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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프간 사태를 통해 본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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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호진 박사(투아이즈 네트워크 회장, 한반도국제대학원 석좌교수)

“그들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도, 무슬림도 아니다.”

지난 7월 한동대에 유학 온 아프간 학생 아브라함이 탈레반에 대하여 한 말이다. 21세기는 사무엘 헌팅턴이 말한대로 문명 충돌이 일어나는 시대인데, 그 충돌이 바로 한국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탈레반은 결국 봉사단원 두 명을 살해했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기독교가 좋은 일을 하고도 뺨을 맞는 격이 되고 있다. 국내 유명 일간지 사설에서도 노골적으로 이슬람 국가에서 활동하는 4천6백여 명의 선교사를 철수시켜야 한다고 했다. 아프간에서의 봉사단체의 철수는 아예 당연시한다.

이번 사건으로 국내외 여론이 한국교회의 선교를 부정적으로 본다. 외신들은 노골적으로 공격적 선교라고 말한다. 일본 언론도 비판적이다. 차제에 또 동경에서 한국교회의 대형집회를 못마땅하게 여긴 터라 더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일본 언론은 피랍자들이 탈레반 지역의 시장을 관광하고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면서 ‘소데나시’ 차림으로 다녔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대하여 당해 교회는 정면으로 반박했다. 다 선교 훈련을 받았는데, 그럴 리 없다는 것이다. 아프간에서는 여자들은 반드시 부르카(차도르)를 써야 한다. 정보 혼란의 상황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번 납치는 우연하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 탈레반이 2월부터 한국인 납치를 노렸다는 것이다.

국내의 식당 여론은 “왜 가지 말라고 하는데, 가서 나라를 시끄럽게 하느냐”, “왜 하필이면 남의 나라에 가서 봉사 활동해야 하나, 우리나라에도 가난한 자들이 많이 있는데…”라고 말한다. 심지어 ‘운동권’ 댓글은 군대와 공중 화장실에서 청소하는 것은 봉사가 아니냐고 비아냥거린다. 한 운동권 교수는 “탈레반이 테러집단이냐, 그렇다면 상해임시정부도 테러집단이 아니냐”라고 강의한 모양이다. 아프간 사태를 노골적으로 반미로 몰아가고 있다. 일부 여론은 강도를 책망하기보다는 강도 당한 자를 더 꾸짖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하여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선교해야 할 대상은 아프간이나 중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안에도 반기독교 세력이 잠복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결국 머리를 드러낸 셈이다. 그동안 다른 명분으로 위장하여 있어 설마 했지만, 인질문제에 대한 이들의 비난의 댓글에 충격을 금치 못한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까지 왔는가. 반기독교 세력은 무려 3~4백만으로 보인다.

둘째로 한국 선교를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세계 정복에 비유한 적이 있다. 양자는 다 세계를 정복하기 위하여 모스크만 점령하면 되는 줄 알았다.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 들어갔을 때, 항복을 할 러시아 장군이 없었다. 그는 부하에게 항복문서를 누구에게 받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당시 유명한 러시아 장군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으로 사람과 먹을 것과 덮을 것을 다 없애 버렸다. 모스크바에 입성한 프랑스 군대는 결국 추위와 굶주림으로 패퇴하고 말았다. 안방에서는 반란이 일어났다. 히틀러도 마찬가지였다.

선교사 1만7천 명을 파송한 한국교회에 이슬람이 몰려오고 있다. 지난 5월 서울대에 유학 온 중동 학생들이 이슬람선교회를 조직하였다. 선교회의 이름이 거창하다. ‘An Islamic Party - SNU Muslim Gathering’ 이들은 한국을 이슬람화하기 위하여 서울대학교를 플랫폼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미 파키스탄과 터키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와서 왕성하게 선교를 한다고 한다. 저들은 도리어 기독교와 토론하자고 도전장을 던진다. 인천시는 아시안 게임을 유치하는 대가로 송도 신도시에 이슬람 사원(다와 본부) 부지를 약속한 모양이다. 앞으로 대학도 세우고 도시에 모스크를 건립할 계획을 하고 있다.

