가 갈라져 나간후, 총회는 두 학교를 통합하여 "총회신학교"를 세우기로 결의하였는데, 장로회신학교는 총회의 결의에 순응했으나, 조선신학교는 불응하고 독자적으로 신학교를 계속 운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53년에 "기독교장로회"라는 간판을 걸고 분립해 나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장로교회의 두번째 분열입니다.

1953년 총회는 "총회신학교"를 대구에서 시작하여 후에 서울로 옮겨왔습니다. 서울로 옮겨온후, 교사를 짓기위해 일을 추진하던 중에 사기꾼에게 학교가 3000만환을 사기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당시의 교장이었던 박형룡 박사를 지지하는 쪽(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과 반대하는 쪽(책임을 물어야한다는)으로 나뉘어 싸움을 하였습니다. 이 싸움은 결국 1959년 총회때, 두파가 나뉘는 결과는 낳고 말았습니다. 박형룡 박사에게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쪽은 옛 이름 그대로, "장로회신학교(광나루)"로, 지지하던 쪽은 "총회신학교(사당동)"으로 출발합니다.

그 후 총회와 두 파(두 신학교)를 일치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는데, 1960년 2월 새문안교회에서 "통합총회"를 개최했는데, 이 때부터 "통합", "통합측"이라고 하는데, 이 통합측이 우리 장로회신학교입니다. 그리고 총회신학교쪽을 중심으로 하는 파를 "합동","합동측"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은 제가 잘 모르겠고, 다만, 총회신학교측과 고신파가 합동으로 총회를 개최하였다해서 "합동총회"라는 이름을 썼었다고 합니다. 그 후 두 파는 또 분열했지만, 어쨌든 그것도 연합과 일치의 일환이었습니다(합동측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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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이창섭 2009.05.12. 00:37

교파가 분리된 것은 성도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몇몇 목사들의 헤게모니로 인한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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