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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1운동이여 기독교 정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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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이여 기독교 정신이여 

- 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
 

우리는 엊그제 3·1절을 맞았다. 일제의 탄압에 숨죽였던 백성들이 장롱 속에 꽁꽁 감추어 놓은 태극기를 들고 나와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날이다. 그런데 3·1운동의 정신적인 동기와 배경은 바로 기독교 정신이었다.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에 16명이 독실한 기독교 인사였으며 대부분이 다 목사요 전도사였다. 당시 선교사와 목회자들은 3·1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민족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설교하고 가르쳤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90%에 가까운 교회와 신자들이 3·1운동을 주도했다. 목사들뿐인가. 평신도였던 남궁억 선생도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이 주신 동산이니 우리 민족이여 한 동포여, 독립운동 하러가세, 다 함께 만세 부르러 갑시다”라고 외쳤다. 

기독교인이었던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국의 독립이 오는 날까지 허리를 숙이지 않겠다며 허리를 뻣뻣이 들고 세수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오산학교의 학생과 지인들에게 기독교 정신을 고취시키며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유관순 역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이처럼 한국교회가 항일운동의 횃불이 되자 일본으로부터 엄청난 탄압을 받아야만 했다. 교회당 종탑을 파괴하고 유리창을 깨트리고 성경과 찬송가, 교회학교의 명부와 서류들을 불태웠다.

특별히 제암리교회의 만행사건은 일제의 대표적 학살 사건으로 지금도 기록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과거 한국교회의 고난과 수치의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 기독교의 애국적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한국교회는 3·1운동을 비롯한 항일 독립운동의 등불로, 광복 이후에는 좌익에 반대하며 자유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수호하는 데 선구자가 되었다. 그리고 6·25전쟁 이후에는 근대화된 교육, 문화, 구제활동을 통하여 다음 세대를 길러내면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지금도 전국강산에서 조국의 평화와 안녕을 위하여 눈물로 구국제단을 쌓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야말로 애국적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지금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안티 기독교세력이 판을 치면서 대사회적 이미지는 날개 없는 새처럼 추락하고 있다. 물론 한국교회가 사회적 소통을 하지 못하고 담을 쌓았다면 겸허한 자세로 자성해야 한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일반 국민들, 아니 안티 기독교 세력이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한국교회가 조국이 가장 상처받고 고통당할 때 민족의 아픔을 보듬고 함께 울었다는 사실이다. 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불에 태워지고 감옥에서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피 묻은 손으로 태극기를 움켜쥐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한국교회도 외면적 성장에 안주하지 말고 다시 애국적 역사의식을 가지고 일어서야 한다. 나라사랑을 통한 사회적 소통의 길을 열어야 한다. 지금도 계속해서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눈물을 닦아주는 애국의 길을 가야 한다. 3·1운동을 일으킨 기독교 정신이여, 다시 타올라라, 민족 역사의 지평에 불멸의 기록으로 새겨져라.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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