아프간 학생과 인터뷰하면서 느낀 것은 22살 학생 치고는 수준이 너무 높았다. 사무엘 헌팅턴을 비판할 정도니 보통이 아니다. 눈 여겨 볼 일이다. 한동대가 그 학생을 개종시키기보다는 설득 당할 것 같다. 큰 대학들이 중동 유학생을 유치하려고 하는데, 다 선교사로 무장된 학생들이 올 것으로 본다. 이슬람 유학생들은 아주 고차적으로 이슬람을 변증하고 있다. “이슬람은 테러 종교가 아니다”, “이슬람은 사랑과 관용의 종교이다”, “이슬람은 결코 일부다처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가 일부다처이다”, “이슬람은 문화이다”라고 말한다.

한남동의 사원은 금요일 아침이면 우리 대학생들이 많이 모여들어 재미있다는 식으로 손발을 씻고 사원 안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최근 이슬람에 관련된 책자들이 서서히 매상이 오른다고 한다. 캠퍼스 선교를 하는 사역자들은 이제 높은 수준의 이론적, 영적 무장을 해야 할 판이다. 이슬람은 이슬람에 우호적인 인구를 3~4백만으로 추산한다는데, 공교롭게도 이것은 좌경이념의 인구와 너무나 일치한다. 양자 다 반미에, 반기독교에 반자본주의이다. 그러나 좌경 이데올로기는 밥과 직업 제공에 실패하였다. 그래서 이 인구가 이슬람으로 기울어질 경우 기독교는 1대2의 싸움을 해야 할 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숫자가 문제가 아니다. 저들은 이론 무장이 잘 되었는데, 기독교는 이론이 너무 약하다. 몇 시간씩 서서 가스펠을 부르는 우리네 찬양 문화는 생각하고 논증하는 것 자체를 생각도 못하였다. 아프간 학생에게 성경을 가르치려고 자원하였던 모 학생 선교회 간사 6명이 도리어 손을 들었다고 한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경건이다. 학문은 기독교가 더 발전시켰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넷째, 금번 사태에서 미국과 한국의 협상 자세는 문화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일단 무조건 사람을 구해 놓고 보아야 하는 절박한 현실, 여론과 감정을 중시한다. 그런데 독일 총리의 의지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기독교적 구라파가 인명을 더 중시한다. 그런데 국제 관계에서는 자기 나라 사람도 과감히 희생시키는 것이 서구 문화다. 즉 인권, 자유, 평등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는 명분을 내세울 때는 적은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고 큰 이념을 구현한다. 진주만 사건은 이것을 잘 증명한다. 당시 트루먼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사전에 알았다. 트루먼은 일본이 아시아를 침공하고 독일은 구라파를 짓밟는 절박한 상황에서 미국의 개입이 당연하다고 참여를 호소하였지만 국민들은 강 건너 전쟁으로 구경을 즐기려 하였다. 트루먼은 미국 국민들이 당해 봐야 참여할 것이라 생각하고 고의로 진주만에 항모 4척을 미리 빼도록 하여 희생을 줄였을 뿐이다. 이 내용은 금년에 나온 ‘기만의 때’라는 저서에서 미국 언론인이 폭로한 내용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그 저서에 흥분하지 않는다.

한국교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2004년 이라크에서 있었던 김선일 씨 사건을 명심해야 한다. 당시 미국 CNN은 김선일 씨의 육성 녹음을 수차례 생중계하여 교민들을 당혹스럽게 하였다. 당시 반미 감정이 한창이던 때, 그 녹음 중계는 한국이나 한국교회에 부정적 이미지를 던졌다는 것이 교민들의 일반적인 여론이다. 우리 청년들이 탈레반의 감시 하에서도 의젓하게 처신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사건 당시 타임지의 한 기고자는 한국교회 청년들의 봉사정신을 칭찬하였다. 동시에 한국교회의 감정주의를 은근히 우려하였다. 이제 우리 특공대들의 주먹이 근질근질하다는 인터넷 뉴스가 뜬다. 진작 이러한 뉴스를 내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아프간에서 봉사단원들의 희생은 이미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다. 한 알의 썩은 밀알이 열매를 낳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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