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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드온 300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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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300용사?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답답함을 느낀다.

어느 부흥집회에서 강사 목사가 성전의 기둥이 될 기드온 300용사에 모든 성도가 참여하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수가 성인 기준으로 약 500여명 정도 된다고 하니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대부분의 성도가 모두 기드온의 300 용사에 참여하라는 뜻이다.

듣기에는 성도들 대부분이 하나님의 친위군대가 되라는 좋은 권면으로 들린다.

우리가 잘 아는 기드온 300용사는 사사기 7장에서 유래한다.
기드온이 미디안과 전쟁할 당시 미디안이 135,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왔다.
그러나 기드온에게는 그를 쫓는 백성들은 고작 32,000명 뿐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먼저 두려워하는 자들을 돌아가게 하셨는데 그 때 22,000명이 돌아가고 10,000명이 남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많다고 하시며 물가로 데려가 시험하셨는데, 손으로 입에 대고 물을 핱아 먹는 삼백명은 남겨두고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나머지 백성은 모두 돌아가게 하셨다.

만약 군사가 많은 상태에서 전쟁하여 이기게 되면 틀림없이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은 생각하지 않고
모두 자기들 힘으로 이겼다고 교만해 질 것을 미리 예상하신 조치셨다.

사실 우리가 말로는 300용사라고 이름 붙여 부르지만 선발 과정을 보면
일당백으로 싸울 수 있는 정말 힘센 용사를 부르신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135,000 대 300, 곧 한 사람이 450명을 물리쳐야 하는 가히 황당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허락하신 무기는 빈 항아리와 나팔이었다.
그런데 이 싸움의 결과는 바로 기드온과 300용사의 승리였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군사를 선발하실 때, 먼저 마음가짐을 보셨고, 그 다음 태도를 보셨다.
결국 무릎을 꿇지 않은 300명으로 미디만의 135,000명의 대군을 이기게 하셨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군대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요즘 교회들에서 모 부흥강사가 불을 지피고 담임목사는 이를 따라 성도들에게 기드온의 300용사가 되라고 강요하고 있다. 300용사의 명단을 특별 관리한다고 한다.

그런데 기드온 300용사가 되는 조건은, 국내에서는 최소 300만원, 미국에서는 최소 $3,000불을 헌금하겠다고 약정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교회의 기둥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물질로 헌신하라는 것이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에 먼저 물질로 마음을 다짐하라는 의미일 게다.
어차피 나중에 내게 될 것인데 늦게 내면 교회안에서 볼 때마다 서로 불편하기에 빨리 약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까지 한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했으나, 사실이었다.

나는 금번에 처음 접한 내용이지만, 이러한 일이 그 강사가 다니는 곳마다 벌써 수 년째 진행되어 오고 있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조건이 물질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인가?
성경 어디에 그런 조건이 있단 말인가?

그 조건에 대한 부담때문에 지원하지 못하는 성도들의 아픔은 어찌할 것인가?
이는 가뜩이나 높아가는 현대 교회의 문턱을 더욱 높여 세상사람들을 근접하지 못하게 하고
교회안에 있는 경제적, 신앙적으로 연약한 성도들 마저 밖으로 내어쫓는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신유, 축사 등을 내세우며 교회안에 기복주의 신앙을 부추기는 자들이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그들의 설교 상당부분은 자기자랑과 물질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바울사도는,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의 순위를 '사도'(1) → '예언자'(2) → '교사'(3) → '기적을 행하는 자'(4) → 병고치는 자/남을 도와주는자/관리하는 자/방언을 말하는자'(5)의 순으로 정하여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고린도전서 12:28)

그런데 오늘날, 보이는 믿음을 쫓는 믿음이 약한 성도들을 대상으로 신유의 은사와 축복권(?)을 남용하여 교회위에 군림하려 하고 자신들에게 절대충성을 강요하여 성도들로부터 자발적 기부를 유도하는 행태는 종의 자세로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종으로서 합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 강사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많은 교회들이 모시기 경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왜 그럴까?
교회의 재정을 든든하게 하고 담임목사에게 충성하라는 설교를 담임목사가 어찌 싫어하겠는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시는 그 강사를 초청하지 않겠다는 교회도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300만원이 기드온의 용사가 되는 조건이라면, 면죄부를 팔았던 부패한 로마카톨릭과 무엇이 다른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두려움이 없고, 세상에 무릎을 꿇지 않는 당당한 자세를 가진 성도가 기드온의 300용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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