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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밴드목회 - 제 4 과 교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 4 과 교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47

 

▣밴드목회4강 [제1장 교회론]

 

 

 

1. 가정교회가 아니고서는 교회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

 

 

 

가정교회가 아니고는 절대 그런 교회를 이룰 수 없습니다. 서로 보살핌과 사랑이 이루어진 가정이 아니고서는 이런 건강한 교회를 못 만듭니다. 하나님을 창조 전부터 이런 가정과 같은 교회, 가정인 교회를 요구하셨고 예수님이 오셔서 이런 가정의 교회를 알리려 했는데 미처 깨닫지 못했다가 사도 바울이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깨닫고 흥분되어 가지고 아내와 남편, 남편과 아내,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그리스도와 교회를 동격으로 본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는 당연히 교회를 사랑한다는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동등한 위치로 봅니다. 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동등한 위치로 바울이 보았습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잘못된 교인들이 교회를 파괴하고 상처 주고 찢어 놓고 교회답지도 않은 교회를 가지고 있으면서 목사님을 가슴을 치지도 않고 어떻게 하든 교회다운 교회로 만들어 놓겠다는 열정도 없고 참 속터져요. 한 분 가서 한 프로그램 재미있게 배워서 한번에 꽉 붙었으면 좋겠어. 꽉 붙어서면 얼마나 좋겠어, 쇠파리만 붙어서 문제지요.

 

이 밴드 목회를 처음에 시작하면서 양을 생각하지 않고 질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이런 목회를 하니까 질과 양이 급성장해 가는데 떨어지지 않는 건강한 교회로 성장이 되더라고요. 저는 이 목회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목회라고 말씀 드립니다. 질과 양을 같이 뛸 수 있는 목회입니다. 가정교회가 아니고는 교회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제 교회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공동체 운명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 교회는 항상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성도는 그 몸의 지체입니다. 몸의 지체는 누구의 따라 움직이는가? 머리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지시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는 그리스도가 머리가 아니고 장로가 머리이고 개척 멤버인 오야봉이 머리이더구만. 목사님들이 이것을 딱 정립하고 성경을 파고 가르치면 교인들이 깨닫습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검인 것입니다. 말씀만 갖고 하면 그때 찔림을 갖고 교인들이 "어찌할꼬"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말씀으로 재대로 꽉꽉 쑤셔주지 못해서 그러지 뭐라고 대적할 때 "말씀이 가라사대"하면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마귀도 도망갔는데 말씀이 가라사대 그러므로 지체는 머리의 지시를 받아 움직여야 하고 몸은 각 지체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미칠 때까지 머리의 조절에 의해 세워지도록 활동해야 합니다. 지체끼리는 분열됨이 없이 상호 의존해야 하며 각자가 맡은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제가 부흥회에 가면 꼭 그 이야기를 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얼마나 은사가 뛰어난 교회입니까 그런데 바울은 헛되이 예수 믿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왜 이 교회가 헛되이 믿는 교회인가 하면 분열이 많은 교회입니다. 선생을 쫓는 교회, 이 교회는 경험도 낳아서 간증도 많고 말도 잘하고 모든 것이 뛰어난 교회인데 이 교회는 무엇이 없는가 하면 사랑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 같고 소리나는 구리와 같습니다.

 

이들이 사람들의 방언, 외국어를 잘하고 천사의 말과 같이 간증거리를 수도 없이 많이 해도 사랑이 없는 것은 헛것입니다.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라고 했지만 날더러 쓰라 했으면 '개소리'라고 합니다. 간증이 어쩌고 환상을 보았는데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어요. 교회는 고린도 교회는 헛되이 예수를 믿습니다.

 

지체끼리 분열되며 상호 의존해야 하며 각자가 맡은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하고 지체 중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할지 못한 지체가 있으면 다른 지체가 도와줌으로서 건강한 몸을 이룰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밑에 그림을 보면 아시다시피 어느 것이 몸인지 아시겠죠. 여러분의 교회는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왼쪽 머리는 장로님이십니까 제멋대로 뛰고 있어요. 교회가 일체감이 없어요. 교회가 목적 없이 움직이고 있어요. 건강한 교회는 오른쪽의 교회입니다.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세워지는 교회, 결국 건강한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수직적 교회, 가정교회 이런 건강한 교회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무슨 교회라고 했죠? 네 가정교회. 이 말은 교회는 정말 가정같은 것이 아니라 완벽한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4-6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는 한 가족이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니까 한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 밑에도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모친과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를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혹이 고하되 당신의 모친과 당신의 동생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섰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곧 예수님이 가족에 대해서 분명히 선언을 했는데 육의 가족이 아니라는 것이며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곧 내 가족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는 나와 상관이 없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사무엘상 15:23에 아주 기묘한 말씀이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고 하는 모든 것은 주술 신앙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서낭당에서 비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하여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서낭당에서 비는 것과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사술, 이교도들. 주술 신앙... 남묘호랑게교와 같이 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 제사드리고 하는 모든 것들은 헛것입니다.

