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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상자에서 벗어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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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에서 벗어나는 교회 
 
- 레너드 스위트(드루신학대학교 석좌교수)
 

포스트모던 시대의 목회는 위험하고 선례가 없는 것을 행하는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신앙을 요구한다. 상자에서 벗어난 생각, 배에서 벗어난 생각은 이 시대에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보다 교회 밖에서 역사하고 싶어하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 내부’는 하나님의 일을 나누는 최적의 장소가 아닐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붙들려 있다는 것은 더욱더 밖으로(열방으로) 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된다. 

교회의 안보다 밖에서 더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개념에 반응하는 것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환영하지 않는 교회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밖으로 밀어냈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자 하는 곳에서만 일하시도록 만들었다. 

만약 하나님께서 교회에, 곧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면 세계의 마구간 안에, 곧 ‘거기 밖에’ 계신다. 이러한 대답은 아마도 정당성의 측면에서 제한을 조금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 밖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개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더욱 정당하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는 세상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 현시되어 왔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해서 영화와 예술의 세계에서 도시의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의 만남이나 공립학교나 병원에서 하나님이 일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런 곳이 예수님께서 즐겨 일하시는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산에서, 결혼연회에서, 길 위에서, 배 안에서나 밖에서 “예수님께서 일하신다!”라고 외칠 것이다. 성전을 위한 장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기에 한정된 분이라는 생각을 절대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바울이 분명히 밝힌 것처럼 예루살렘 산 위에 건물을 고쳐 성전을 짓는 것보다는 우리 자신이 모두 성전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과 밖에서, 무덤 안과 밖에서, 배 안과 밖에서 일하셨다. 아무것도 하나님을 제한할 수 없다. 

우리는 ‘교회 일’(교회를 유지해 나가기 위한 교회 내부에서의 우리의 작업)과 ‘교회의 일’(세계에서 그 사명을 성취하는 교회가 되는 것)을 구분해야만 한다. 우리가 상자에서 벗어나고 배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교회 일’에 적게 열중하고 ‘교회의 일’에 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이 계시는 밖으로 나아가 행함을 이루자. 안에서만 특권을 누리려고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욕을 지고 나아가자. ‘안의 세계’는 우리가 머물 집이 아니다.”(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히브리서 13장 13절) 

(번역/정리 : 감신대 김영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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