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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황당한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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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매일 아침 조깅을 하면서 동네를 한 바퀴씩 돌았습니다.
조깅을 하다가 이상한 집을 발견했습니다.
나무로 지은 오래되고 낡은 초라한 아주 작은 집인데 그 집 한가운데는 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문에는 '多不有時'(다불유시)라고 한문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청년은 자꾸만 그 문자가 무슨 뜻일까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시간은 있지만 많지 않다는 뜻일까? 누가 이렇게 심오한 뜻을 이 문에 적어놓았을까?'라고 생각하며 지나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 그 청년은 그 집 앞을 지나다가 '이 글을 적은 분은 분명 학식이 풍부하고 인격이 고매하신 분일 거야.
오늘은 꼭 그 분을 만나 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그 집 문을 두드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기다려 서 있으니, 옆 집 대문에서 웬 런닝셔츠 차림의 할아버지가 나오셨습니다.

  "어이, 청년! 거기서 뭐하는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아 예, 여기 사시는 분을 좀 만나 뵈려고요"라고 대답하자,
  "엥! 거기 아무도 안 살아!"라고 할아버지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습니다.
  "저, 사실은 이 한자성어를 적으신 분을 뵈려 했는데…"
  "그거? 그건 내가 적은 거야!"
  "아! 그러세요. 정말 뵙고 싶었어요. 할아버님, 이 집이 대체 어떤 집입니까?"
  "이거 별거 없어. 화장실이야!"
  "네? 화장실이요? 여기가 화장실이라고요? 그럼 이 글의 뜻은 무엇입니까?"
  "아, 이거? 참내. 다불유시(W.C)야! 다불유시. 왜 요즘 사람들은 변소도 영어로 말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단 말야. 내가 영어를 알아야지."

이런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황당'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식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황당한 지식에 무슨 심오한 진리가 있는 것처럼,
알에서 깨어날 때 처음 본 것을 엄마로 착각하며 소녀를 따라다니는 새끼 기러기처럼 좇아 다닌다면 참으로 넌센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첫걸음입니다.
나는 어디서나 영접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바꿉시다.
이제는 나는 영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시다. 반드시 놀라운 감동과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 김정호 목사(번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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