 

예수님 하신 말씀 "누가 내 가족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내 가족입니다. 공동체는 가정공동체, 가정교회인 것입니다. 가정교회는 교회 자체의 존재 방식입니다. 젊은 남녀가 가정을 이루면 그들은 자녀 출산하고 양육합니다. 이것을 가정교회에서도 그대로 적용합니다.

 

 

 

2. 가정 교회는 교회 자체의 존재 방식

 

 

 

가정으로서의 교회는 자녀를 출산해야 하고 양육해야 합니다. 여기서 출산은 믿지 않는 자를 구원시키는 것이고 양육은 구원받은 자를 그리스도에게 이르도록 성장시키는 것, 이것이 교회의 목적이고 예수님의 목적이고 하나님 뜻입니다.

 

아까 읽은 것이니 다시 읽어보시면 됩니다. 출산과 양육, 이것이 교회의 목적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 교회들은 창조 때의 가정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교회의 회복은 새로운 교회 형태로서의 성장 모형 제시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한 교회 자체의 존재방식이라는 거요.

 

 

 

3. 교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HOW가 아닌 WHO로

 

 

 

'교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HOW가 아닌 WHO로 방법론의 목회는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들어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우리 교회, 아까 이야기한 그대로 입니다. 성경공부를 통해서 성숙하고 헌신된 성도를 목표로 했지만 성숙하지 않지만 열심 있는 교인은 됐습니다.

 

그러나 제자로서 예수님 자신의 삶, 그것을 보니까 예수님의 삶을 함께 다니면서 성숙하고 헌신된 삶을 살았는데 예수님처럼 먹고 자고 동행하며 자신의 삶을 보여줌으로서 온전한 제자를 길러 낸 목회를 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가정 공동체가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여러분께 미리 이야기하지만 이 목회는 목사님이 열어야 합니다. 목사님의 가정이 오픈되지 않으면 열려지지 않으면 삶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나를 감추면 안됩니다. 철저하게 내 자신이 열려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목사님들 지금까지 어떻게 해오냐면 사실 한 영혼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그 영혼이 그 사랑을 받았으면 그 사랑을 가지고 그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이건 스무 살까지 젖달라고 앉아 있는 거예요. 남 사랑할 생각은 안하구요 사도 바울처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 된 것같이 너희도 나를 본받는 자 되라 했는데 우리는 교인들에게 기껏 한다는 이야기가 "시험들었다, 사람보고 다니나 예수보고 다니지" 이것은 뭐가 잘못돼도 톡톡히 잘못된 거예요. 그 사람은 누구보고 다니는데 먼저보고 다니는 사람, 예수보고 다니는 사람, 그럼 인격을 보고 다녀야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삶을 내가 가져야 된다 말이에요.

 

그것은 뭐냐면 주님과 인격적인 교제가 없는 것입니다. 한번도 예수님을 만나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냥 교회라는 터 위에 지식적으로 살짝 올려져 있는 것이지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의 인격이 내 속에 스며들어 올 수가 없어요. 삶의 변화가 일어날 수가 없다는 거에요. 진정한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바로 그분이 사랑이기 때문에 내 맘에 사랑이 막 솟아 나오게 되어 있는 거예요. 가정은 숨을 때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정은 벌거벗어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부부간 벌거벗을 때 부끄러운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가정은 서로간에 이야기해도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이러한 건강한 교회를 회복하고저 하는 것이 밴드 목회입니다. 우리는 내일부터 실시하겠는데 엄청난 충격적인 여러분을 흥분하게 하고 기쁘게 할 목회가 눈에 선하게 보일 것이고 잡힐 것입니다.

 

가정교회를 말씀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아담과의 관계가 철저히 맺어진 아담을 통해서 하와에게 말씀이 전해지고 하와는 아담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감동되어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발견하게끔 하는 것이 주님의 계획이었는데 먼저 믿는 자들의 삶이 다른 이웃에게 영향을 줄만큼 영적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았을 때 결국에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들어 버리게 되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과 관계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신앙이 잘못되어지는 것을 우리는 에덴동산을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하는 예수님의 목회에 대해서 한번 점검을 해보고 살펴보려 합니다. 예수님도 추구하는 목회의 포커스는 그것을 한 신앙의 가정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예수님의 목회의 핵심이다라는 것을 전제로 두고 당연히 우리도 목회는 그렇게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인식을 하면서 이것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가정교회가 아니고서는 교회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

