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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이티의 빛과 어두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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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의 빛과 어두움 

- 유관재 목사(성광교회)
 

아이티는 어두웠다. 도미니카의 수도 산토도밍고를 통해 밤에 들어간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마을에라도 들어설라치면 금세 사람들이 구름처럼 둘러선다. 도와달라고. 먹을 것과 일터를 달라고. 도시는 거대한 텐트촌이었다. 도저히 치울 수 없는 쓰레기로 도시가 덮여 있다. 냄새가 심한 곳에선 폐 속 깊이 들어오는 악취에 숨을 쉴 수 없었다. 모든 상황이 어두웠다 

차를 타고 이동 중에 총격전을 보았을 때는 어두움이 아니라 캄캄함이었다. 총성에 놀라 보니 바로 앞에서 누군가 총을 쏘고 있었다. 옆에는 적십자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진 차량이 있었다. 적십자 관계자가 총에 맞은 것 같았다. 사람들은 놀라서 몸을 피했다. 총에 맞은 사람은 몇 번이나 일어나려 하다 또 다시 총알을 맞아 쓰러졌다. 총구가 우리를 향하고 있지 않은지 불안해하며 차를 세워 사방을 살피는데, 모든 것이 캄캄하게 느껴졌다. 

지진에 교도소가 무너져 수감됐던 6000여명의 죄수가 모두 탈출했다. 그들이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법원이었다. 그곳에 불을 질렀다. 모든 기록을 없앴다. 총격전을 본 곳은 범죄자들이 가장 많이 사는 우범지역이었다. 

아이티는 원래 제국주의를 물리친 세계 최초의 흑인 독립국이다. 아이티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12월 5일 상륙하며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 스페인이 섬의 동쪽(지금의 도미니카)에 관심을 가질 때 영국과 프랑스의 해적 기지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프랑스가 영국을 쫓아내고 1697년 스페인과 리스위크(Ryswik) 조약을 맺어 지금의 아이티를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해방 노예들이 1791년 반란을 일으키고 1804년에 최초의 흑인 독립국이 되었다. 독립 후 계속 독재와 내전이 반복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가난에 이번 지진 참사까지 일어난 것이다. 말 그대로 어두움의 땅이 됐다. 

그러나 빛을 보았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은 어두운 아이티의 빛이었다. 비록 아이티까지는 못 왔지만 물질로, 기도로 돕는 손길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한국에서 아이티까지 오려면 비행기와 자동차로 꼬박 이틀은 걸려야 한다. 시차 극복할 여유도 없이 도착하자마자 최선을 다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은 아이티의 새로운 빛이었다. 대부분의 자원봉사자들은 크리스천이었다. 어디 소속으로, 어떤 경로로 들어왔든지 대화해 보면 거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었다. 

어두움 속에서 빛을 보며 아이티를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 아이티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먼저 영적으로 황무한 땅을 치료해 주시고 부흥케 하옵소서. 그래서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모든 분야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흔적이 있는 새로운 역사의 막이 열리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마음과 가슴을 제대로 깨닫고 알아 내가 먼저 빛이 되게 하소서.’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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