 

 

 

가정교회가 아니고는 절대 그런 교회를 이룰 수 없습니다. 서로 보살핌과 사랑이 이루어진 가정이 아니고서는 이런 건강한 교회를 못 만듭니다. 하나님을 창조 전부터 이런 가정과 같은 교회, 가정인 교회를 요구하셨고 예수님이 오셔서 이런 가정의 교회를 알리려 했는데 미처 깨닫지 못했다가 사도 바울이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깨닫고 흥분되어 가지고 아내와 남편, 남편과 아내,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그리스도와 교회를 동격으로 본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는 당연히 교회를 사랑한다는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동등한 위치로 봅니다. 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동등한 위치로 바울이 보았습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잘못된 교인들이 교회를 파괴하고 상처 주고 찢어 놓고 교회답지도 않은 교회를 가지고 있으면서 목사님을 가슴을 치지도 않고 어떻게 하든 교회다운 교회로 만들어 놓겠다는 열정도 없고 참 속터져요. 한 분 가서 한 프로그램 재미있게 배워서 한번에 꽉 붙었으면 좋겠어. 꽉 붙어서면 얼마나 좋겠어, 쇠파리만 붙어서 문제지요.

 

이 밴드 목회를 처음에 시작하면서 양을 생각하지 않고 질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이런 목회를 하니까 질과 양이 급성장해 가는데 떨어지지 않는 건강한 교회로 성장이 되더라고요. 저는 이 목회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목회라고 말씀 드립니다. 질과 양을 같이 뛸 수 있는 목회입니다. 가정교회가 아니고는 교회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제 교회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공동체 운명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 교회는 항상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성도는 그 몸의 지체입니다. 몸의 지체는 누구의 따라 움직이는가? 머리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지시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는 그리스도가 머리가 아니고 장로가 머리이고 개척 멤버인 오야봉이 머리이더구만. 목사님들이 이것을 딱 정립하고 성경을 파고 가르치면 교인들이 깨닫습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검인 것입니다. 말씀만 갖고 하면 그때 찔림을 갖고 교인들이 "어찌할꼬"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말씀으로 재대로 꽉꽉 쑤셔주지 못해서 그러지 뭐라고 대적할 때 "말씀이 가라사대"하면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마귀도 도망갔는데 말씀이 가라사대 그러므로 지체는 머리의 지시를 받아 움직여야 하고 몸은 각 지체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미칠 때까지 머리의 조절에 의해 세워지도록 활동해야 합니다. 지체끼리는 분열됨이 없이 상호 의존해야 하며 각자가 맡은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제가 부흥회에 가면 꼭 그 이야기를 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얼마나 은사가 뛰어난 교회입니까 그런데 바울은 헛되이 예수 믿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왜 이 교회가 헛되이 믿는 교회인가 하면 분열이 많은 교회입니다. 선생을 쫓는 교회, 이 교회는 경험도 낳아서 간증도 많고 말도 잘하고 모든 것이 뛰어난 교회인데 이 교회는 무엇이 없는가 하면 사랑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 같고 소리나는 구리와 같습니다.

 

이들이 사람들의 방언, 외국어를 잘하고 천사의 말과 같이 간증거리를 수도 없이 많이 해도 사랑이 없는 것은 헛것입니다.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라고 했지만 날더러 쓰라 했으면 '개소리'라고 합니다. 간증이 어쩌고 환상을 보았는데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어요. 교회는 고린도 교회는 헛되이 예수를 믿습니다.

 

지체끼리 분열되며 상호 의존해야 하며 각자가 맡은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하고 지체 중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할지 못한 지체가 있으면 다른 지체가 도와줌으로서 건강한 몸을 이룰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밑에 그림을 보면 아시다시피 어느 것이 몸인지 아시겠죠. 여러분의 교회는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왼쪽 머리는 장로님이십니까 제멋대로 뛰고 있어요. 교회가 일체감이 없어요. 교회가 목적 없이 움직이고 있어요. 건강한 교회는 오른쪽의 교회입니다.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세워지는 교회, 결국 건강한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수직적 교회, 가정교회 이런 건강한 교회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무슨 교회라고 했죠? 네 가정교회. 이 말은 교회는 정말 가정같은 것이 아니라 완벽한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4-6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는 한 가족이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니까 한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 밑에도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모친과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를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혹이 고하되 당신의 모친과 당신의 동생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섰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곧 예수님이 가족에 대해서 분명히 선언을 했는데 육의 가족이 아니라는 것이며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곧 내 가족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는 나와 상관이 없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사무엘상 15:23에 아주 기묘한 말씀이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고 하는 모든 것은 주술 신앙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서낭당에서 비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하여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서낭당에서 비는 것과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사술, 이교도들. 주술 신앙... 남묘호랑게교와 같이 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 제사드리고 하는 모든 것들은 헛것입니다.

 

예수님 하신 말씀 "누가 내 가족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내 가족입니다. 공동체는 가정공동체, 가정교회인 것입니다. 가정교회는 교회 자체의 존재 방식입니다. 젊은 남녀가 가정을 이루면 그들은 자녀 출산하고 양육합니다. 이것을 가정교회에서도 그대로 적용합니다.

 

 

 

2. 가정 교회는 교회 자체의 존재 방식

 

 

 

가정으로서의 교회는 자녀를 출산해야 하고 양육해야 합니다. 여기서 출산은 믿지 않는 자를 구원시키는 것이고 양육은 구원받은 자를 그리스도에게 이르도록 성장시키는 것, 이것이 교회의 목적이고 예수님의 목적이고 하나님 뜻입니다.

 

아까 읽은 것이니 다시 읽어보시면 됩니다. 출산과 양육, 이것이 교회의 목적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 교회들은 창조 때의 가정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교회의 회복은 새로운 교회 형태로서의 성장 모형 제시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한 교회 자체의 존재방식이라는 거요.

 

 

 

3. 교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HOW가 아닌 WHO로

 

 

 

'교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HOW가 아닌 WHO로 방법론의 목회는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들어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우리 교회, 아까 이야기한 그대로 입니다. 성경공부를 통해서 성숙하고 헌신된 성도를 목표로 했지만 성숙하지 않지만 열심 있는 교인은 됐습니다.

 

그러나 제자로서 예수님 자신의 삶, 그것을 보니까 예수님의 삶을 함께 다니면서 성숙하고 헌신된 삶을 살았는데 예수님처럼 먹고 자고 동행하며 자신의 삶을 보여줌으로서 온전한 제자를 길러 낸 목회를 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가정 공동체가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여러분께 미리 이야기하지만 이 목회는 목사님이 열어야 합니다. 목사님의 가정이 오픈되지 않으면 열려지지 않으면 삶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나를 감추면 안됩니다. 철저하게 내 자신이 열려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목사님들 지금까지 어떻게 해오냐면 사실 한 영혼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그 영혼이 그 사랑을 받았으면 그 사랑을 가지고 그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이건 스무 살까지 젖달라고 앉아 있는 거예요. 남 사랑할 생각은 안하구요 사도 바울처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 된 것같이 너희도 나를 본받는 자 되라 했는데 우리는 교인들에게 기껏 한다는 이야기가 "시험들었다, 사람보고 다니나 예수보고 다니지" 이것은 뭐가 잘못돼도 톡톡히 잘못된 거예요. 그 사람은 누구보고 다니는데 먼저보고 다니는 사람, 예수보고 다니는 사람, 그럼 인격을 보고 다녀야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삶을 내가 가져야 된다 말이에요.

 

그것은 뭐냐면 주님과 인격적인 교제가 없는 것입니다. 한번도 예수님을 만나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냥 교회라는 터 위에 지식적으로 살짝 올려져 있는 것이지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의 인격이 내 속에 스며들어 올 수가 없어요. 삶의 변화가 일어날 수가 없다는 거에요. 진정한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바로 그분이 사랑이기 때문에 내 맘에 사랑이 막 솟아 나오게 되어 있는 거예요. 가정은 숨을 때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정은 벌거벗어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부부간 벌거벗을 때 부끄러운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가정은 서로간에 이야기해도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이러한 건강한 교회를 회복하고저 하는 것이 밴드 목회입니다. 우리는 내일부터 실시하겠는데 엄청난 충격적인 여러분을 흥분하게 하고 기쁘게 할 목회가 눈에 선하게 보일 것이고 잡힐 것입니다.

 

가정교회를 말씀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아담과의 관계가 철저히 맺어진 아담을 통해서 하와에게 말씀이 전해지고 하와는 아담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감동되어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발견하게끔 하는 것이 주님의 계획이었는데 먼저 믿는 자들의 삶이 다른 이웃에게 영향을 줄만큼 영적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았을 때 결국에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들어 버리게 되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과 관계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신앙이 잘못되어지는 것을 우리는 에덴동산을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하는 예수님의 목회에 대해서 한번 점검을 해보고 살펴보려 합니다. 예수님도 추구하는 목회의 포커스는 그것을 한 신앙의 가정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예수님의 목회의 핵심이다라는 것을 전제로 두고 당연히 우리도 목회는 그렇게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인식을 하면서 이것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밴드목회5-제 1 장 교회론/ 제 5 과 예수님의 목회(1)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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